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승리를 축하합니다”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해 서울시청 로비에서 농성을 벌였던 무지개농성단은 환호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면담에 응했고 ‘1월’이라고 시기를 정해 면담을 이어간다는 후속 계획이 나오면서 농성단은 일단 해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들은 서울시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더 큰 저항을 예고했다.

▲ 무지개농성단은 11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면담에 응했고 ‘1월’이라는 시기를 정해 면담을 이어간다는 후속 계획이 나오면서 해단했다ⓒ미디어스
무지개농성단은 11일 오후7시 30분 농성6일째 마지막 촛불문화제는 ‘성과보고대회’ 축제로 꾸몄다. 문화제의 제목은 “당신의 인권은 여기 있다”였다. 그렇게 농성단은 공식 해단했다. 농성 참가 성소수자들은 이번 농성이 단순히 차별을 넘어 스스로 살아있다는 자존감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보수기독세력의 혐오발언과 폭행 그리고 이에 침묵했던 다수의 폭력에 맞서 승리했다는 기쁨이 커보였다.

“인권도시 아름다운 서울을 만들어 달라”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에 시민위원으로 참여했던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종걸 사무국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에게 인권헌장은 큰 의미였다. 보수기독세력의 폭력과 그를 핑계로 서울시가 인권헌장 제정에 대한 표결처리를 무효화 시킨 것은 성소수자로 한국사회를 살아온 그에게 또 다른 폭력이었다. 그는 서울시의 행태가 “(성소수자들에게)또 다시 숨 죽이고 살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전 동성애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 아마 저와 같은 많은 성소수자들이 함께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남성에게 이끌리게 된 것을 안 것은 사춘기 시작 무렵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의지도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사랑의 이끌림은 의지에 따르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당시에는 그 같은 감정을 알 수 없었습니다. ‘호모’라는 말(동성애에 대한 부적적인 표현)은 저에게 낙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괴로웠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28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친형에게 저의 성 정체성을 알렸습니다. 형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했지만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공연에 형수와 조카의 손을 잡고 와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족들이 최근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이종걸 사무국장 발언 중>

▲ 11일 무지개농성단 해단식에서 기획단이 인사를 하는 모습ⓒ미디어스
이종걸 사무국장은 “뉴스에서 동성애자들의 자살 소식을 들을 때마다 ‘괜찮냐’는 안부를 전해온다”며 “지난 인권헌장 공청회 뉴스가 나갔을 때에도 전화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보수기독세력들의 동성애 혐오 발언과 행동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의가 보여준 행태는 동성애 혐오를 드러내는 것이 ‘폭력’이고 ‘범죄’라는 인식보다는 한 개인의 ‘의견’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낳게 했다. 동성애차별금지를 반대하는 것은 동성애를 차별하자는 말과 다름 아니지만, 이 같은 발언들은 걸러지지 않고 공론장에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만 이 사무국장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종걸 사무국장은 “더디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권도시 아름다운 서울을 만들어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시민들이 직접 선포한 ‘인권헌장’을 서울시가 받아들이고 실행해야할 이유이기도 했다.

성소수자 차별 반대 인권단체들의 서울시 농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던 이들에게 이번 싸움은 “모이면 승리할 수 있다”는 소중한 기억을 남겼다고 이야기를 한다. 농성장을 지켜온 수수는 “많은 성소수자들이 처음 농성장에 올 때에는 분노와 두려움으로 왔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자존감을 찾아 돌아가게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생각을 한다. 저 사람이 꼭 살아있기를…. 단순히 먹고 자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며 “이 자리가 파하고 개인공간으로 돌아갔을 때 농성장에서 만났던 얼굴들을 기억하면서 다른 공간에서 또 만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는 “아직 가야할 길이 많고 변혁되어야할 부분도 많지만 여러분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이렇게 움직이고 있고 쟁취할 수 있었다”며 “여러분들 스스로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즐거운교육상상 안영신 집행위원장은 “박원순 시장은 ‘반쪽사과’를 했지만 그래도 이번 사태가 제자리는 아니다. 승리보고 문화제로 마무리 될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우리도 밟으면 꿈틀…농성장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계기”

▲ 무지개농성단 총책임자 장병권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해단을 선언했다ⓒ미디어스
이날 9시 30분 경 무지개농성단 총책임자 장병권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해단을 선언했다. 그는 “성소수자들의 이름을 지우려는 혐오세력들 그리고 동성애자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교회목사들에게 머리를 조아린 박원순 시장에 항의하고 사과를 받기 위해 이 자리에 들어왔었다. 더 이상 웅크리고 숨어 있을 수많은 없었다”며 “거대 도시 서울의 중심 시청에 당당하게 자리를 깔고 6일 동안 버틴 여러분들 고생많았다”고 격려를 보냈다.

“이 농성장에서 성소수자들의 재능이 펼쳐졌다. 저 마다의 사연이 웃음으로, 눈물로, 노래로, 춤으로 표현됐다. 그만큼 이번 농성을 성소수자가 이 사회에서 얼마나 차별받았는지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얼마나 멋진 사람들인지 살아있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과라면 든든한 지지자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광화문 파이낸셜빌딩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씨앤앰 노동자들이 보수기독 세력들의 난입을 막아준다고 매일 밤 농성장을 같이 지켜주셨다. 또, 광화문 역 지하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들이 침낭 등 농성 물품을 챙겨주셨고, 광화문 천막의 세월호 유가족분들은 추운 겨울 담요를 내주셨다. 정말 하나하나 말하는 게 버거울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이제 우리들도 연대로 갚아야 겠다” <장병권 사무국장 발언 중>

장병권 사무국장은 “농성 이후 면담요구에 17일, 18일 계속 미루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목격했다”며 “그런데 갑자기 서울시가 면담을 요청한 것은 우리들의 농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요구 4가지 중 2가지를 얻어낸 것은 농성의 성과”라고 강조했다. 농성단은 당초 △면담, △사과, △인권헌장 선포, △보수기독세력에 대한 대응이었다. 특히, 2015년 1월에 실무자와의 면담도 약속받았다.

장병권 사무국장은 “우리는 앞으로 박원순 시장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었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할 예정”이라며 “또, 성소수자 차별에 맞서 서울시가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도 계속 감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 담당 공무원은 “진정성 있는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장 사무국장은 “밟으면 꿈틀거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승리했다. 앞으로는 동성애 혐오세력의 폭력과 국립국어원, 인권위원회, 2007년 무산된 차별금지법 제정에 눈을 돌리자”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농성단 마지막 촛불문화제에는 예술빙자사기단과 아는언니들, G보이스 등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또, 농성장 벽에 부착돼 있던 허니버터칩은 청년좌파 등 농성장상 상품으로 제공됐다. 끝으로, 이들은 '당신의 인권이 여기에 있다'라고 쓰인 무지개 깃발을 함께 들며 기쁜 마음으로 농성을 마무리했다.

아래는 이날 무지개농성단 해단식의 모습들이다.

▲ 11일 무지개농성단 해단식의 모습ⓒ미디어스
▲ 11일 무지개농성단 해단식에서 이종걸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미디어스
▲ 11일 무지개농성단 해단식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미디어스
▲ 11일 무지개농성단 해단식에서 참가자들이 샴페인을 터뜨렸다ⓒ미디어스
▲ 11일 무지개농성단 해단식에서 농성장상에 뽑힌 청년좌파 등은 상으로 농성장 벽면에 부착돼 있던 허니버터칩을 받았다ⓒ미디어스
▲ 11일 무지개농성단 해단식에서 G보이스가 노래와 율동을 하고 있다ⓒ미디어스
▲ 11일 무지개농성단 해단식에서 G보이스가 노래와 율동을 하고 있다ⓒ미디어스
▲ 무지개농성단은 11일 해단하면서 '당신의 인권이 여기에 있다'는 문구가 그려진 무지개 깃발을 높이 들었다ⓒ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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