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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의 블랙홀 된 '통진당 해산', '종북' 타령이 덮은 문제들통진당 정국 즐기게 된 박근혜 정부, 쏙 들어간 비선 실세 파문
김민하 기자 | 승인 2014.12.23 18:06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이슈의 블랙홀이 형성됐다.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모든 사건은 완전히 잊혀지거나 또다른 일상의 한조각처럼 여겨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한나절 만의 일이고 그것으로 통합진보당이라는 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논란이 이어지는 것은 그 결정의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과 함께 그 결정을 근거로 한 공안정국 조성이 함께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단체는 통합진보당 소속 당원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모조리 고발했고 검찰은 이에 약속이라도 한듯 재빨리 수사에 착수했다. 개별 당원들의 위법적 활동 여부부터 살펴보겠다고 하니 이미 해산된 통합진보당을 국가보안법 상의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이 없는듯 하다. 사실 법리상의 문제는 상관없다. 이것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충실히 지지하는 고령층 및 대구경북의 지지율이 회복된다는 게 중요하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다. 이 말에는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진실이 들어있다. 그것은 비가 오는 중에는 땅이 굳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딛고 있는 땅은 11월 말부터 죽 비를 맞고 있었다. 비선 실세 의혹으로 지목된 정윤회 씨와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의 ‘파워게임’ 시나리오가 주룩주룩 내린 비의 정체다.

   
▲ '비선실세'로 거론된 정윤회씨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뒤 11일 새벽 굳은 표정으로 청사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단순한 문건 유출 사건에서 수습이 될 줄 알았던 이 기괴한 사건은 당사자인 정윤회 씨와 박지만 회장 측이 유력 언론의 지면을 두고 난투극을 벌이면서 오히려 그간의 ‘비선 실세 의혹’의 실체가 드러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그 실체가 일부 말을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꼭 같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대통령의 과거 측근과 동생이 신경전을 벌이는 이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던 핵심 지지층까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것은 박근혜 정권에게는 비바람 정도가 아닌 폭풍우가 됐다. 여론조사에서 50대 이상 영남권의 지지율까지 흔들리는 결과가 나오자 보수언론은 비상등을 켰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나서서 오히려 정권을 흔드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헌법재판소가 제 시간에 결정을 내려준 덕에 정권의 뿌리까지 흔들 것처럼 퍼부어댔던 폭풍우는 다행히 그쳤다. 비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흩어졌던 정권에 대한 지지도 복구되는 과정에 있다. 50대 이상 영남권의 보수적 유권자들이 좋아하는 이념문제를 건드렸기에 다시 국정운영 동력을 복구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통합진보당의 당원들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는지, 이들이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유사한 정당을 다시 창당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국고에 귀속돼야 할 통합진보당의 재산이 혹시 빼돌려진 것은 아닌지, 따져야 할 문제는 많다.

박근혜 정권 입장에서 더욱 즐거운 것은 이 논란이 최소한 내년 4월 예정된 재보궐선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거의 100%라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소속이었던 인사들이 재보궐선거에 출마를 하니 마니부터 시작해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과 진보정당으로 분류되는 정의당이 이들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지 여부 등을 두고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최대한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들과 야권을 연결시켜야 이후의 정치적 국면에서 유리하다. 이런 기회를 그들이 놓칠리 없다. 그러니 정권 입장에선 적어도 내년 재보궐선거까지는 즐겁게 ‘종북’ 타령만 해도 된다.

   
▲ 23일 통합진보당 의원실과 사무실이 몰려있는 국회 의원회관 5층에서 한 관계자가 복도에 놓여진 물품을 청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타까운 것은 진보정당들의 사정이다.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나머지 진보정당들은 과거부터 통합진보당 ‘주도세력’(?)과 거리를 둬왔다. 2007년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며 민주노동당으로부터 갈라져나온 진보신당은 ‘진보의 재구성’을 통해 낡은 이념과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지만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견디다 못해 진보신당에서 2011년 탈당한 일부 세력은 남은 민주노동당 및 국민참여당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비슷한 시기 진보신당에서 탈당한 또 다른 일부 세력은 녹색당 창당에 결합했다. 남은 진보신당은 2012년 총선에서 2% 이하를 득표, 등록취소돼 노동당으로 재창당했다. 즉, 2007년 민주노동당 내의 소위 자주파 노선에 문제의식을 가졌던 진보정치세력은 위의 세 정당에 골고루 나뉘어 둥지를 튼 셈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번 국면에서 이 세력들은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반대하는 전선에 함께 설 수밖에 없게됐다. 헌법재판소 결정의 논리가 그만큼 궁색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은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이 그간 얼마나 북한체제의 논리에 맞는 행보를 해왔는지에 대한 설명과 이석기 의원 등의 황당한 언변이 대단히 위협적인 것이라는 호들갑으로 채워져 있다. 헌법재판관들과 공안검사 출신인 헌법재판소장은 그들이 얼마나 괴상한 집단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였지만 이것이 통합진보당이라는 합법정당의 해산으로까지 이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사실은 곧 ‘진보정치세력’으로 통합진보당과 같이 묶일 수밖에 진보정당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걱정하며 연대투쟁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정치적 환경을 강제하고 있다.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임의적 논리에 의해 해산당할 수 있다는 정세 인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녹색당 관계자들이 지난 1월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총선 득표 2% 미만인 소수정당 등록 취소 위헌제청사건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지도 체제는 냉전의 산물이 한국적으로 변질된 결과다. 그들이 신주단지로 모시는 ‘주체사상’은 스탈린주의의 한 아류이다. 1990년대 초반 소련 붕괴 이후 전세계의 좌파들은 소련의 국가사회주의와 변혁적 방법론으로서의 스탈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한국의 경우 분단이 고착화된 구조 때문에 진보세력이 스스로 이 낡은 사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발목을 잡혀왔다. 1990년대의 진보정당 창당 시도와 민주노동당의 창당, 그리고 이어진 진보정치의 재편은 이 낡은 사상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반복된 결과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이 노력들은 결실을 맺지 못한채 당분간 유예된 채로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보수언론들은 야권이 ‘종북세력’과 결별해야 하며 통합진보당과 같은 정당을 다시 창당하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고 연일 윽박지르고 있는데, 오히려 이들의 노력이 진보세력의 자기혁신을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오히려 이들이 목놓아 부르는 ‘종북’이 ‘극우’와 적대적 공존을 이루고 있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니 통합진보당의 해산 앞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뉴스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물론 앞서도 설명했듯 이는 보수언론의 입장에선 나쁠 게 하나도 없다. 진보세력의 자기 혁신이 실패하든 말든 자신들이 정치적 이득을 보는 현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을 빌려 써보자면 진보가 ‘종북’을 하면 해산하고 ‘종북’을 안 하면 철저히 무시하는 게 이들의 전략이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도 기어코 이 상황을 돌파해 자기혁신을 쟁취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가 오늘의 진보정치세력에게 주어져 있다.

김민하 기자  acidki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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