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웬디 커틀러. 지난 16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와 한미FTA 민간대책위원회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쇠고기 시장의 전면 개방 조처가 없다면 의회의 핵심 의원들이 비준을 반대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일부 한국 단체들이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허용을) 반대하고 있지만 잘 되리라고 보며, 쇠고기 문제만 해결되면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 (비준 동의가) 쉬울 것이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뼛조각 발견은 통계적으로 미미한 수치일 뿐, 미국 쇠고기는 안전하고 국제수역사무국(OIE) 규정에 부합한다.” 결론은? ‘좋은 말 할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라.’ 바로 이 얘기다.

한국 정부를 ‘협박’했던 커틀러 인터뷰한 조선일보

▲ 조선일보 10월19일자 B2면.
커틀러 대표의 발언은 사실상 ‘협박’에 가깝다. 한미FTA 미국측 수석대표라는 사람이 지난 14일 예고없이 방한해 공개적인 석상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는 게 좋을 거야’라고 얘기하는 걸 웃고 넘길 사람은 별로 없다. 한국과 미국의 ‘특수한 관계’를 감안했을 때 오히려 ‘협박’의 강도는 더 세다.

그런 ‘그’를 조선일보가 오늘자(19일) 경제섹션(B2)에서 인터뷰를 했다. 사실 한국 언론 입장에서 커틀러 대표에게 물어볼 ‘거리’는 무수히 많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지난 8월1일 미카길사 제품에서 처음으로 광우병 위험물질인 등뼈가 발견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한동안 중단된 적이 있다. 커틀러 대표. 당신이 이거 한번 먹어볼 수 있나. 그럼 우리도 안전하게 먹을 수 있을 것같다.”

“지난 9월7일 수입돼 검역과정을 거치던 쇠고기 18.5t(618상자)에서 광우병 위험물질인 등뼈로 채워진 상자가 1개 발견됐다. 커틀러. 이거도 한번 먹어보길 바란다. 그럼 우리도 수입해서 배터지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등뼈는 아니지만 현행 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상 수입이 금지된 갈비통뼈가 발견된 것이 지금까지 9건이다. 작은 뼛조각이나 금속 같은 이물질, 검역증 표시 위반 사례 등을 모두 합치면 1년간 위생조건 위반 건수가 200건을 넘는다. 커틀러. 근데 이게 정말 안전한 걸까.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만약 안전하다면 한국산 쇠고기에서 등뼈 한 두어개 나오고, 갈비통뼈 9개 그리고 작은 뼛조각 등을 포함해 위생조건 위반 건수가 한 200건 조금 넘어도 미국은 별로 개의치 않겠다. 안 그런가.”

한미FTA 미국측 수석대표 인터뷰인가 연예인 인터뷰인가

▲ 한겨레 10월17일자 1면.
아마 인터뷰를 했다면 가장 먼저 ‘당신의 발언에 대해 말이 참 많다. 사실상 협박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것같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달랐다. 조금 다른 게 아니라 많이 달랐다. 질문의 내용과 방향도 달랐고 무엇보다 인터뷰 ‘성격’ 자체가 달랐다. 오늘자(19일) B2면에 난 기사를 일부 인용한다.

“한미 FTA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웬디 커틀러(Cutler)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는 감회가 새로운 듯 엷은 미소를 보였다.”

“그는 자신이 묵고 있는 19층 숙소로 안내했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한국 조간신문을 체크했다. ‘한국이 쇠고기 시장을 개방해야 한미 FTA 협정에 대한 미국 의회 비준이 손쉬울 것’이란 자신의 전날 언급이 여러 신문에 실려 있었다. 짙은 청색 투피스 차림에 흰색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커틀러 대표보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크라이슬러 한국 매장에 가는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용산의 크라이슬러 매장을 찾은 커틀러 대표보는 1,2층 매장을 둘러보며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차종이 무엇인지, 전시장은 몇 개이고 서비스센터는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미국 자동차가 팔리고 있는 현장을 직접 볼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한 그는 곧바로 공항으로 출발했다.”

커틀러 대표가 만족스런 웃음을 지은 까닭

물론 이 외에 한미FTA에 관련된 내용도 인터뷰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최근 커틀러 대표가 한 발언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당연히 인터뷰가 ‘공격적으로’ 갔어야 했다. 하지만 웬걸? 무슨 방담하듯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쯤 되면 이 기사가 '뉴스메이커'를 인터뷰한 경제면 기사인지 아니면 연예면에 실리는 인터뷰 기사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한국 조간신문을 체크했다. ‘한국이 쇠고기 시장을 개방해야 한미 FTA 협정에 대한 미국 의회 비준이 손쉬울 것’이란 자신의 전날 언급이 여러 신문에 실려 있었다. 짙은 청색 투피스 차림에 흰색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커틀러 대표보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신의 ‘협박발언’을 보도한 한국 언론들의 ‘논조’에 대해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는 얘기다. 벌건 대낮에 한국 정부를 대놓고 ‘협박’했는데도 이를 문제 삼는 언론이 거의 없었다는 지적은 이미 이 공간에서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짙은 청색 투피스 차림에 흰색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커틀러 대표보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라고 천연덕스럽게(?) 인터뷰 기사를 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조선일보의 ‘국제적 마인드’를 높이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정말 이해가 안되는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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