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2일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의 핵심은 4대 부문의 구조개혁이다. 4대 부문이란 노동, 교육, 금융, 공공부문인데 특히 가장 파괴력이 클 것으로 보이는 분야는 노동분야다. 대다수 국민의 직업적 안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야인데다 그간 ‘중규직’ 등의 논란이 뜨거웠던 전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한겨레 23일 1면 기사.

이번 정부안의 발표로 그러한 논란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겨레>가 23일자 1면에 <‘쉬운 해고’ 밀어붙이고 ‘파견 노동’은 고삐 푼다>는 제목으로 정부안의 내용을 전하고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정부가 ‘정규직 과보호’를 문제삼으며 임금체계 개편, 임금피크제 활성화, 개별 해고에 대한 절차 및 요건 완화 등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과 55세 이상 파견노동의 전면 허용 및 기간제 고용 기간의 연장 등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관점은 <경향신문> 역시 마찬가지로 강조하고 있는 바다. <경향신문>은 이날 1면 기사에서 정부가 양극화와 가계부채 등 한국 경제의 고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대책보다는 ‘쉬운 해고’를 통해 노동시장을 유연화 하겠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경향신문>은 노동시장 유연화가 기업에 유리한 대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갈 길 험난한 최경환표 내년 경제정책방향>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최경환 경제팀이 경기 확장 정책을 내년에도 그대로 준용해 빚잔치를 벌일 예정이면서 대기업에 편향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새 일자리를 만들고 서민들의 빈 지갑을 채워줄 임금인상이 뒷받침돼야 내수시장도 살아난다”면서 “돈을 풀더라도 서민경제에 풀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23일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사설.

<한겨레> 역시 이날 사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노동시장 개혁을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크며 현재 한국노총이 참여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의 논의에도 방해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겨레>는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의 대안으로 최경환 부총리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내용의 종합대책을 조속히 제시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정부 태도로 보아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겨레>는 특히 정부가 재벌개혁 및 경제민주화 문제에서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 23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1면.

상대적으로 진보적 논조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이 두 신문들에 비해 보수언론들은 이번 대책에 포함된 군인연금과 사학연금 개혁 등을 강조하는 모양새다. <조선일보>는 1면 톱에 <내년에 사학·군인연금도 손본다>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고 <동아일보> 역시 1면 톱에 <공무원 이어 군인-사학 연금개혁 태풍 세진다>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기사 본문을 보면 제목에서 강조한 직역연금의 개혁보다 새 학기를 9월부터 시작하는 소위 ‘가을학기제’가 먼저 등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가을학기제와 노동시장 개편 방안 설명에 해당하는 두 개의 문단을 먼저 배치한 후에야 연금개혁 문제를 서술하고 있다. 물론 반드시 제목에 등장한 사안에 대한 서술이 기사의 맨 앞 문단에 위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신문이 동일한 편집 상의 특이점을 나타낸 것은 어떤 ‘판단’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제기해볼 수 있다.

두 신문은 공통적으로 ‘가을학기제’를 크게 다룬 것에서 유사한 편집을 선보였다. <조선일보>는 4면에 <‘학교시계’ 바꾸는 가을학기제 세번째 시도…2016년 도입 여부 결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 내용을 크게 다뤘고 <동아일보> 역시 4면에 <‘봄 신학기제’ 개편시도 세번째…사회적 합의 이번엔?>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하지만 이 두 기사에서는 공통적으로 가을학기제 도입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밝히지는 않고 있는데 이미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도입이 무산된데다 도입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 등이 불필요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반영됐다.

▲ 23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4면 일부.

이 두 신문은 앞서 상대적으로 진보적 관점을 가진 신문들이 주목한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이 문제를 3면 4대분야 구조개혁의 내용 전부를 소개한 기사에서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다. 4면 가을학기제 관련 기사 하단에 관련 기사가 따로 배치돼있긴 하지만 그냥 언뜻 봐도 적은 비중이다. <동아일보> 역시 비슷한 비중으로 해당 사안을 보도하고 있는데, 3면 하단에 <노동계 의견 반영 ‘동반성장’문구 포함 해고 요건 완화 등 구체방안은 빠질듯>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해 혼란스러운 상황마저 연출하고 있다. 이 기사는 정부의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노사정 합의에 대한 것이다.

즉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편집과 비교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이 사안을 다루면서 굳이 연금개혁 문제와 ‘가을학기제’를 강조한 것은 ‘뜨거운 감자’인 노동시장 개혁 문제에서 눈을 돌리게 해 굳이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거의 같은 형식의 지면 편집을 선보인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 중앙일보의 23일자 1면 기사.

대표적 보수언론의 나머지 하나인 <중앙일보>는 이들과 다른 스탠스를 잡았다. <중앙일보>는 이날 1면에 <비정규직 4년으로 늘린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겨레>, <경향신문>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기사의 내용은 앞의 두 신문과 확연히 달랐는데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서 35세 이상 계약직 근로자의 계약기간을 최장 4년까지 늘려준다며 이를 ‘장그래법’으로 명명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또 정부가 비정규직으로 3개월 이상 일하면 퇴직금을 주고 계약기간을 채우고도 정규직 전환이 안 될 경우 별도의 이직수당을 받게 되며 비정규직 계약 갱신 횟수도 2년에 세 차례로 제한해 한 달짜리 초단기 계약을 남발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 역시 강조했다. 이외에도 이 기사에는 노조에 차별시정 신청 대리권을 허용하고 실업급여 수습 기간도 3개월에서 4개월로 늘린다는 점 역시 자세히 소개돼있다.

<중앙일보>는 4면에 이와 같은 내용을 ‘비정규직 처우 개선’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사설에서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이와 같은 내용의 노동시장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경우 사설에서 정부와 공공부문에서의 솔선수범을 요구한 것과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다. <중앙일보>는 <한국 경제 회생, 노사정 대타협에 달렸다>는 제목의 이 사설에서 “노사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정부는 어느 일방의 희생이 없도록 지원해 대타협을 꼭 이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어 다른 보수언론보다 훨씬 구체적인 주문을 내놓고 있다.

▲ 중앙일보 23일자 사설.

이는 뒤집어 말하자면 <중앙일보>가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논점을 흐려 비난을 자처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와 달리 ‘정면승부’를 택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상 피해가도 될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치는 이유는 어떻게 보면 이 문제를 오히려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물론 <중앙일보>의 이러한 ‘진정성’이 노동자 서민과 재계 중 결과적으로 어느 쪽에 유리한 것으로 작용할지는 분명한 것이다. 그러니 이날의 지면 편집은 적어도 보수언론 각각의 물적 기반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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