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후배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내게 물었다. “이게 최악이겠죠? 앞으로는... 나아지겠죠?”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이보다 수십 배 이상의 나쁜 일들이 더욱 많이 일어날 거야. 네가 사는 동안.”

알고 있었지만, 현실은 더욱 가혹했다.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최악의 일들이 올해. 일어났다. 내 일상에서도. 내 발 딛고 있는 이 땅에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상황에서 전투를 치른다. 큰 전쟁 속 어느 하나의 전투일 수도 있고 개별적인 싸움일 수도 있다. 항상 이길 수만은 없다. 나는 친구로 여겼던 이와 오랜 싸움을 치러야 했고 회복 불가능한 내상을 입고 상처투성이로 복귀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원래 우리 각자의 싸움은 대부분 그러하다. 이 땅에 일어난 일은 더했다. 미디어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감당할 수 없는 방향으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나빠졌고,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으면서 입장을 가지는 일들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 미우라 켄타로의 만화 베르세르크의 주인공 가츠

사업자의 논리로 치환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내 능력은 항상 모자랐고, 모자랐고, 모자랐다. 언론은 제 이름을 지키지 못했고 그 후과는 우리에게 즉각적인 타격을 가져다주었다. 어린 생명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수장되었고 빤히 눈앞에서 우리는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노동자들은 하늘 가까이 올라가 목숨을 걸었고, 우리 옆에서 수많은 이들이 울고 다쳤다.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는 훼손되었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정치를 한다는 누군가는 지지할 수 없다 말했다.

미우라 켄타로의 만화 베르세르크의 주인공 가츠는 처절한 전투를 계속한다. 끊임없이 출몰하는 악령들을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싸워내야 한다. 지옥은 바로 현재였고, 가츠는 ‘광전사의 갑주’를 입는다. ‘광전사의 갑주’는 갑주를 입으면 갑주에서 강철 심이 온몸에 박혀 통증을 못 느낀 채로 온몸의 전투력을 극도로 상승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지만, 계속해서 갑주를 입고 싸우다가는 온 몸의 모든 뼈가 부서지고 모든 피가 뿜어져 나와 죽게 된다. 그것을 모를 리 없지만, 지금 싸움에서 도망칠 수 없고 싸워내야 되는 한, 가츠는 광전사의 갑주를 입고 싸울 수밖에 없다.

지옥에서 버텨내며 싸워야 되는 우리 옆의 많은 이들이 이미 광전사의 갑주를 입고 있다. 스스로의 몸을 담보로 극단적인 힘을 발휘하여 버텨내야 한다. 결국 끝이 보일지라도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희망의 단초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이 지옥 속에서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다. 지옥 속을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내년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도와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희망 섞인 인사를 보낼 수 없어서 유감이다. 이 해를 보내며. 나의 많은 친구들과 친구의 친구들에게 미생 오과장의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버텨라. 그리고... 이겨라.” 부디.

정미정 / 성균관대학교 언론학박사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예오락특별위원회 위원
현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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