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랜드 참사, 춘천 산사태 참사, 태안 해병대 참사, 세월호 참사… 과거도 지금도 대한민국사회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이윤 극대화에 몰두한 나머지 생명의 ‘존엄’은 뒷전이 돼 버렸고, 정부와 기업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참사가 계속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구조에서 참사는 반복된다. “기업과 정부가 안전을 존엄하게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정말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절절한 증언이 나오는 이유다.

10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 주최로 <4·16 존엄과 안전에 관한 인권선언 추진대회>가 열렸다. 4·16 인권선언운동은 특별법과 진상규명을 위한 대중적 의지실현은 함께 출발해야 하고, 약속하고 선언하는 과정이 존엄과 안전이 실현되는 과정이며, 참사와 재난을 막기 위한 약속과 기억을 세계인들과 나누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 박진 활동가가 4·16 인권선언운동의 취지와 목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이번 <인권선언>에는 크게 3가지 내용이 담겼다. 첫째, 안전할 권리는 인권이다. 둘째, 구조와 회복의 권리는 인권이다. 셋째, 진실을 요구할 권리는 인권이다. 그동안 정부가 내세운 ‘재산과 영토의 안전’에서 벗어나 존엄과 생명의 안전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요지다. 또한 가난하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장애인이거나 이주민이라는 이유 등으로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거나, 안전에 대한 정보가 불평등하게 제공돼서는 안 된다는 ‘평등한 권리로서의 안전’이 강조됐다.

“기업과 정부는 안전 존엄하게 지켜주지 못해요”

이날 추진대회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삼성반도체 피해 노동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4·16 인권선언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 중인 삼성반도체 피해 노동자 한혜경 씨는 몇 줄의 짧은 편지로 정부와 기업의 무관심과 방치로 사각지대에 놓인 ‘안전’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삼성전자 피해자 한혜경입니다. 저는 건강하지 않아 힘들게 살아요. 존엄하다는 건 모르겠어요. 그냥 안전하게 일했으면 지금 정말 행복하게 살았겠죠. 기업과 정부가 안전을 존엄하게 지켜주고 있지 못해요. 우리 스스로가 건강을 챙겨야 해요. 우리 스스로가 정말 건강을 챙겨야 해요. 이번 존엄과 안전 인권선언이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감사합니다”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고 유예은 학생 어머니 박은희 씨는 “4·16 참사에 인권은 없었다”고 단호히 말했다. 박은희 씨는 “구조가 최우선이었던 4월 16일 오후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구조를 막았다. 그것이 지휘체계에 따른 것이건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것이건 생명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며 “300명이 넘는 생명이 배 안에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가족과 국민으로 하여금 배가 침몰하는 것을 지켜보게 한 정부의 태도는 잔인함을 넘어서 살인에 버금가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 왼쪽부터 삼성반도체 피해 노동자 한혜경 씨,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박은희 씨 (사진=미디어스)

‘인권을 말하고 지켜야 할’ 언론의 태도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박은희 씨는 “언론인들에게 족들은 위로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기보다는 시청률과 구독률을 올리기 위한 자극적인 소재일 뿐인 것처럼 보였다”며 “허락 없이 아무 때나 코앞까지 카메라를 경쟁적으로 들이밀었고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으로 가족들을 곤란하게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언론 앞에서 가족들은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고 벗겨졌으며 편집을 통해 왜곡 보도된 기사에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댓글이 달려 있었다”며 “인권을 말하고 지켜야 할 언론이 오히려 인권을 먹잇감처럼 집어삼켜 버렸다”고 전했다.

박은희 씨는 “돈보다 생명이다. 생명도 그냥 생명이 아니고 모든 생명이다”라며 “함께 살아남는 일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모두 죽게 될 것이다. 이제는 생명에 대한 가치와 구호를 위해서 힘쓰자”고 제안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는 오늘 인권선언 추진대회를 시작으로 각종 준비 작업을 해 나갈 예정이다. 우선 내년 1~2월에는 인권실태조사 프로젝트 및 당사자-추진그룹 간담회 등을 열고, 3월에는 인권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후 인권선언 초안을 작성해 4월에 그 내용을 발표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 5월부터는 <인권선언> 제정 동참 서명운동을 시작하고 2016년 1~3월에는 인권선언 동참 행동계획을 발표해 2016년 4월 16일 <4·16 존엄과 안전에 관한 인권선언>을 제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