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에 이어 쌀이다. 3가지 풍경이 교차하고 있다. 직불금이란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작금의 돌아가는 꼴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 외엔 도리가 없는 대다수의 입장에서는 냉수 먹고 이 부러진 상황이다. 반면, 쌀 팔아 죽 사먹으려 했던 관료들 그야말로 밥그릇 내놓게 생겼다. 마지막으로, 정권 입장에서는 경제가 엎쳤는데 쌀까지 덮친 꼴로 몰리고 있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 대표는 직불금 부정 수령이 '형법상 사기죄'라고 했고, 정부, 공무원 직계존비속까지 직불금 조사를 한다고 나섰다. 핫(hot)~ 뜨거운 경험한 정권은 좀 더 영악스러워졌다. 쌀 직불금이 정국의 다이나마이트급 뇌관이 됐다. 보도를 자제(!)하던 조중동 마저도 뒤늦게 직불금 파문에 합류했다. 4명의 국회의원이 수령한 것을 확인해 주었다. 추가 사실은 계속 나올 것이다. 뒤늦은 조중동의 보도 합류를 환영하며, 이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 지 지켜볼 일이다. 만만치 않을 것이다.

외신이 한국 경제를 취급하는 묘사가 흡사 97년, ‘again 1997’이란다. 바다 건너서 그렇게 설명해주지 않아도 경제 자체가 총체적 위기, 격랑에 휩싸인 상황에서 제법 폼 좀 잡고 산다는 우라질 것들이 타서는 안 되는 푼돈까지 해쳐 먹어대니 그야말로 세기말적 상황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아, 세기말적 상황… 그것은 역설적으로 이 난국의 돌파구가 상상력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출처가 건강보험공단으로 보이는 표 하나가 상상의 입맛을 자극한다.


이 표는 오늘, 언론계에 '형법상 사기꾼'에 해당하는 언론인이 463명이나 있음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평균 소득이 5696만원에 이르는 이들이다.

그리고 그 객관의 틀을 깨고 상상을 좀 해나가 보자. 우선, 저 정도 평균 소득이면, 방송국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이들의 연봉쯤 된단다. 그런데 입사한 지 몇 년 안 된 이들이 이토록 파렴치하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그 자체로 너무 디스토피아 적이다. 언론인이 되겠다는 청운의 뜻을 품고, 사회에 몸을 담근 지 얼마 안 된 이들이 그랬다고 벌써 믿지는 말자.(없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궁금하니, 감사원에서 속시원히 명단의 세부사항까지 밝혀주면 좋겠다. 그것이 국가를 이롭게 하는 일 아니겠는가?)

▲ 10월 16일자 조선일보 1면.
그렇다면, 신문사로 눈을 돌려보자. 한겨레 출신 선배에게 물어보니 한겨레엔 저 정도 평균 소득을 올리는 이가 별로 없단다. 신문시장의 양극화와 신문의 위기가 보편화된 상황에서 신문사에서 저 정도 소득을 평균으로 얘기할 만한 집단을 조중동 기자들 정도이지 싶다.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조중동은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직불금 보도에 합류했었구나.

선배가 친절하게 일화를 하나 곁들여 준다. 때는 80년대. 시장이 기자실을 찾아와 넌지시 묻는다. “기자님들 오늘 시간들 괜찮으시면, 시찰이나 같이 나가시죠?” 기자들은 알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시장을 따라나선다. 도착한 곳은 어느 허허벌판. 시장이 말한다. “저기, 땅이 좋죠?” 그게 바로 땅을 사라는 아주 직접적인 권유였다고 한다. 그렇게 일부 기자들이 돈을 벌었단다. 믿거나 말거나.

정국의 뇌관이 될 만한 이슈를 알고도 보도 않던 조중동, 선배가 들려준 일화. 노블리스 오불리제(Noblesse Oblige)는 고사하고 정승처럼 벌어 개처럼 쓰는 걸 능력으로 아는 어떤 이들.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자의 정보 접근권. 모든 정황적 소스들을 버무려보면 이렇다.

일반인들(일부 농민들 조차)은 알 수가 없는 ‘쌀소득보전기금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서류 농사’를 지어도 돈을 주는 아주 허술한 법이다. 스스로 사회를 운영해 나간다고 믿는, 1만7천명 정도가 앞으로 서류 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고 껄껄 거린다. 게다가 8년간 서류 농사로 수령금을 타내면 양도소득세까지 면제된다. 천박하게 작동되는 귀족의 카르텔과 이를 폭로해야 할 기자들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평균소득이 5696만원 정도 되는, 땅을 가진 463명의 기자들이 대결을 포기한다. 폭로라는 본연의 임무와 수령금을 맞바꾼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그렇지 않은 대다수 기자들의 팀장이고, 데스크이다. 혹은 시장 지배력이 압도적인 재벌 언론의 기자이다.

기자가 대다수에 앞서 차를 몰게 되면서 또 골프를 치게 되면서부터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부동산 계급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신종 카스트 사회에서 또 기자들이 대다수보다 많은 땅을 소유한 상황이다. 또 무엇이 달라질까?

모쪼록, 직불금 파문이 세상을 좀 더 공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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