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현 KBS 사장은 지난 7월 28일 취임식 때부터 대대적인 프로그램 혁신을 예고했다. 조대현 사장은 “KBS를 창조적인 기운이 넘치는 회사로 만들겠다”면서 2015년 1월 1일을 ‘프로그램 대개혁’이 일어나는 D-DAY로 정하고 창의적인 조직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 조대현 사장이 개편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그 D-DAY가 보름도 남지 않은 17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TS-5 스튜디오에서 <2015 대개편 TV 프로그램 설명회>가 열렸다. KBS는 대개편의 방향을 ‘광복 70년, 미래 30년 100년의 드라마’로 꼽고 개편 키워드로는 ‘힐링’, ‘소통’, ‘지적호기심’으로 정했다. 1TV는 신뢰도와 영향력을 강화해 모든 프로그램의 ‘수용자 도달률’을 높이는 창의적 편성을, 2TV는 전방위적인 경쟁력을 강화해 ‘2049 시청률’을 비롯해 광고 경쟁력, 멀티플랫폼 소구력을 높이는 편성을 목표로 했다.

조대현 사장은 “우리 방송계, 유료방송을 포함한 방송사에서 시청률이나 영향력 면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채널을 선정해 거기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전수조사했다. 그 프로그램들은 왜 시청자들에게 소구되고 있는가를 조사해서 힐링, 소통, 지적호기심이라는 3가지 키워드를 뽑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준엄한 평가를 기다리겠다. 관대한 평가보다는 정말 준엄한, KBS가 제대로 된, 국민이 정말 원하는 방송이 되도록 여러분들이 많은 격려와 비판을 주시기 바란다”며 “끝없이 KBS에 대해 관심 가져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 KBS는 이번 대개편 키워드로 힐링, 소통, 지적호기심 등 3가지를 제시했다. (표=KBS)

프로그램 25개 신설, 8개 리모델링, 21개 폐지

KBS은 이번 대개편을 맞아 총 25개의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8개의 기존 프로그램을 리모델링해 다시 내놓으며, 21개를 폐지한다.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 높았지만 그동안 효자 노릇을 해 왔던 프로그램이 대거 없어지면서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 역시 높았다.

심야 시간대에 국내외 유명 영화를 소개하는 유일한 더빙 프로그램인 45년 전통의 <명화극장>, 17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 온 기부 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 평일 저녁 생활정보 프로그램 <생생정보통>이 폐지됐다. 지난해 4월 신설된 <KBS파노라마>는 2년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이번 대개편에서는 금요일 오후 9시 30분부터 오전 0시 30분까지 시간대에 교차편성이 이루어지는 ‘돌연변이 ZONE’이다. 폐지 논란이 불거졌던 <드라마스페셜>(오후 9시 30분~11시 10분), <미래예측버라이어티 나비효과>(오후 11시 10분~오전 0시 30분), <용감한 가족>(오후 11시 10분~오전 0시 30분) 등이 이 시간대에 방송된다. 김재중·배종옥·유오성·고성희 주연의 16부작 드라마 <스파이>도 오후 9시 30분~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새로운 프로그램들 가운데는 <이웃집 찰스>(가제), <발칙한 사물 이야기 다빈치노트>, <작정하고 본방사수>, <투명인간> 등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웃집 찰스>는 한국 사회에서 정착해 살아가려고 하는 외국인들의 ‘적응 스토리’를 다룬다. 외국인 주인공들은 다 같이 이방인 학교에 입학하며, 이방인 학교에서의 모습과 자기 자신의 한국 적응기를 전한다. 정규편성에 앞서 파일럿으로 선보였던 <다빈치노트>는 일요일 밤 9시 40분부터 10시 40분까지 방송된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면서도 인문학적·사회학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물을 매주 1가지씩 아이템으로 선정해 풀어낸다.

▲ 이번 KBS 대개편을 맞아 메인뉴스 <뉴스9>의 새 앵커가 된 황상무 기자와 김민정 아나운서 (사진=미디어스)
‘민낯 TV 예능비평쇼’를 자부하는 <작정하고 본방사수>는 TV 보는 ‘시청자’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이다. 2014년 12월 현재 4번째 시즌을 방송중인 영국 채널4 <Gogglebox>를 한국 정서에 맞게 재가공한 <작정하고 본방사수>는 연예인 가족 2그룹과 일반 시청 가족 8그룹이 함께 한다. <투명인간>은 <1박2일> 이후 다시 KBS 예능MC로 돌아온 강호동의 복귀작이다. 자신들의 존재감을 어필하려는 연예인 팀과 그들을 투명인간 취급해야 하는 직장인 팀이 대결을 벌여 최종 우승팀에게는 회식비가 지급되는 방식이다.

대개편을 맞아 메인뉴스 <뉴스9>의 얼굴도 바뀌었다. <시사진단>을 진행하고 있는 황상무 기자와 <뉴스7>을 진행하고 있는 김민정 아나운서가 새 앵커로 발탁됐다. 황상무 기자는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며 “뉴스 신뢰도를 회복하겠다고 했는데, 요즘 워낙 많은 정보, 확인되지 않은 뉴스가 나오고 시청자들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검증되지 않는 주장이 쏟아지니 KBS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시청자들이) 이 사안은 이렇구나, 하는 뉴스를 만들어 보겠다”고 밝혔다.

신설 시사 프로그램 ‘전무’… 종편·케이블 따라가기 지적엔 ‘발끈’

KBS가 대개편에서 ‘전반적인 혁신’을 선포했지만 내부의 평가는 좋지 않다. 우선 <드라마스페셜>을 둘러싼 갈등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KBS는 “최소 15주의 단막극 편성을 할 것이다. 폐지는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으나 사실상 독립 편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드라마 평PD들의 반발이 높다.

드라마 평PD협의회는 17일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금요 드라마>는 오픈존 시스템으로 각국에 드라마를 준비시키고 사이사이 빈자리에 구색 맞추기 용으로 단막극을 땜방 편성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오진산 콘텐츠창의센터장에게 단막극 <드라마스페셜> 독립적 시간대 및 예산 복구, 2016년 단막극 운영에 대한 계획을 밝힐 것을 요구했다. 평PD협의회는 또한 금요 드라마에 편성된 2부작 단막드라마조차 수익성 및 성과를 문제 삼아 폐지한다면 제작거부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 17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본관 TS-5 스튜디오에서 <2015 대개편 TV 프로그램 설명회>가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편성 전 노조 설명회에서도 제기된 ‘시사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빼놓을 수 없다. 개편 때마다 내부에서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시사 강화’ 요구를 KBS는 이번에도 외면했다. 2008년 이후 KBS의 시사 프로그램은 계속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년만에 등장하는 ‘새 시사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모았던 <거리의 만찬>(▷ 관련기사 : <KBS, ‘갈등의 현장’ 찾는 정치 버라이어티 첫 시도>)은 결국 정규편성에서 빠졌다.

KBS는 이번 대개편에서 “핵심 시사 프로그램을 확대, 강화했다”고 주장했으나 현재 방송 중인 프로그램의 시간대를 옮기고 <남북의 창> 방송시간을 확대한 것이 전부다. 설명안에는 ‘<시사기획 창>, <취재파일 K>, <추적60분>에 대한 투자 확대 및 강화’가 적시돼 있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또한 KBS는 <KBS파노라마>가 폐지된 대신 <다큐콘서트 명견만리>(가제)와 <다큐1>을 방송한다는 계획이지만, <명견만리>는 대중강연에 가까우며 <다큐1>은 애초부터 ‘인문·자연·과학 장르의 고품격 다큐멘터리’를 표방해 시사성이 약화됐다. 인문 다큐 시리즈를 목요일에, 시의성 있는 아이템을 금요일에 다루는 방식으로 방송해 출범 당시부터 ‘시사기능 약화 우려’가 나왔던 <KBS파노라마>보다 후퇴한 것이다.

시사 기능을 종편에 내줬다는 평가가 나오는데도 시사 강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오진산 콘텐츠창의센터장은 “자세히 보시면 <세계는 지금> 90분 편성된 것도 있다. 내년 봄쯤에 새로운 시사 프로그램을 등장시키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센터장이 언급한 <세계는 지금>이 <세계는 지금 2.0>이란 이름으로 현재 50분에서 90분으로 분량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나, 기존에 있던 프로그램이기에 시사 프로그램이 ‘신설’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 KBS는 이번 대개편에서 오랜 시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프로그램을 폐지해 개편 설명회 전부터 시끌시끌했다. 오늘(17일)부터 항의 1인시위를 하고 있다는 시민 김지헌 씨는 "공익성이 높고 45년 전통을 갖고 있는 유일한 더빙 프로그램 <명화극장>을 없앤다고 해 이렇게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미디어스)
대개편의 내용에 대해서도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 나왔다. 당장 이날 개편 설명회에서 <사랑의 리퀘스트> 폐지로 시끄러웠는데 왜 없앤 것인지 이유를 묻거나 <해피투게더>의 리모델링 방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한 기자는 ‘하이브리드형 논픽션 다큐 드라마’라고 소개된 주간 시트콤 <결혼 이야기>의 성격이 정확히 무엇인지 묻기도 했다.

‘KBS만의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 종편과 케이블을 따라가는 모습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지적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오진산 센터장은 “KBS가 종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며 “저희 프로그램의 포트폴리오가 타사 프로그램 포트폴리오로 진화해 종편과 유료방송에 지금 퍼져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1980년대 ENG(카메라)가 들어오고 나서, 프로그램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모든 프로그램은 KBS에서 시작됐다고 보시면 된다”고 답했다.

행사 말미 조우종 아나운서 역시 “개편안을 보시면 KBS만의 색깔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것이다. 크게 그런(종편의) 영향을 받아서 변화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여러분들이 알아주시기 바란다”며 “공영방송으로서 바로 서는 KBS를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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