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힐링, 위로 이런 것을 내세우고 싶어 한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다. 처음 <미생> 카피가 ‘그래도 살만한 인생’이었는데 제가 하려는 드라마 방향과는 상반된 카피였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인생’이어야지 ‘그래도 살만한 인생’이라고 하면 시청자들이 위로를 얻지 못할 것 같았다. ‘사람들도 이렇게 힘들잖아, 너도 힘들지? 그래도 살아야 하잖아…’ 이런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웹툰 원작을 각색한 tvN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미생>이 종영까지 단 2회를 남기고 있다. <미생>은 평균 시청률 8%, 최고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응답하리> 시리즈 이후 tvN의 대표 흥행작으로 올해 하반기를 뜨겁게 달궜고 이른바 ‘미생 신드롬’까지 불러일으킨 바 있다.

▲ tvN 8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미생> (사진=tvN)

18일 낮 2시, 서울 청담동 씨네시티 3층 M큐브에서 <미생>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김원석 감독과 정윤정 작가는 ‘불안한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담고 싶었고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인생’을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코미디’로 그려내고 싶다고 밝혔다.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코미디 <미생>

김원석 감독은 “사실 연기자가 연기를 아무리 잘해도 그 밑그림이 없으면 색칠할 수가 없는데 (정윤정 작가는) 코미디 대본에 대한 일가를 구축했다. 제가 만나본 어떤 드라마 작가보다 페이소스 느껴지는 코미디를 잘 쓰신다”며 “<미생> 웹툰이 숭고하니까 (드라마도) 장엄하고 숭고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한 건) 너무 잘한 것 같다. 잘 만든 코미디의 대본이 나왔고 이성민 씨나 다른 모든 분들이 그 물 안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좋은 에피소드를 꼽아달라는 질문에도 김원석 감독은 코미디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김원석 감독은 1국(<미생>은 한 회차를 바둑에서 따온 ‘국’으로 표현한다)에서 장그래 어머니가 첫 출근을 앞둔 아들에게 넥타이를 엉망으로 매 주는 씬, 8국에서 오상식 과장이 ‘갑’이 된 친구에게 접대를 하는 씬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성민 씨가 어제 말하더라. 친구 접대를 하기 위해 이상한 옷을 입고 춤추고 노래해야 하는 씬인데 너무 힘들었다고. 힘들면서도 감정이입이 딱 됐다고 하더라. 연기를 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누군가는 정말로 계약을 따기 위해서, 이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짓을 한다고 생각하니 몸과 마음이 다 힘들었다고 한다. (…) 우리 드라마는 부부가 맥주를 한 잔 마시면서 보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드라마가 되었으면 했다. 원작은 술 취한 게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우리 드라마는 많이 마시거든요. 그 술 마시는 장면도 다 좋았던 것 같다”

시청자들이 <미생>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정윤정 작가는 “불안한 세상과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거기 사는 ‘나’에 대한 연민으로 작품을 쓰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외로움과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서 좋아해주시는 게 아닌가 싶다”며 “극중에서 하대리, 강대리가 못되게 구는 것 같지만 사실 상대에 대해 연민을 깔고 앞에 못되게 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홍보팀 사보 편집대행사에서 딱 9개월 간 직장생활을 해 봤다는 정윤정 작가는 “이런 저런 원고들과 사진들을 가지고 가편집된 책자를 들고 결재를 맡으러 삼성 본관으로 가는 나날들… 그분들이 저를 딱히 박해하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때의 감정들이 <미생>에 다 녹아있다”고 설명했다.

정윤정 작가는 “40대 남자 직장인에게 가슴 찡한 5가지가 있다. 술 마시고 취해서 택시 잡다 넘어지는 것, 큰 양복 아래 들어있는 초라한 몸, 지갑 안에 들어있는 복권, 식판에 대고 밥을 먹는 모습, 술 먹고 오바이트하는 것. 그 5가지 요소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들이 있다. 그게 미생 쓰는 데 가장 기본적인 정서가 됐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된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 <미생> 김원석 감독과 정윤정 작가 (사진=tvN)

김원석 감독은 <미생>을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코미디’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재차 언급했다. 그는 “짠한 느낌이지 눈물이 나지는 않는, ‘웃픈’ 드라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 2회는 사람들을 울리려고 만든 편은 아니었다. 많이 우셨다는 분들을 보고 ‘아, 정말 사는 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훅 캐치하는 지점이 있었다면 그런 게 아닐까. 외롭고 우울한 분들에게 손을 내밀어준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저는 <성균관스캔들> 때부터 <몬스타>, <미생>을 통해 항상 어린 친구들 얘기를 하고 싶었다. 불안과 외로움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 아래서”라며 “현재 젊은 세대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된다는 것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어린 친구들에 대한 연대감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정윤정 작가는 “자료조사 때 20대들의 스펙을 보고 너무 놀랐다. 그런 스펙을 가진 20대, 회사생활을 해야 하는 그 사람들한테 작가가 고난을 주면서 괴롭힌 것”이라며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다른 사람들 힘든 것 보면서도 위로를 많이 받지 않나. (시청자들의 열광은) 그런 연장선상이 아니었던가 싶다. 저 안의 저 잘난 사람들도 저렇게 힘들구나 하는…”이라고 말했다.

<미생>은 ‘각색된 새로운 창작물’ 강조… 원작 선 긋기?

<몬스타>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는 김원석 감독과 정윤정 작가는 서로를 ‘코미디에 대한 일가를 이룬 작가’와 ‘제가 본 최고의 천재감독’이라고 표현하며 끈끈한 파트너십을 자랑했다. 특히 김원석 감독은 정윤정 작가가 창작한 부분을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나 에피소드로 꼽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김원석 감독과 정윤정 작가는 가장 좋아하는 대사로 ‘내일 봅시다’를 들었다. 정윤정 작가는 “‘내일 봅시다’라는 장면이 가장 명대사라고 생각한다. 저는 항상 ‘내일 봅시다’라고 말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김원석 감독과 정윤정 작가가 입을 모아 '명대사'라고 꼽았던 강대리의 '내일 봅시다' 장면

김원석 감독은 “우리 드라마에서 ‘내일 봅시다’는 단순히 내일 보자는 게 아니라 ‘네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는 의미였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다. ‘우리 애’라는 표현도 원작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라고 전했다. 또, “그래가 바둑을 잘 두다가 실패했지만 내세우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놈이라는 걸 알게 된 백기가 술 한 잔 하자고 하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나는 내가 가진 스펙이 이렇게 부끄러웠던 적이 없다. 근데 내가 가진 스펙 잘못도 당신의 과거 잘못도 결국 우리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는 식의 대사가 있다. 이것도 우리 드라마에서 중요한 대사라고 본다”고 말했다.

드라마 <미생>이 수많은 각색이 들어간 ‘새로운 창작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 김원석 감독은 이날 ‘원작과는 다른’, ‘원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웹툰 <미생>의 시즌2가 예고돼 있는 만큼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를 원작자에게 자주 물어보았다고도 전했다. 한석율이 원작에서는 장그래에게 끝까지 존댓말을 하는데 반말해도 될지, 장백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장그래가 조금 절실하지 않은 것 같은데 더 절실하게 만들어도 될지 등등.

원작과의 비교에 대해서도 “시청자들이 조금 편하게 보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넌지시 내비쳤다.

“원작 에피소드와 새로 추가된 에피소드가 너무 차이가 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 저는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이시길 바랐다. <미생>이란 웹툰에 이런 코미디가 들어와도 돼? 내지는 이런 판타지가 들어와도 돼? 하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부 그런 분들은 어떻게 보면 조금 손해를 보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감상하시면 한다.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마저도 자기 작품이 이렇게 해체되고 이렇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셨다고 했다. 윤태호 작가는 대본 작업이나 캐스팅 작업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시청자로만 해서 문자를 저한테 주신다. 원작자조차도 편한 마음으로 보는데 시청자 분들이 너무 엄격한 정자세로 보려고 하시는 것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김원석 감독은 또한 원작보다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더 이입할 수 있게 각색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처음 봤을 때 타인 같던 사람들 속에서 나와 온도가 맞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그 사람들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지고,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고”라며 “사실 원작은 그런 느낌 위주로 되어 있진 않다. 원작은 굉장히 지적이고 철학적인 느낌으로 쓰셔서 초반에 좋은 감정들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는 측면이 있었다. 쉽게 끝까지 읽지 못하는… 저희는 (원작자에게) 그쪽 방향을 강조하는 걸로 가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 2국 '우리 애라고 불렀다' 장면

그러면서 “<미생>은 같은 대사가 똑같은 맥락으로 쓰인 대사가 거의 없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외로움, 불안감 이런 것을 더 드러내고 그것을 가진 사람들끼리 더 알아봐주는 순간에 집중을 하는 데에 원작의 대사를 변형해서 사용했다. 많은 대사와 구성을 새로 만들어냈다”고 덧붙였다.

반면 정윤정 작가는 원작 언급에 조금 더 조심스러웠다. 정윤정 작가는 “<미생>은 드라마로 만들기 불가능한 원작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너무 모든 사람들이 그러시니까 ‘어 진짜 그래?’하면서 궁금해지더라. 창작의 영역에서 불가능한 게 뭐가 있지? 안 되지는 않을 텐데?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다시는 안 그러려고 한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건 안 하는 게 인생을 편하게 사는 길이라고 본다. 저도 중간에 안 될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아 이래서 다들 안 된다고 그랬구나, 를 확인하면서 제가 느꼈던 건 ‘나 망했구나’였고 그 다음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나 망했으니까 이 물에 빠진 데서 살아서 기어 올라와야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1년 2개월 동안 살아남기 위해서 대본을 썼던 것”이라며 “지금은 ‘살아남았구나’ 그 정도 심정이지만 살아남은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미생>의 성공 이후, <미생>이 지상파로 갔으면 주인공들이 서로 배 다른 형제자매이거나 복수를 중심으로 하는 막장 드라마 혹은 여주인공을 두고 연적 관계를 형성하는 뻔한 멜로로 흘러갔을 것이라는 우스개가 많았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김원석 감독은 “KBS에서 드라마를 배웠고 여기에서 등장하는 좋은 선후배 관계가 제가 신입사원 때 겪었던 일들이 많다. KBS에서 했다고 해서 (항간에 나오는) 우스개소리처럼 되진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지상파로 갔으면 이 정도 반향은 못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생>은 이미 마지막 촬영을 마친 상태다. 단 두 회차만을 남긴 <미생>은 19일, 20일 오후 8시 3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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