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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적 기사’ 외엔 뉴스하는 법 까먹은 것 같은 KBS, MBC, SBS[기자수첩] 주말까지도 ‘너무나 예상대로’인 지상파 뉴스
김수정 기자 | 승인 2014.12.08 17:31

민감한 이슈에 대한 정보와 사실관계를 풍부히 전달하지 않는다. 의혹 당사자가 청와대 등 소위 ‘권력’일 경우 보도는 더 소극적으로 변한다. 중요한 ‘발생뉴스’를 축소하거나 누락한다. 그 빈자리를 ‘주말 스케치’나 폭우, 폭설, 태풍 같은 날씨 이야기로 채운다. 해외토픽에 나올 만한 진기한 사람 혹은 동물에 집중하고 요즘 뜨는 제품이나 공간, 취미생활을 소개한다. 개인 간의 분쟁과 사건 기사가 늘어난다. 때때로 K팝에 열광하는 한류팬들을 조명한다.

매체비평지라는 특성상 방송뉴스 비평을 다른 언론보다 더 자주 하다 보니, ‘오늘도 비슷한 소리를 하게 되네’ 하는 생각도 더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그만큼 지상파 방송뉴스는 참 변함이 없다. 주말뉴스는 더하다. 앞서 언급한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휴일 스케치는 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특위가 발행한 <방송보도를 통해 본 저널리즘의 7가지 문제>에서 ‘관습적 기사 작성’의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 바 있다.

모니터링을 하면서 가장 자주 목격했던 문제는 주말에 발생한 주요 뉴스의 누락 및 축소보도, 지나친 날씨 편중 보도였다. 국정원 대선개입으로 여름 내내 타올랐던 촛불은 주말뉴스가 가장 자주 외면했던 아이템이었던 반면, 장마, 태풍, 폭우, 폭설은 주말뉴스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지난 주말에도 발견된 ‘관습적 기사 작성’

이른바 ‘정윤회 문건’으로 정국이 시끌시끌했던 지난주 주말에도 방송뉴스는 참 평이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는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각자 타 방송사보다 크게 앞서지도 크게 뒤처지지도 않는 적당한 수준의 보도를 했다. 3사는 새로운 사실을 캐내어 알리지 않았고, 그동안 나온 수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하지도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이 주는 허무맹랑함을 꼬집은 곳도 없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같은 방법으로 요리한 셈이다.

   
▲ 7일자 지상파 방송3사 뉴스 첫 꼭지. 위에서부터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KBS <뉴스9>의 6일 1~2번째 리포트는 <서해안 엿새째 폭설…피해 잇따라>, <초겨울 이례적 폭설…모레 또 많은 눈>이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의 검찰조사 소식을 비롯한 정윤회 문건 보도는 3~5번째로 방송됐다. 이날 <뉴스9>는 프랑스 유기농 마을의 경쟁력을 탐구하다가, 겨울철 타이어 마모의 위험성을 짚는가 하면, 맥박 빠른 남성의 사망위험률이 22% 높다는 건강 정보를 건넸고, 동물원의 겨울나기 준비를 보도했다.

7일 <뉴스9>는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톱 뉴스로 뽑았다. 청와대에 어떤 의혹이 제기됐을 때에 그 ‘의혹’이 첫 보도로 나가는 것은 드물지만, 청와대의 해명이 나오면 대부분 그 보도가 첫머리를 장식했듯 이날도 그런 경향은 유지됐다. 여야의 상반된 반응, 정윤회 씨의 검찰 출두 일정을 전하는 것으로 이날 ‘정윤회 문건’ 보도는 끝났다.

MBC <뉴스데스크>는 아예 문건의 진위보다는 ‘유출’에 초점을 맞춰 이번 사건을 ‘문건유출 사건’이라고 명명해 보도했다. 7일의 경우 헤드라인만 다를 뿐 리포트 내용은 <뉴스9>와 대동소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강경 발언-여야의 엇갈린 반응-검찰의 정윤회 씨 수사 계획 순이었다.

<차도 집도 온통 눈…엿새 ‘눈폭탄’에 파묻힌 서해안>, <춥고 메마른 날씨, 화재 잇따라…온풍기 과열 화재 外>, <전국 곳곳 또 많은 눈…출근길 ‘빙판’ 교통대란 우려> 등 날씨 보도가 빠지지 않았고 <[현장M출동] 화물차 갓길 불법주차, 대형사고 부른다>, <남성용 ‘먹는 피임약’ 첫 개발…임상 결과 피임 효과 99%>, <직장인 우울증, 방치하면 경제 큰 손실…생산성 저해 부른다>, <인터넷 은행 시대 오나?…'점포 없는 은행' 등장 가시화>, <연말정산 한 달 앞으로…‘13월의 세금폭탄’ 피하는 법>, <납골당 중도해지 해도 미리 낸 사용료 환불 받는다> 등 생활 정보성 뉴스가 많았다.

<야구 심판 꿈꾸는 직장인 야구팬들…심판 학교 ‘북적북적’>, <‘서울 야경’에 빠진 사람들…해가 져야 보이는 서울의 매력>, <‘더 높고 아찔하게’ 173m, 세계에서 가장 높은 롤러코스터>, <브로드웨이를 사로잡은 한국인 마술사…예술 같은 카드 마술쇼>, <이레·김수안, 두 명의 천재 아역 등장에 영화계 들썩>, <뜨거운 K-POP 커버댄스 열풍…백댄서에 매니저까지> 등 뜨는 장소 소개, 특색 있는 취미까지 연성 아이템의 리포트 개수나 내용도 타사에 비해 비중이 높았다.

   
▲ 6일자 SBS 리포트 목록

주말 SBS <8뉴스>에서도 앞서 언급한 ‘관습적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이틀 내내 정윤회 문건 관련 보도는 5건이었다. MBC <뉴스데스크>와 같았고, KBS <뉴스9>보다는 하나 적었다. <8뉴스>는 식음료업계의 사은품 마케팅, 밍밍하지 않은 진한 맛으로 경쟁하는 맥주업계, 연말에 격돌하게 될 헐리우드-국내 영화, 연비 좋고 가격도 착한 실속형 SUV, 사람 대신 위험한 일을 도맡는 방재 로봇, 재미있는 가사와 코믹한 무대로 무장한 웃기는 음악 등 화제가 되고 있는 제품과 문화 콘텐츠를 자주 언급했다.

방송뉴스도 더 친절해질 수는 없나요?

방송뉴스가 뜨뜻미지근한 보도를 선보이는 사이 신문들은 같은 기간 가장 뜨거운 이슈인 ‘정윤회 문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경향신문>은 6일자 1~5면에서 이번 사건을 ‘정윤회 국정농단 논란’이라고 규정해 기사를 게재했고, 민간 재단인 세종재단 이사장 인사에 청와대가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이 나타난 문건을 입수해 이를 심층보도했다. <동아일보> 역시 1~3면에 거쳐 ‘정윤회 문건 파문’이라는 제목 아래 기사를 실었다. 전 육영재단 임원의 처조카인 김모씨가 정윤회와의 친분을 과시했다는 점, 이정현 홍보수석비서관이 제 역할을 못하니 비리를 파헤쳐 빨리 몰아내라고 했다는 점 등 복구된 정윤회 문건 내용이 상세히 보도됐다.

<조선일보>도 1면, 3면, 4~5면을 할애해 정윤회 문건을 다뤘는데, 검찰의 <세계일보> 압수수색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담겼다. 이번 사건 이전에도 미확인된 정보가 판쳐 정국이 흔들렸다면서 소개한 <‘정윤회 논란’ 업고... 더 활개치는 찌라시 정치>라는 기사도 눈에 띈다. <중앙일보>는 이번 사건에 ‘비선권력 의혹 확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1면, 3~5면, 6면 절반을 채웠으며 14면에는 <정윤회 문건으로 본 찌라시의 세계>라는 기획성 기사를 실었다.

압권은 6일 공개된 <한겨레> 온라인 기사 <한 눈에 딱 들어오는 ‘정윤회 파문’ 총정리>(기사 바로가기)였다. <한겨레>는 ‘더(the) 친절한 기자들’ 코너에서 지난달 28일 <세계일보> 단독보도로 밝혀진 ‘정윤회 문건’ 파문의 전말을 정리했다.

   
▲ 6일 온라인에 공개된 <한겨레> <한 눈에 딱 들어오는 ‘정윤회 파문’ 총정리> 기사

우선 이 사건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배경인 ‘수첩 인사’ 논란과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 문제를 설명하고, 세상에 드러나게 된 정윤회 문건 보도의 의미를 짚는 한편, 문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상세히 소개했다. <한겨레>는 정윤회 씨가 손을 뻗친 것으로 알려진 일련의 인사흐름을 표로 정리해 이해를 높였고, 흔히 거론되는 ‘정윤회VS박지만 싸움’ 구도만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정윤회 부부가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구체적인 증언을 확보한 자사 보도를 비롯해 12월 3일 이후의 보도 내용을 정리하는 ‘더(the) 친절한 기자들’ 후속편을 마련하고 있다. 단순히 그동안 나온 이야기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꼼꼼한 분석을 통해 생소한 독자도 사건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한 보도라는 점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 기사는 8일 오후 현재 트위터상에서 1095회, 페이스북에서 7400회 공유됐다.

살아있는 이슈 보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많은 언론사들이 매달리고 있고, 주말판을 별도로 만들어 더 신선하게 사안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뉴스는 지나치게 차분해 보인다. 방송사들도 인터넷뉴스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지만, 결국 뉴스의 얼굴은 ‘방송뉴스’인데 여기에서만은 유독 익숙한 길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시청자들이 알아야 할 ‘무게감 있는 사안’을 집중보도하고,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을 시도하고, 도표나 사진, 동영상 등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시각적 효과를 높이고, 자사 보도뿐 아니라 타사 보도까지 아울러 사안을 ‘이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보도는 방송뉴스에선 불가능한 것일까.

김수정 기자  girlspeac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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