1. 저널리즘

저널리즘은 유기적인 조직의 메커니즘을 통해 사회성원에게 중요한 사실을 전달하고, 진실을 추구한다. 저널리즘은 그렇게 담론 생산 및 유통 시스템의 중핵을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이에 대한 상식적인 기대는 마치 그 자체로 농담처럼 느껴진다. 가혹하게도 대한민국 저널리즘은 두 가지 죄에 빠져 있다. 그것은 거칠게 말하자면 선정주의와 과도한 당파성이다. 그리고 양자는 서로 딴 몸이 아니라 한몸이다. 선정주의가 언론 ‘기업’으로서의 경제적 지향에 가깝다면, 정치적 당파는 ‘언론’ 기업으로서의 목적적 지향에 가깝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2. 매체비평

매체비평은 본질적으로 비평에 관한 비평이다. 그런 점에서 단순한 사실 전달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매체가 전달하는 사실과 그 사실 비평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쉽게 말해서 매체비평은 구조적인 시각을 더 더욱 강력하게 자신의 관점으로 견지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소위 ‘뉴스’라는 것을 둘러싼 권력의 역학, 당파성의 역학을 통해 단편적인 진실이 아닌 입체적인 진실, 때론 모순적이기까지 한 그 이율배반의 진실을 매체비평은 드러내려고 시도한다. 그것이 매체비평의 존재이유다.

저널리즘에 대한 저널리즘이고, 해석에 대한 메타해석이며, 사실에 대한 새로운 사실(그 사실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투영되는)이다. 철학이 모든 학문에 대한 메타학문으로 그 방향을 설정하는 것처럼, 매체비평은 모든 매체에 대한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된다.


3. 질문

좀더 구체적으로 질문하자. 그렇다면 저널리즘에 대한 메타비평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것은 매우 난감한 질문이다. 두 가지 상식적인 대답이 존재한다. 대한민국 저널리즘의 과도한 정치적 당파성을 해체하는 시도를 해야 하는가? 대한민국 저널리즘의 천박한 선정주의를 적극적으로 깨뜨리는 항체로서 존재해야 하는가? 그래서 현재 저널리즘의 지향점으로 정착한 정론지 모델을 매체비평은 자신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가?

이런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는 아무런 실효성 있는 논의도 가져오지 못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사실, 그 사실(뉴스!)을 선택하고 해석함으로써 추구하게 되는 진실은 앞서 말한 것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진실은 당파성의 한계 속에서 해석된 진실이고, 그 당대의 경제, 정치, 문화적인 환경 속에서 파악되는 제한된 진실이며, 이런 역학 속에서 그 진실 자체가 자기 모순적 성질을 갖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본질적인 한계와 어려움에 더해서 매체 수용자들의 콘텐츠 소비 경향 역시 낙관적이지는 않다. 매체 수용자들은 날로 연성화된 자극적 뉴스들에 길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매체비평은 매체와 콘텐츠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수용자들이 아니라면 대개 따분하거나, 건조한 스타일을 갖곤 한다. 그렇다면 글 서두에 부정적으로 서술한 '선정주의'와 '당파성'은 달리 접근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 양자가 갖는 부정적인 속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현실이고, 또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갖는 ‘흥미가치’(유희가치)와 ‘고민가치’(자신의 계급적인 이해가 투사된)를 갖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

논의를 좀더 현실화시켜보자. 이미 <미디어오늘>이라는 매체비평 전문저널이 존재한다. 미디어오늘이 갖는 의미와 한계는 <미디어스>에 그대로 유의미한 시사점을 갖는다. 미디어오늘의 당파성은 무엇이고, 미디어오늘의 전략적인 방법론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디어스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전해주는가?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매우 추상적이고, 또 단편적인 편견에 치우친 개인적인 주관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박한 독자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써본다.

미디어오늘은 우리나라 저널리즘 스펙트럼에서, 소위 진보 대 보수(수구)라는 평면에서 본다면 진보파 언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미디어오늘은 흔히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기성 언론의 과도한 당파성을 비판한다. 미디어오늘은 의미있는 문제의식으로 대한민국의 미디어 환경에 대해 그 자신의 예민한 촉수를 가동하고 있고, 그 지향점 역시 상당히 동의할 만한 철학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거친 직관적 해석틀을 통해 보자면, 이미(!) 미디어오늘이라는 매체비평 저널리즘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미디어스는 미디어오늘과 어떤 차별적인 존재가치를 획득할 수 있을까?
나는 미디어스가 그 대답을 기성 저널리즘에서 찾기 보다는 블로기즘의 새로운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블로기즘의 가능성과 서로 자극을 주고 받고, 상생할 수 있는 매체비평 저널리즘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오늘은 매우 찬성할 만한 미디어비평을 전해주고 있지만, 거친 인상비평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좀더 이야기해본다면, 다소 경직되고, 정돈된 객관성의 신화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물론 정론지로서의 불편부당 모델에 온전하게 부합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 자신의 당파성이 너무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언어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독자들의 ‘고민가치’를 자극할 수는 있겠지만, 독자들의 ‘흥미가치’를 자극하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진다.

미디어스가 자신만의 존재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전략적인 방법론은 저널리즘의 객관성이라는 신화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그것을 문제시하면서, 또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져야 하는 ‘사실에 대한 불가침’이라는 스스로의 본원적 요구 사이에서 창조적 긴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론이어야 한다. 그것은, 다시 말하건대, 블로기즘이 갖는 미디어적 역사성을 스스로의 자극으로 수용함으로써 좀더 효율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5. 블로기즘과 저널리즘, 그리고 미디어스

나는 블로거다.
이 글은 블로거로서, 소박한 독자로 미디어스에게 내 나름의 부족한 조언을 평가를 들려주는 자리다. 물론 그 평가가 구체적이고, 세밀한 미디어스의 이런 저런 모습에 대한 비판이나 조언을 들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그러기엔 미디어스에 대한 체험치를 얻기 위한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는 개인적인 핑계를 대본다).

다수의 블로그가 행하는 미디어 비평은 대체로 자신의 감정적인 정치적 당파에 치우쳐 있다. 그래서 당파성이 강한 기존 언론의 이슈들이나 논조들에 기대어 그 담론을 확산하는 단순한 기여, 혹은 편승 모델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소한 미디어에 대해 ‘스스로 글을 쓴다’는 그 비평의 차원에서는 스스로 진화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블로기즘에 바탕한 매체 비평은 기존 전통 저널리즘의 전문적인 매체비평과는 다른 차원의 역사성과 미디어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미디어 역학, 기존 미디어 권력의 재분배 차원에서 블로그는 특히나 기성언론, 그 중에서도 종이신문, 그 중에서도 수구적인 기득권 신문들에 대한 강력한 항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실적인 정치적, 권력적인 미디어 쟁투의 역학에서 판단하건대, 이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 매체비평 저널들과 그 거시적인 차원에서 유사한 역사성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대체적으로 그 수구 기득권 신문은 (그 철학이나 개성의 차원에서) 시민사회의 위협이 될 만큼 편파적이고, 악질적인 당파성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영역에서 블로그의 미디어적 영향력은 포털이나 기존의 언론사닷컴들의 영향권 안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성장하고 있거나, 그 잠재력을 스스로 고갈시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점은 매우 유감이지만, 포털 종속, 기성언론 의존적 경향은 더욱 강화될 수도 있고, 혹은 블로거들이 스스로의 잠재력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방법론을 진화시킬 수도 있다.

미디어스는 기성언론과의 권력 쟁투나 그 권력역학에서 좀더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근시안적인 전략을 마련해서는 안된다. 미디어스가 표방하는 철학 혹은 그 표어처럼 ‘우리가 미디어’라는 그 엄청난 역사적인 함의, 미디어 전환기에서 자신의 위치를 블로기즘의 역사성이라는 좌표 안에서 고민해야 마땅하다.

나는 낙관론을 경계하지만 여전히 블로그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미디어적 가능성, 그 혁명적인 잠재력을 실천할 수 있는 열혈블로거들의 창조적인 네트워크가 여기저기서 만개할 시간이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때가 오면 블로거들은 자신이 스스로 미디어의 미래였음을 드디어 현실로서, 피부로 자각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실천론의 차원에서 미디어스는 그저 표피적인 개방성이나 블로기즘의 가치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전형적인 기사형의 글들을 통해 자신을 미디어오늘의 아류로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좀더 적극적으로 저널리즘의 객관성이라는 신화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그 도전을 통한 긴장을 통해 방법론을 수립하며, 그 구체적인 방법론들을 통해 블로거들과 함께 대화해야 마땅하다. 그것은 그저 미디어스의 메인 공간에 블로거들의 글을 수록하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웹을 중심으로 하는 거시적인 대한민국적 웹 콘텐츠 유통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그 가운데서 자신의 독립적인 콘텐츠 생산 및 유통의 시스템을 모색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미디어스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고, 기존에 미디어스가 표방한 상호 협력적인 네트워킹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미디어스의 부단한 전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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