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세균, 박지원 의원 등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 3명이 17일 비상대책위원직에서 함께 물러났다. 세 사람의 사퇴는 전당대회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서 흔히 '빅 3'로 분류되지만, 아직까지 출마선언을 하지는 않았다. 같은 날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당에서 처음으로 당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했고 이어서 18일에는 조경택 의원이 역시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빅 3'를 '겁쟁이 3형제'라 몰아붙이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는 30~31일 대표와 최고위원 후보자 등록을 받고 이후 한 달여간의 선거운동 끝에 2월 8일 전당대회를 열어 차기 대표 및 지도부를 선출하게 된다. 차기 지도부는 임기 도중 붕괴하지 않는 이상 2016년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할 것이란 점에서 예전부터 당내에서 지극히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판세에 대해선 평이 엇갈린다. 새정치민주연합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문재인 의원과 박지원 의원이 1대1로 붙을 경우는 판세가 7대 3 정도다. 세 사람이 다 나오면 격차가 다소 줄어들기는 하겠으나 문재인 의원이 승리할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한 정치부 기자는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라는 게 예전처럼 명료하지가 않고 복잡하게 꼬여 있다. 문재인과 정세균이 같은 친노이기 때문에 표를 분할한다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상황조차 아니다. 의외로 박지원이 신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예측했다. 전망이 된다는 쪽과 전망이 힘들다는 쪽의 의견이 엇갈렸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 시점에서 세 사람의 출마의사는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정세균 의원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예측이 있을 정도다. 이는 한달 전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다. 11월 초엔 박지원 의원과 정세균 의원의 출마의사가 확고했고 문재인 의원이 저울질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11월 초 <헤럴드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비대위원 2명은 출마가 확실한데, 1명은 모르겠다”고 말한 상황이었다.
그 한 명은 문재인 의원이었고, 그렇기에 박지원 의원은 문 의원의 출마를 반대하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지난 11월 10일 박지원 의원은 "우리당의 대권후보들이 정책과 아이디어로 경쟁하면서 국민의 인정을 받고, 당원의 검증을 받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당권을 맡게 되면 진흙탕에서 싸울 때는 싸워야 하고, 국민과 당원으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 양보할 때는 과감하게 양보해야 하기 때문에 상처가 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의 목표인 집권을 위해서는 분리가 되는 것이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상 문재인 의원을 대권주자로 인정하면서 당권은 자신이 가져가는 것이 더 좋다고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문재인 의원의 고심에는 맥락이 있었다. 당시엔 ‘친노’가 문재인의 당권을 지지하고 ‘비노’가 반대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오히려 박지원 의원이 말하는 바로 그 논거로 문재인 의원의 당권 도전을 반대하는 ‘친노’ 인사도 많았다. ‘친노’는 자신들이 당내 주류인 상황에서 대선후보로 생각하는 문재인 의원이 상처입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대선이 가까워진 시점에 다시 등장하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의견은 ‘친노’ 내부에서조차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하면 다시 대선에 나와도 필패다. 문재인 의원이 당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집권을 꾀할 수 있다”는 반론에 부딪혔고 이에 문재인 의원은 출마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거의 의사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 새정치민주연합 정세균 비대위원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주요 현안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 경쟁이 한 달 전과 비교해도 심각한 무관심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11월 말 <세계일보> 보도로부터 촉발된 ‘비선 실세 국정농단 의혹’이라는 거대한 태풍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 경쟁과 상관없이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오른 박원순 서울시장을 둘러싼 이러저러한 논란, 거기다가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이라고 적고서 마카다미아로 읽는다) 회항’으로부터 나온 후폭풍 등 대중들의 눈을 끌 것이 많기도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 하다는 것이다. 특히 비교적 실체가 분명히 보였던 자원외교 국정조사에서도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한 상황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역량이나 그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를 회의하게 만든다. 그들은 비선 실세 국정농단 의혹에 대해서도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제를 제안했지만 애초 자원외교에 비해 훨씬 더 검증이 어려운 이 사안에 대해서 그저 시간을 끌고 여야 공방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방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박근혜 정부는 끝없이 이슈를 던져주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부의 눈치만 보며,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그 이슈를 끝없이 소비만 하는 형국이다. 이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역량의 한계인지 아니면 그들이 겉으로는 뭐라건 속으로는 총선 공천이 걸린 당권 경쟁에 골몰해 있기 때문인지는 외부에서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대권에서 두 번 실패한 야당의 절치부심하는 모습이라 볼 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가 끊임없는 실책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은 박근혜라는 개인이 대중에게 소구하는 매력과 서사 탓이기도 하겠지만, ‘대안’으로 여겨지는 정치인 내지 정치세력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여권주자는 대통령의 기세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야권주자는 내부경쟁에 골몰하는 상황에서 ‘유력한 차기주자’나 ‘대세론’의 주역이 등장하기는 어렵다.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비대위원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주요 현안에 대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아마추어를 넘어 주먹구구식 국정운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빠지지 않는 비극이 있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연일 정권재창출을 하고 싶다면 ‘문고리 3인방’을 내치는 등 청와대 인사혁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조차 듣지 않으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가 그들에겐 골치일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말한다면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 물갈이’ 정도만 다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상황이라 말할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의 지지층을 포위하는, 혹은 박 대통령의 지지층마저 포섭할 수 있는 시대정신을 기조로 삼는 정치인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이 흔들려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제1야당’의 존재는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물론 책임은 모두에게 있지만, 가장 많은 역량이 투여되고 가장 조직이 큰 그들의 존재가 다른 이들의 성장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당대회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고 유권자들의 정치적 요구를 받아 안는 장이 되려면 일단 그러한 현실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수면위로 떠올라야 한다.
그러나 당권도전을 위해 비대위원을 사퇴하는 순간에서조차 새정치민주연합은 바깥의 어떠한 정치적 요구를 끌어들일지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전당대회 역시 유권자의 갈증을 당내로 끌어들이는 작업없이 내부 계파의 권력 나눠먹기로 인지된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총선에서도 선전하기 어렵고 세 번째 대선 실패를 향하여 나아가게 된다. 그런 그들을 나중의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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