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 수사에 대해 △정윤회 문건은 존재하지 않고 △박 경정이 유출한 문건을 한 경위가 복사했고 이를 최 경위가 언론사에 유통했으며 △7인회의 존재도 없다고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 관련기사 : <검찰, 최 경위에 모든 것 씌우고 '한바탕 웃음으로' 수사 끝내나>)

세간을 뜨겁게 달군 정윤회 문건의 핵심은 대통령의 비선실세가 문화부 국장 자리와 각종 공공기관의 장 인사에까지 손을 뻗치는 등 매우 ‘구체적으로’ 국정에 개입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제(16일) 검찰은 이 같은 ‘알맹이’보다는 문건이 어떤 경로로 바깥으로 새게 됐는지에 집중했고 이 내용을 공식 발표에 앞서 언론에 흘렸다. <연합뉴스>가 검찰발 소식을 인용해 <‘靑 문건 유포’ 박관천·조응천·청와대 전부 속았다>는 기사로 불을 댕기자, 방송뉴스도 검찰의 잠정 결론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쓰며 사건 일단락 흐름에 합류했다.

16일자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는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이미 수사 결과 윤곽을 잡은 검찰의 말을 충실히 인용해 보도했다. 3사 전부 톱 뉴스로 전하지도 않았다. 3사 메인뉴스에게는 임기 2년차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을 불러온 중대 국정 현안보다는 갑자기 몰아친 한파와 충청·강원 지역의 폭설 소식이 더 ‘중요한 뉴스’였기 때문이다.

▲ 16일자 KBS <뉴스9> 보도

지상파 3사의 뉴스는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윤회 문건 등 지금까지 알려진 청와대 문건은 박관천 경정이 유출시켰고, 이를 복사하고 유통하는 데 한 경위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 경위가 개입했다. 검찰은 박 경정에게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를, 한 경위에게는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를 적용했고 숨진 최 경위에게는 공소권 없음 결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한 줄기였다.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회장 조사 결과, 정윤회 씨가 박지만 씨를 미행했다는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다른 줄기였다.

미행설에 대한 약간의 시각차는 존재했다. <뉴스9>는 “박 회장이 미행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음에 따라 미행설을 부인했던 정윤회 씨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고 보도했다. 반면 <8뉴스>는 “검찰 관계자는 박 씨의 진술을 듣고 미행을 의심할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조만간 정윤회 씨를 다시 소환해 박 씨가 제기한 미행 의심 정황이 사실인지 확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최소한의 의문 제기한 곳은 SBS뿐

<뉴스데스크>와 <8뉴스>는 각각 이번 사건에 대한 의혹과 쟁점을 정리하는 리포트를 선보였다.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사건을 아예 ‘문건 유출’ 사건으로 명명한 <뉴스데스크>는 마지막으로 풀어야 할 의혹과 쟁점이 있다면서도 합리적인 수준의 물음조차 던지지 않았다.

고 최 경위가 유서에서 밝혔고 한 경위도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청와대의 자백 회유’ 여부를 두고는 “JTBC와 인터뷰를 한 사실이 없다고 했고 민정(수석실)으로부터 제안이나 이런 것을 받은 적이 있느냐 하니까 그런 사실이 없다고 저에게 확인해줬다”는 변호인의 말만 전했다. 이밖에 박 회장이 문건을 청와대에 전달했는지, 정윤회 씨의 박지만 회장 미행설이 사실인지 의혹이 남는다고 보도했으나, MBC 자체 추가 취재를 통해 새로이 밝혀내거나 검찰발 소식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을 지적하지도 못했다.

<8뉴스>도 <뉴스데스크>와 마찬가지로 남은 쟁점을 다루었지만 검찰의 잠정결론에 존재하는 허점을 짚어냈다. <8뉴스>는 “검찰 수사는 이렇게 마무리되지만 이번 사건으로 불거진 여러 의혹들이 깔끔하게 풀리지 않았다”며 여전히 3가지 의혹이 남는다고 말했다.

▲ 16일자 SBS <8뉴스> 보도

<8뉴스>는 △정윤회 씨와 측근들의 비밀회동이 없었다지만 비공식 라인의 인사 개입 의혹 자체가 해소된 것은 아니고 △고 최 경위의 문건 제보 동기 및 배후, 구체적인 과정이 베일에 싸여 있으며 △최 경위가 제기한(<8뉴스는 한 경위의 JTBC 인터뷰 내용을 거론하지 않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회유 의혹도 청와대가 논란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한편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회유가 있었다는 한 경위 인터뷰를 보도한 JTBC <뉴스룸>은 16일 방송에서 녹음본을 가지고 있으나 한 경위가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고 긴급히 알려와 보도를 보류하게 됐다고 밝혔다.

청와대 시계형 몰카 논란도 ‘막말 공방’으로 물타기

검찰발 뉴스를 합리적 수준의 최소한의 의심도 제기하지 않았던 방송뉴스는 청와대가 시계형 몰카를 구입했다는 내용조차 ‘국회의 막말 공방’으로 물타기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 16일자 MBC <뉴스데스크> 보도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은 16일 청와대 부속실에서 손목시계형 영상녹화 녹음기를 구입한 것을 두고 왜 이런 몰카가 필요한지 따졌다. (▷ 관련기사 : <‘몰카’ 구입한 청와대…정홍원, “몰래만 쓰는건 아냐”>) <뉴스데스크>는 “국회에서는 이틀째 문건 유출 사건을 놓고 여야의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며 “아니면 말고 식의 주장과 의혹제기, 이로 인한 고성이 난무했다”고 비판했다.

<뉴스9>는 최민희 의원의 문제제기 내용은 멘트 처리도 하지 않은 채 단지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놓고 여야의 막말 공방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만 보도했다. <뉴스9>에는 문제제기한 당사자 멘트는 없었지만 “최민희 의원이 참 공상소설을 쓰고 있구나. 한마디로 해서 요새 정치인들이 진짜 버릇부터 고쳐야 된다”, “누구 버릇을 고쳐”, “최민희 의원에게 사과하세요, 사과”, “자 우선 조용히 하세요. 우리 학생들이 방청하고 있습니다” 등 국회의원들의 녹취가 7개나 삽입됐다. 현재 여야가 극한 대치하고 있는 배경이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의혹’ 때문인데, 고질적인 국회의 막말 싸움을 전달하는 데에 더 공을 들인 것이다.

정윤회 문건 파문이 불거졌을 때도 지상파 뉴스는 ‘의제설정 기능’을 잃었다는 비판을 안팎에서 받은 바 있다. 타사의 보도 뒤따라기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조롱에 가까운 지적에도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것일까. 어차피 시청자들은 1~2분 리포트 몇 개를 보는 것만으로는 세상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것이라며 방송뉴스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한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대체 왜 이렇게 보도를 하는 것일까. 도무지 모를 일이다.

▲ 16일자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관련 보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JTBC <뉴스룸>, SBS <8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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