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의혹과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다. 문건 유출의 책임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지방경찰청 최모 경위에 상당 부분 떠넘기고 최모 경위의 공범인 한모 경위와 청와대에서 문건을 반출시킨 박관천 경정이 법적 책임을 지는 분위기다.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선 사실상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보수언론은 17일 일종의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이는 지면편집을 선보였다.

이 사건이 비선 실세로 지목된 정윤회 씨와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의 갈등구도로 해석된 건 소위 ‘박지만 미행사건’이 <시사저널> 등에 의해 보도가 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실제로 정윤회 씨는 바로 이 부분에서 박지만 회장이 자신을 오해해 사태가 커졌다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양자간의 파워게임이 얼마나 실체를 갖고 있는 것인지 여부는 박지만 회장이 이 미행설을 뒷받침할 자료를 갖고 있느냐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검찰 조사에서 박지만 회장은 이와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조선일보 17일자 1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조선일보>는 17일자 1면에 <박지만 “미행설, 박경정과 내 전 비서에게서 들었다”>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여기에 따르면 박지만 회장에게 미행설을 주입(?)한 사람은 박관천 경정과 박지만 회장의 비서 출신인 전 모씨다. 이들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있으며 청와대가 문건 유출의 배후로 지목한 ‘7인모임’의 구성원들이다.

▲ 조선일보 17일자 5면.

<조선일보>는 이날 5면에서도 미행설의 진원지로 박관천 경정을 정조준했다. <조선일보>는 “박 경정은 허위로 판명된 ‘정윤회 문건’ 작성자이고, 시사저널 미행설 보도에서는 실체도 없는 미행설을 내사했던 인물로 등장한다”면서 “시사저널 보도의 취재원 중 한 명이 박 경정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함께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박 경정과 소위 ‘조응천 그룹’이 정씨와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을 견제하기 위해 박 회장에게 잘못된 정보를 입력하고 언론 보도를 활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쐐기를 박았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의 우측에 <檢 “최 경위가 유출” 잠정 결론에 “죽은 사람에 다 떠넘기나” 비판>이라는 기사를 작게 배치했다. 기사의 내용은 검찰 수사의 진행 상황을 드라이하게 전하고 있으나 ‘죽은 사람에 다 떠넘긴다는 비판’을 굳이 강조한 맥락이 흥미롭다. 이는 앞의 보도와 연결해서 의미를 찾아본다면 일종의 ‘훈수’로도 비춰질 수 있다. 지금처럼 최모 경위에 모든 책임을 몰아가서는 검찰 수사 결과가 비판을 받을 수 있으니 박관천 경정에 주목하자는 얘기다. 실제로 박관천 경정은 어젯밤 조사를 받다가 체포됐다.

▲ 중앙일보 17일자 7면.

<중앙일보>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기사를 배치했다. <중앙일보>는 7면에 <박지만 “아내 사생활 악소문 돌아 미행 믿게 됐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지만 회장이 청와대에서 유출된 보고서 등을 접하고 자신에 대한 미행설을 믿게 됐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이 보고서 등은 주로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것이다. 결국 미행설의 진원지로 박관천 경정이 주목받을 수 밖에 없는 국면이라는 걸 강조한 셈이다.

<동아일보>도 1면에 <박지만 “박관천 작성 보고서 읽고 미행 의심”>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해 <조선일보>와 유사한 포인트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동아일보>의 이 기사는 <조선일보>의 톤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동아일보>는 이 기사에서 “박 회장은 미행 관련 보고서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선 진술하지 않았지만, 최근까지도 관련 문건을 검찰에 제출하는 문제로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는 박지만 회장이 미행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자료를 갖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내지 않았을 가능성을 강조하는데 포인트가 맞춰진 것처럼 보인다.

▲ 동아일보 17일자 4면.

<동아일보>는 4면에 <박지만 “유출문건 받았지만 남재준-정호성에겐 연락 안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해 박지만 회장의 입장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 <동아일보>는 “박 회장이 미행설 관련 보고서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일부러 제출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박 회장이 미행설의 근거나 정보원을 제시하면 진위 확인을 위한 검찰의 수사가 불가피해지고 사건의 파장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해 더이상의 설명을 피했다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박지만 회장의 지인이 “박 회장이 ‘다 풀어놓고 싶지만 내가 좀 손해를 보고 안고 가자’는 생각으로 말을 아꼈다”고 발언했다고도 보도했다. 결국 단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까진 아니지만 <동아일보>는 ‘박지만 회장도 할 말이 많지만 대의를 위해 자제했다’는 맥락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박지만 회장에 대한 이런 ‘배려’는 <조선일보>의 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조선일보>는 앞서의 기사에서 “박 회장이 실제 누군가로부터 미행을 당했는데도 검찰에서 부인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정윤회 문건’과 관련된 청와대의 문건 유출과 자신을 둘러싼 ‘미행설’까지 검찰 수사가 확대되자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행설 관련 진술을 축소했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6면에 <“박 회장, 인사 실패 등 보며 누나 걱정 많이 해”>라는 제목의 기사로 박지만 회장의 지인들 인터뷰를 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측에 <말 아낀 박지만…목청 높인 정윤회>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해 박지만 회장의 체면을 살려주고 있다.

▲ 조선일보 17일자 사설.

이들 보수언론의 이같은 행보는 그간 이 국면에서 박근혜 정권을 강력하게 성토해온 것에 대한 ‘출구전략’으로 비춰진다. 이들은 사설에서 박근혜 정권에 대한 애정어린 시각을 다시 한 번 드러내며 고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 ‘핵심 지지층 이탈 조짐’ 제대로 봐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지나치게 부정적인 상황을 그냥 보아넘기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조선일보>는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같은 집권 기간 중의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 보다는 낮지만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 보다는 높다며 “앞으로 반전 기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중앙일보 17일자 사설.

<중앙일보> 역시 이날 <40% 아래로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무너진 지지율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소위 ‘문고리 권력 3인방’의 2선 후퇴 등 국정쇄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동아일보>는 <선거인명부 분실한 새정연, 靑 문건 유출 나무랄 수 있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시민선거인단명부를 분실했다는 점을 들며 뜬금없이 야당을 공격했다. 이런 태도를 종합해보면 이들이 정권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은 한 순간이며 이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릴 준비가 돼있다는 어떤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같은 날 <한겨레>가 <국정개입 의혹 그대론데 검찰수사 이대로 끝나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톱에 배치하고 <경향신문>이 <검찰 “이런 수사를 왜 하라는 건지…”>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검찰 일각에서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다시 정치권을 통해서 논란이 확대되는 또 다른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 “검찰은 범죄가 되는 대상을 수사해야 하는데 이건 정치공방으로 보인다”는 등의 뒷말이 나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으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의 행보를 보면 이번 논란과 관계된 모든 것은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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