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구라와 가장 김구라. 그 놀라운 차이는 이미 적잖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비밀이다. 그것은 때론 독설가 김구라의 인간됨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워낙에 툴툴대는 캐릭터 탓에 잊어버렸다 새삼 놀라게 되는 인간 김구라의 신기한 면면이었다.

가정에서의 김구라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빠 – 사무치는 자식 사랑에 뜻밖에 꽤 트인 교육관까지 갖고 있는 –에 애절한 애처가라는 진실은 그 자신이 입 밖에 내어 자랑하진 않아도 이따금 드러내곤 하는 아내와 자식, 그 가족관에 얽힌 철학에 비추어 인식되곤 했었다.

언젠가 tvN의 토크쇼 ‘택시’에서 박준형, 김지혜 개그맨 부부와 대화를 나누었을 때였다. 오랜 시집살이와 융통성 없이 꽉 막힌 가부장의 극치인 남편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풀길이 없어 성형과 쇼핑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아내 김지혜의 얘기를 박준형은 내내 못마땅해 했다. 아니 그는 아내가 도대체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아내의 하소연에 줄곧 내뱉곤 했던 변명이 바로 이거였다. “아니 내가 바람을 펴. 때리기를 해. 도박을 하길 해.”

김구라의 처지에 비추어 그와 공감대를 형성할 인물은 남편 박준형일 것이다. 역시나 가장인 김구라에게 있어 박준형은 나 자신이고 그의 이해를 구하는 인물이 바로 김지혜 혹은 김구라의 아내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 특이하게도 김구라는 나 자신인 박준형을 다독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꾸짖으며 김지혜의 아픔을 이해했다. “박준형 씨가 하는 말 중에 가장 못난 말이 뭐냐면, 내가 바람을 펴. 때리기를 해. 도박을 하길 해. 그런 말이에요.”

그의 입원으로 밝혀진 공황장애라는 병명에 적잖은 대중에 충격 속에 술렁대며 새삼 ‘가장 김구라’의 미덕을 돌이켜보게 된 것 또한 같은 이유일 것이다. 최근 김구라는 극심한 불안증에 가슴이 답답해져 오고 이명에 시달리는 최악의 상황에서 병원 측의 입원을 권유 받게 된다. 병명은 정신적 질환의 일종인 공황장애였다. 가슴을 옥죄어 오는 불안이 죽음에 직면한 공포와 맞먹는다는 이 불안 증세가 어찌 그리 활기 넘치는 김구라에게 향해 있었을까. 언론과 네티즌은 최근 김구라의 가장 큰 스트레스였을 아내의 빚보증이 야기한 수십 억 원 대의 채무를 주목했다.

김구라의 아내가 적잖은 빚을 졌다는 사실은 쉬쉬하는 비밀이 아니었다. 당사자 김구라가 깔끔하게 해당 사실을 오픈하여 이미 방송으로 공표해버렸기 때문이다. 치부를 밝히겠노라는 폭로성 일침이 아니라 개그 소재로 삼아 동료 연예인에 심지어 아들 동현이와 함께 낄낄댔었기에, 그가 이만큼이나 공포와 불안 스트레스로 힘겨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었다.

김구라의 소속사 측은 그의 채무가 사실임을 밝히며 이는 아내의 빚보증이 만든 참극이며 그로 인해 김구라가 떠안은 빚의 액수는 알려진 금액만 18억임을 추정했다.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상당한 빚을 갚아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간 김구라가 이전의 세련된 여유 없이 왜 그토록 초조하고 조급해 보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가 그동안 아내를 험담했던 것 또한 가정을 지키기 위한 그만의 발버둥이었다. 농담 소재로 끄집어낼 수조차 없을 울화통이 치미는 사건을 대중에게 오픈하여 아내를 꾸짖는 것 같으면서도 그 스스로 화를 삭이며 아내를 그리고 가정을 버리지 않으려는 그 자신의 다짐이었던 것이다. 입원을 권유 받을 만큼 극심한 불안 증세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이 대중 앞에 밝혀지자 네티즌은 새삼 김구라의 극진한 아내 사랑과 가장 김구라의 책임감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 중 주목받게 된 것이 한 방송에서 밝힌 김구라의 손수 쓴 가계부였다.

최근 김구라는 그의 고정 프로그램 ‘세바퀴’에서 무려 10년 동안 써왔던 가계부를 공개했다. 전문 가계부도 아닌 공백의 노트에 어찌나 빼곡하고 세밀하게 출입금 내역을 써왔던지. 2006년부터 빼곡히 적어 내려간 이 피와 땀의 흔적이 그 자신의 실수도 아니고 마음껏 욕해도 되는 타인도 아닌, 가족의 판단 착오로 인해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원통하고 기가 막혔을까. 남의 일이지만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김구라는 손수 가계부를 쓰는 이유에 대해 그저 ‘아내가 안 쓰니까!’라고 밝혔다. 웃으며 말했지만 그가 누누이 말했던 금전 감각이 없어 공과금 납부조차 안 하고 미루어 둔다는 아내의 일화에 비추어 김구라 혼자 이 많은 책임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또한 숙연해졌다. 싫어도 좋아도 그는 내조와 외조를 동시에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내는 김구라를 내조해줄 수 있는 유형이 아니라 오히려 김구라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김구라는 두어 차례 아내와의 첫 만남을 회상한 바 있다. 힐링캠프에서 택시에 이은 조각 조각난 그의 회상들을 엮어 보면 이 아가페에 가까운 희생과 배려의 근원이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힐링캠프에서 그는 다소 특이했던 아내의 첫인상을 떠올렸다. 긴 머리 긴 치마를 입은 여신의 환영이 아닌, 털털한 성격에 아톰처럼 툭 튀어나온 앞머리가 마치 김건모의 노래 가사 같았던 그녀.

언젠가 김구라의 선배는 청바지를 입고 나온 그녀에게 “너 다리 휘었다.”라고 말했고 그때 처음으로 김구라는 아내의 치부라 말할 수 있을 휜 다리를 인식했다. 어쩐 일인지 아내의 다리가 휘었다는 치부 따위 김구라의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김구라의 이상형은 다리가 예쁜 여자였다고 한다. 예쁜 다리를 가진 여자와 사귀고 싶었던 김구라. 그럼에도 아내의 휜 다리를 결점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김구라의 손수 써내려간 가계부에서 그의 눈물과 땀이 서려있는 10여년의 결실 이상으로 가슴을 울린 출금 내역 하나가 있었다. 어머니 십 만원. 장모님 이십 만원. 시월드가 고유 명사가 되어 버린 이 시대에, 남자는 결혼하면 느닷없이 효자가 된다는 말이 주부님들의 단골 하소연인 21세기에, 장모님에게 10만원 더 용돈을 챙겨 드렸다는 김구라의 사용 내역에 그의 아내 사랑이 그대로 드러나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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