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53년만에 쿠바와의 적대관계 해소하고 국교를 정상화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현지시각 17일 각기 이러한 내용의 입장을 밝혔다. 국내 언론은 이와 같은 국제관계 변화에 의한 북미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 경향신문 19일자 4면.

<경향신문>은 19일 4면에 미국과 쿠바의 악연을 역사적 관점으로 개괄한 기사를 배치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1898년 미국이 쿠바를 점령한 이후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친미정부를 뒤엎는 혁명을 일으킨 것을 기점으로 양국은 적대관계가 됐고 미국의 경제제재와 암살 시도, 양국의 군사적 대치 등으로 관계는 꾸준히 악화돼왔다. 그러나 2008년 피델 카스트로가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력을 넘기고 미국에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양국의 관계는 천천히 개선돼왔다.

<경향신문>은 해당 기사 하단에 <미 “신뢰 깬 북한에 대한 정책은 변화 없을 것”>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향후 남북관계의 전망을 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조시 어시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쿠바 정책을 수정한 논리가 북한에도 적용될 수 있느냐”라는 물음에 단호하게 “노”라고 대답했다. 북한은 쿠바와 달리 핵보유를 선언했고 미국과의 수차례 대화에도 신뢰를 구축하지 못한데다 북한을 상대로 해서는 단기간에 외교적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하다는 게 그 이유다.

▲ 한겨레 19일자 6면.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진보적 관점을 가진 언론으로 분류되는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한겨레>는 6면 <대북정책 훈풍 기대 나오지만…“북한과 쿠바는 많은 차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쿠바의 경우 1990년대부터 인권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대량살상무기 등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아 협상이 용이했지만 북한의 경우는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물론 인권문제와 경제정책에 대한 불신이 있어 정책 전환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두 신문은 미국의 결단을 통한 북미관계의 개선을 촉구했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을 통해 “양쪽의 발상 전환과 적절한 중재자가 전제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면서 “우리나라는 북한 핵 문제와 해결과 북-미 수교 등이 동시에 이뤄지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고 썼다.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로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제언이다.

<경향신문> 역시 이날 사설을 통해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 성실히 응하지 않았고 핵과 미사일 문제도 있으며 인권침해 역시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지만 그럼에도 바로 그렇다는 사실이 북한 문제를 방치할 수 없게 한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러 어려움이 있음에도 대화와 협상이 개혁을 독려한다는 쿠바의 교훈을 북한에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 동아일보 19일자 사설.

그러나 보수언론들은 이와는 다른 시각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1면에 <쿠바 껴안은 美, 북에도 손내미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이 기사에서 <동아일보>는 “일각에서는 임기 2년을 남기고 외교정책에 업적을 남기려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과 쿠바에 이어 북한과도 대화를 적극 추진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고 썼다. <동아일보>는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 봉쇄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며 “카스트로 정부가 국민을 옥죄는 명분만 제공했을 뿐”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대북 제재 실효성 논란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대목”이라고 부연했다. 즉, 미국 정부가 대북 제재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을 논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동아일보>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북한이 사는 길 제시한 53년 만의 미-쿠바 국교정상화>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쿠바와 북한은 ‘형제국가’로 부를 정도로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면서 “하지만 쿠바는 결정적 순간에 북한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서술했다. 특히 라울 카스트로가 2018년 임기가 끝나면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천명한 바 등을 볼때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동아일보>는 “쿠바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비결이 핵 위협이 아니라 개혁개방임을 보여줬다”면서 “북한은 지구상 유일한 은둔국으로 얼마나 존속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썼다. 즉, 북한의 핵무기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 조선일보 19일자 사설.

같은 보수언론인 <조선일보>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조선일보>는 <北 ‘형제 국가 쿠바’의 변화에서 교훈 얻어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쿠바의 개혁·개방 조치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로 이어졌다는 점과 이란이 미국의 주도로 핵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을 두고 “허무맹랑한 꿈”이라며 “북한이 핵을 고집하는 한 고립무원의 처지를 벗어날 길은 없다”고 주장했다.

▲ 중앙일보 19일자 3면.

<중앙일보>의 경우 미국이 쿠바와의 관계를 정상화함에 따라 북미관계가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조한 데에서는 앞의 신문들과 관점을 같이 했다. <중앙일보>는 3면 <“영원한 적은 없다…평양에 쿠바를 보라는 것”>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향후 대북정책의 방향과 북한의 대응 여하에 따라 북미관계가 변곡점을 맞을 수도 있다”면서 미국의 대북전문가 8인의 의견을 전했다. 이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와의 관계를 정상화 한 것은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일 수 있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 쿠바처럼 개혁·개방에 나선다면 국교 정상화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전문가들은 북한이 비핵화 약속 이행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중앙일보 19일자 사설.

여기까지는 앞의 보수언론과 같은 논조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보수언론과 일부 차별화된 관점을 드러냈다. <중앙일보>는 이날 <미국,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적극 나서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미국은 정전협정의 당사국으로서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현실적으론 북핵 문제에 대해 선(先) 핵 포기 입장을 완화해 장기적 해결 과제로 삼으면서 관계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핵 문제에 대한 합의가 어렵더라도 다른 부분에서 관계개선을 모색하라는 주문을 한 것이기 때문에 보수 언론과는 차별화되는 관점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중앙일보> 역시 사설의 말미에 “북한도 바뀌어야 한다”라고 썼지만 미묘한 관점의 차이를 보여준 것은 명백하다.

물론 <중앙일보>의 관점도 한계는 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입장이 바뀌려면 우선 우리 정부의 비핵화를 전제한 대북정책이 재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당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등의 공약으로 비핵화와는 별개로 인도적 지원 등을 통한 대북관계 개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금 이러한 구상대로 대북관계가 풀리고 있는지 다시 점검할 때이다. 앞서 <한겨레>의 사설 등이 지적하는 바가 이러한 부분이다. <중앙일보>는 경제면에서는 늘 친기업적이지만 대북문제에 관해서는 종종 전향적 태도를 보여주곤 하는데 앞으로 미국과 쿠바의 관계개선을 계기로 우리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낸다면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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