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끈한 얼굴과 매력적인 연기력, 무수한 히트작을 보유하고 있는 배우 권상우. 이보다 더 예쁘게 우는 남자는 못 봤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름다운 멜로 연기를 선보이지만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은 그리 말랑하지 못해 숱한 질타를 받아왔던 그였습니다.

소위 권상우 망언 리스트라고 불리는 그의 불편했던 발언을 꼽아보자면 셀 수도 없지만 유독 네티즌의 눈에 밟혔던 한마디가 바로 ‘저희 나라’ 문제였죠. 인터뷰에서 ‘저희 나라’라는 부적절한 말실수를 통해 그의 그간 발언들이 리스트로 묶여 화제가 됐을 만큼 당시 이 문제는 꽤 심각한 입방정으로 남았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은 낮추어 말할 대상이 아니기에’ 우리의 낮춤말인 ‘저희’라는 명사를 사용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실수가 어찌나 큰 문제였던지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포털사이트에서 ‘저희 나라’를 검색하면 잘못된 우리말 표현임을 알려주는 설명문과 함께 연관 검색어로 ‘권상우’가 떠있을 정도입니다.

최근 한 해를 마무리하는 SBS 가요대전에서 사회자를 맡은 위너의 송민호가 우리나라를 ‘열도’라는 부적절한 표현으로 지칭해 네티즌 사이에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는 지난 21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가요대전’에서 2PM의 닉쿤, 인피니트의 엘과 더불어 공동 사회라는 큰 직무를 떠안게 됩니다. 호전적인 가사로 펀치라인 신예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이지만, 이렇게 큰 자리에서 무거운 임무를 수행하기엔 적잖은 부담이 되었나 봅니다. 그는 ‘대한민국 열도를 흔드는 보이그룹의 메가 스테이션’이라는 발언으로 네티즌의 지탄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문장에서 문제가 된 것은 우리나라를 ‘열도’라 표현한 부분입니다. 사전적 의미에서 열도란 ‘길게 줄을 지어 늘어져 있는 여러 개의 섬’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 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일부가 육지 또는 대륙으로부터 돌출한 땅인 ‘반도’의 대한민국에 들어맞지 않는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이 문제가 여기에서 끝났더라면 그저 단어를 헷갈렸나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문제는 열도라는 단어에 상응하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라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지난 역사에 이어 청산되지 않은 과거 문제가 21세기까지 넘어온 일본에 좋은 감정을 가질 리가 없는 우리에게 이 실수는 정서적으로 분기탱천할 사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덮어버릴 수 없을 만큼 이른바 사달이 난 분위기에서 실수의 책임자는 공개 사과로 사죄의 듯을 전했습니다. 실언의 당사자인 송민호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모든 게 제 잘못이고 불찰입니다.”라는 변명 없는 진솔한 사과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송민호 또한 변명할 사유는 충분했습니다. 당시 가요대전을 연출한 SBS의 김주형 PD가 대본에 ‘열도’ 발언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것은 즉석에서 나온 송민호 자신의 생각이 아닌 대본에 직시된 멘트였음을 밝혀주었던 것입니다.

SBS 김주형 PD는 대본에 ‘열도’ 멘트가 지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즉석에서 대본을 수정하느라 경황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시간에 쫓기는 생방송 프로그램의 경우 가수의 무대 분량에 손을 댈 수는 없으니 MC의 멘트를 줄이거나 늘리거나 하는데 현장에서 다급히 대본을 수정하다보니 정신없는 와중에 헛발질을 하게 된 것이죠. 일부 네티즌의 음모론을 부정하는 그는 ‘당연히 어떤 의도를 갖고 한 고의적인 행동이 아닌 단순 실수’임을 명확히 하면서도 이 모든 것은 우리 측 잘못이며 대본을 그대로 읽었을 뿐인 MC 송민호에겐 책임이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대본에 단어가 있었는가 없었는가에 대한 시시비비도 있었습니다만, 한 일간지에서 입수한 송민호의 대본엔 똑똑히 해당 멘트가 나열되어 있어 논란 또한 종결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열도를 뒤흔드는 보이그룹들의 MEGA STATION!’.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송민호 또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잘못된 대본을 수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읽어버린 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 그룹 위너의 송민호, 배우 권상우 © News1
누군가는 앞서 말한 권상우의 ‘저희 나라’ 발언을 예시로 들기도 합니다. 권상우 또한 단순 말실수라 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혼나지 않았었나 하고요. 하지만 권상우의 ‘저희 나라’와 송민호의 ‘열도’를 같은 선상에 둘 수 없는 건 그저 대본을 그대로 읽었을 뿐인 송민호와 달리 단어를 둘러싼 사상과 의도 자체가 부적절했기 때문입니다.

권상우의 ‘저희 나라’는 사실 그 이후의 문장이 더 문제였습니다. "저희 나라보다 문화의 양과 질이 우월한 일본에서 한국 스타들과 문화에 관심을 가져 줘 감사하다"는 황당한 문장을 포장하는 표현이었으니까요. 그가 선택한 ‘일본 문화가 한국의 그것보다 우월하다’는 종속적인 사상을 돌이켜볼 때 사실 우리의 낮춤말인 저희 나라는 오히려 그의 사상과 어울리는 표현임이 틀림없었습니다.

그저 맞춤법의 실수라 참작했을 때 ‘저희 나라’라는 표현을 썼다 하여 만인이 지탄하는 것은 분명 도를 넘어선 것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이 틀린 맞춤법이 도리어 지나친 겸손을 추구하다 빚어낸 순수한 실수인 사례가 많다는 것이죠. 하지만 권상우의 저희 나라 표현은 이후의 발언과 사상이 더 문제가 되었기에 여태까지 그를 비호감으로 만드는 원인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온갖 가수의 대행사인 연말 무대의 사회자라는 중책을 맡은 송민호에게 그 자리는 숨이 막힐 것처럼 무거웠을 것입니다. 겸손에 집착하다 ‘저희 나라’를 쓰는 누군가처럼, 절대 실수해선 안 된다는 중압감이 토시 하나 틀리지 않게 대본을 숙지하는 순종을 추구했을 테고요. 그가 손에 쥔 큐카드에 민심을 뒤집어버릴 크나큰 오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식조차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경우에까지 지나친 책임감을 강요하며 비난을 퍼부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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