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를 방송사 중 유일하게 방영한 데 대해 KBS PD협회와 기자협회가 맹비난하고 나섰다.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내팽개치고 KBS를 관영방송으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편성책임자인 라디오본부장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 서울 여의도 KBS본관 ⓒ미디어스
KBS PD협회(회장 김덕재)는 13일 ‘공영방송에서 대통령 주례연설은 어불성설이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대통령의 주례연설이 KBS 라디오를 통해 방송될 수는 없다. 이는 공영방송의 생명인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내팽개치고 KBS를 관영방송으로 전락시키는 일”이라며 “편성책임자인 라디오본부장은 공식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하라. 라디오 편성제작팀장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PD협회는 “애당초 대통령 주례연설은 방송사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된 ‘할 테면 하고 말 테면 말라’는 막가파식의 기획이었다”며 “제대로 된 판단을 하는 방송사라면 청와대의 이런 장단에 춤을 출 리가 없으나 KBS는 경쟁채널이 내부 반대를 이유로 편성을 철회하고, 노조와 PD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새벽 1시에 야당 대표에게 출연요청까지 하면서 방송을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PD협회는 “KBS가 방송의 편성권과 자율성을 반납하면서 대통령 주례연설 편성을 강행한 이유는 청와대의 기획이 모든 방송사에 거부당하면서 발생할 정치적 타격을 줄여주기 위함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PD협회는 “라디오본부장은 청와대의 일방적 요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확고한 입장을 조속히 밝혀야 한다”며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정치권의 요구 때문에 사내에 분열과 불신이 조장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BS 기자협회(회장 민필규)도 14일 ‘KBS는 청와대의 입이 아니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자칫 정쟁의 장이 될 수도 있는 등 득보다는 실이 많아 반대한다는 보도본부 등 내부 의견은 철저히 무시된 채로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KBS 전파를 타고 온 땅에 울려 퍼졌다”며 “편성책임자인 라디오 본부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공식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라”고 주장했다.

기자협회는 “청와대가 나팔수 역할을 시켰다고 해서, 철학도 없고 비전도 없이 선뜻 날품팔이 나팔수로 변신한다면, KBS 라디오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KBS 뉴스, 더 나아가 전체 프로그램의 신뢰도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이 연설의 정례화를 확실시하는 발언으로 연설을 끝맺은 것은 KBS를 청와대의 입으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내뱉을 수 없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기자협회는 “라디오 주례 방송이 필요하다고 진정으로 판단하고 있다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무엇보다 일의 과정을 열어놓고 진행해야 한다”며 “청와대가 주는 대로 대통령 녹취 테이프를 받아 이를 전파로 내보내고, 야당 인사 전화 연결해서 적당히 시간 때우는 방식으로 대통령 주례 방송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KBS가 청와대의 입으로 전락하는 길에 다름 아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KBS PD협회와 기자협회가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공영방송에서 대통령 주례연설은 어불성설이다>

대통령 주례연설과 관련한 한바탕 해프닝이 지나갔다. 청와대에서 일방적으로 녹음해 돌린 테이프는 공영방송 1라디오 채널을 통해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에 고스란히 방송됐다.

당초 정례적인 방송이 아니라 금융위기와 관련한 일회성 긴급담화라고 주장하면서 편성을 마쳤던 라디오본부는 사내 여론이 들끓자 황급히 정규 프로그램 내 꼭지로 돌렸고, 반론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야당 대표에게 같은 시간만큼의 인터뷰를 허용했다. 그러나 야당으로부터도 그리 환영받은 것 같지는 않다. 새벽 1시에 방송사 면피를 위해 걸려온 출연요청 전화를 받고 오히려 황당했다는 후문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방송이었던가? 방송의 편성권과 자율성을 반납하면서 대통령 주례연설 편성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애당초 대통령 주례연설은 방송사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된 ‘할 테면 하고 말 테면 말라’는 막가파식의 기획이었다. 이런 기획이 방송사에 먹히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하는 방송사라면 청와대의 이런 장단에 춤을 출 리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KBS는 달랐다. 경쟁채널이 내부 반대를 이유로 편성을 철회하고 나서도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노동조합과 PD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새벽 1시에 야당 대표에게 출연요청까지 하면서 방송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청와대의 모처럼 기획이 모든 방송사에 거부당하면서 발생할 정치적 타격을 줄여주기 위함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당초에 라디오본부에서는 정례연설이 아니라 지금의 금융위기와 관련한 일회성 담화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에서는 정례연설이라고 하는 대도, 막무가내로 일회성 특별담화라고 주장하면서까지 편성을 강행했다. 청와대와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말도 그래서 신뢰할 수 없다. 또한 이번 방송이 1회에 한한 것이라는 말도 믿을 수 없다. 청와대에서는 벌써 격주로 정례화 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고 있지 않은가?

KBS 라디오를 통해 대통령의 주례연설이 방송될 수는 없다. 그 일은 정치권력과는 별도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영방송이 할 일이 아니라 관영방송의 일이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생명인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내팽개치고 KBS를 관영방송으로 전락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주례연설과 관련된 해프닝은 끝났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라디오본부장은 청와대의 여전한 일방적 요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분명하고도 확고한 입장을 조속히 밝혀야 한다.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정치권의 요구 때문에 사내에 분열과 불신이 조장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으로서의 확실한 입장을 정리할 자신이 없다면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그 자리를 내어 놓으라.

PD협회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편성책임자인 라디오본부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공식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라.
2. 공영방송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는 라디오 편성제작팀장은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

2008. 10. 13.
KBS PD협회

<KBS는 청와대의 입이 아니다>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KBS 전파를 타고 온 땅에 울려 퍼졌다. 이 과정에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왜 내보내야 하는 지, 내보낸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구체적인 의견 수렴도 없었고, 고민도 없었다.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자칫 정쟁의 장이 될 수도 있는 등 득보다는 실이 많아 반대한다는 보도본부 등 내부 의견은 철저히 무시됐다. 그저 청와대에서 제작한 테이프를 있는 그대로 받아 먼지 한 톨 털지 않고 전해주기에 바쁠 뿐이었다.

그 결과 대통령은 첫 라디오 방송 운운하며 앞으로는 생활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말하겠다는 내 맘대로 발언으로 연설 끝맺음을 하기에 이르렀다. KBS를 청와대의 입으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공영방송의 편성권도, 제작자율성도, 독립성도 철저히 무시하는 대통령의 말이 전파를 타고 나갔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 연설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야당측에게 정당하고도 공정한 반론 연설 기회를 주고, 연설의 구성과 시간, 방법 등 구체적인 틀을 청와대가 아닌 KBS가 정해서 주도적으로 연설의 장을 마련한다면, 이는 적극 검토해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5년 전에는 KBS가 열쇠를 쥔 채, 우리가 기획하고 우리가 틀을 짠 공정하고도 객관적인 라디오 연설의 장에 대통령과 야당 대표를 초대했었다. 당시는 오히려 KBS가 마련한 무대에 청와대측이 부담을 느껴 대통령 주례 라디오 연설은 없었던 일로 끝나고 말았다. 무릇 일이란 이처럼 공명정대하게 하는 것이다. 청와대가 나팔수 역할을 시켰다고 해서, 철학도 없고 비전도 없이 선뜻 날품팔이 나팔수로 변신한다면, KBS 라디오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KBS 뉴스, 더 나아가 전체 프로그램의 신뢰도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일선 기자, PD들은 10초짜리 인터뷰를 쓸 때에도 이 인터뷰를 왜 쓰는 지, 쓴다면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결정을 한다. 편향되지 않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송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 때문이다. 그런데 7분 30초짜리 연설 방송을 일단 내보내고 보자는 식으로 저지른다면, 이는 편향 방송, 게이트 키핑 빵점 방송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KBS는 청와대의 입이 될 수 없다. 라디오 주례 방송이 필요하다고 진정으로 판단하고 있다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무엇보다 일의 과정을 열어놓고 진행해야 한다. 청와대가 주는 대로 대통령 녹취 테이프를 받아 이를 전파로 내보내고, 야당 인사 전화 연결해서 적당히 시간 때우는 방식으로 대통령 주례 방송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KBS가 청와대의 입으로 전락하는 길에 다름 아니다. 편성책임자인 라디오 본부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공식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라.

2008년 10월 14일
KBS 기자협회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