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박관천 경정이 누구에게 문건 내용을 들었는지, 그 제보자의 자료 출처는 어디인지를 수사하고 있다. 제보자로 알려진 박동렬 전 대전지방국세청장과 박관천 경정, 그리고 김춘식 청와대 행정관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다. 박동렬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과도 친하다고 한다. <세계일보>는 9일부터 박동렬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의 발언 근거가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이란 보도에 들어간 상태다.

그러나 박관천 경정 등에 대한 수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 대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설령 유출된 문건이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 하더라도 검찰 수사에서 그 사실을 밝히려면 박관청 경정에게 제보자로 지목된 그이가 새로운 제보자를 폭로해야 한다. 아직 임기가 중반 정도 밖에 안 된 상황에서 청와대 핵심을 겨냥하는 그러한 연쇄폭로가 일어나기는 대단히 어렵다. 대통령이 검찰 수사 결과를 자신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또 박관천 경정이 만들었다는 유출된 문건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지는 애초부터 논란이 많았다. 조응천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직접 나서 “신빙성은 6할”이라고 했지만 이 정황이 보여주는 것은 조응천 전 비서관과 ‘문고리 3인방’의 대립구도였을 뿐이다. 처음부터 정치부기자들은 “박 경정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실체를 담았다고 보기엔 무리하다”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문제에 관한 청와대의 책임을 피해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국민들이 이 문건의 실체를 아직도 신뢰하는 이유는 공식문건이기 때문이다. 공직생활이나 회사생활을 해본 사람을 입장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찌라시’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결코 납득할 수 없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사실상 ‘찌라시’에 가까움이 밝혀진다 한들 이 상황은 “(절대로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건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에 버금가는 상황이다. 이조차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어떤 ‘꼬라지’인지를 보여주는 증표다.
▲ 비선실세로 알려진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이 10일 새벽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후 귀가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문건을 만든 것도 청와대고 유출한 것도 청와대인데 그 책임을 ‘색출’로만 묻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해명을 할 게 아니라 기자회견으로 대국민사과를 해야 했다. 그런데 9일자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다시 “국무위원들은 개인의 몸이 아니라 국민을 대신해 맡은 분야의 일을 하는 분들”이라며 “국무위원의 모든 언행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국민을 바라보고 행하는 사명감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7시간’은 사생활이고, ‘비선 논란’에 대해선 “진돗개가 비선이다”라는 농담을 하면서, 국무위원에 대해선 사적인 걸 버리고 사명감을 가지라고 하는 코메디 같은 상황이다.
이 상황은 틀림없이 어떠한 아수라장이다. 그런데 아수라장의 양상이 사뭇 특이하다. ‘친박 그룹의 서열 정리’가 “정치학이 아니라 지리학에 가깝다”고 정의되고(<경향신문> 11월 22일자 기사), 그 ‘지리학’의 서열은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비서실장,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수시로 연락하며 국정을 논할 수 있어야 자격 요건이 된다”고 정의되는 시대,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은 ‘정윤회 문건’에 대한 현안질의조차 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시대, 대통령의 힘이 빠져서가 아니라 힘을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휘둘러서 그 정부에서 밀려난 이들의 증언을 통해 ‘레임덕적 현상’이 터져나온 아이러니의 아수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관천 경정과 조응천 전 비서관이 ‘나쁜 사람’임을 입증하는 검찰 수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계일보> 보도에 대해서 고소의지를 밝혔지만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을 들고 시작한 그들의 보도는 명예훼손으로 처벌받기 어려울 것이며, 처벌받는다 한들 이 아수라장의 깊이를 증명하는 것 이외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 외의 청와대의 난맥 상에 대해선 역시 검찰 수사가 의미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합작해서 보도한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 인사 논란에 대해선 제대로 된 해명조차 못하고 있다. 자신 있는 부분은 소송으로 나가고, 자신 없는 부분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정녕이지 지금의 이 나라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만일 지금의 국정운영이 아수라장이라 보인다면, 거기에 자신의 책임은 전혀 없고 국기문란을 일삼는 ‘나쁜 사람들’ 때문일 거라고만 생각하는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그 무엇도 수습하지 않은 채 한 번의 사건마다 ‘콘크리트 지지율’이 내려가기를, 가랑비에 옷이 젖기를 기다리는 중인지 모른다. 어쩌면 그는 옷이 담뿍 젖기 전에 임기를 지키는 ‘행복한 대통령’이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청와대에서의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그 밖을 나설 때쯤, 한국 사회의 몰골이 어떨지 생각만 해도 참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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