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과와 면담, ‘서울시민인권헌장’의 조속한 선포를 촉구하며 시청 농성에 돌입한 가운데, 이를 지지하는 정당·시민사회단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7일 오후 1시 서울시청에서는 <성소수자 인권 지지와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 촉구 인권시민사회> 긴급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사회를 맡은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단 하루 만에 많은 단체들이 지지를 위해 와주셨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실제 기자회견에는 박원순 시장이 몸담았던 참여연대와 민변을 비롯해 공익인권법재단, 민주노총, 새사회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노들장애인야학, 환경운동연합 등의 단체들이 함께 했다. 또한 박 시장이 정치적으로 함께 연대해왔던 정의당과 노동당, 통합진보당, 녹색당도 참여했다.

▲ 7일 오후 1시 서울시청에서는 <성소수자 인권 지지와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 촉구 인권시민사회> 긴급 기자회견이 개최됐다ⓒ미디어스
이들 단체들은 지난 6·4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을 지지했던 한 축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인권은 찬반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박 시장의 즉각적인 사과와 면담을 요청했다. 또, 예정된 대로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 인권헌장의 선포를 촉구했다.

참여연대·민변 “서울시는 예정대로 12월 10일 인권헌장 선포하라”

참여연대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성소수자들의 권리가 혐오세력에 의해 공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이를 방어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서울시는 인권헌장이라는 좋은 일을 시작한 만큼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며 “그리고 인권헌장에는 편견과 차별에 노출된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내용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세력의 반대가 강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것(동성애 차별금지 내용)이 빠진다면 인권헌장이 헌장다운 노릇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 성소수자 인권 지지와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 촉구 인권시민사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시장이 몸담았던 참여연대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미디어스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인권헌장이 예정대로 12월 10일 인권의 의미를 기념하는 날이 반드시 선포해달라. 그리고 성소수자들이 차별로 인해 공격받은 것에 대해 서울시가 책임있게 사과하고 면담에 응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위원회 위원장 장서연 변호사는 “박원순 시장은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민변의 초창기 멤버”라면서 “그런 박 시장에 공식 논평을 내는 것에 대해 매우 착잡하다”고 토로했다. 장 변호사는 “서울시는 인권헌장의 권한을 시민위원회에 줬기 때문에 그들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제정한 헌장을 선포해야한다”며 “이를 합리적 근거 없이 폐기하는 것은 중대한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변호사는 “공청회에서 보수 기독단체가 사회자의 멱살을 잡고 마이크를 뺏는 행위는 명백한 공무집행 방해”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기 때문에 엄정한 법적대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서연 변호사는 MBC를 별도로 지목해 “오보를 정정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MBC는 ‘시민위원 180명이 참여했고 절반 이사이 퇴장했다’는 등 헌장이 무산된 것처럼 이야기한다”며 “기사를 낼 때 서울시 입장만 받아 적지 마시라. 인권헌장 제정 주최는 시민위원회이니 만큼 사실확인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공익인권법재단 염형국 변호사(법무법인 공감)는 “박원순 시장의 발자취를 따라 공익인권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면서 “박 시장이 우리의 앞길을 이끌어주시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혐오세력과 함께 하는 것은 인권의 가치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박원순 시장, 진보의 단물만 취하는 먹튀…억울하면 면담하자”

이날 기자회견에는 박원순 시장과 정치적으로 연대해왔던 진보정당들이 함께했다. 박원순 시장이 소속된 새정치민주연합은 불참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동성애자’로 이번 사태를 누구보다 주시해왔던 김조광수 감독(녹색당 소수자인권특별위원장)은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 축제를 열 줄 알았다. 그런데, 왜 우리가 시청 1층 로비를 점거해야하느냐”라고 개탄했다.

▲ 성소수자 인권 지지와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 촉구 인권시민사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성소수자 김조광수 감독이 발언을 하고 있다ⓒ미디어스
김조광수 감독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뽑으면서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인권변호사 출신 박원순 시장이 어떻게 ‘합의하라’는 말을 할 수 있느냐. 이 같은 발언은 성소수자가 시민임을 합의하라는 의미다. 우리는 시민이 아닌가”라고 한탄했다. 김조광수 감독은 이어, “인권이라는 것은 보편적 가치라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명시돼왔다.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당 장석준 부대표는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먹튀자본’ 때문”이라면서 “서울시 인권헌장 또한 같은 문제로 보인다”고 말문을 열었다. 장 부대표는 “박원순 시장은 한국사회 내에서 진보로 포장되는 대표적 인물 중 한 분”이라며 “박 시장이 진보의 단물은 다 누리면서 가장 기본 원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먹튀와 무엇이 다른가. 제가 한 말이 억울하면 변명할 것 없이 면담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장 부대표는 ‘진보’를 “눈에 보이지 않는 인권을 보이도록 하고 반대가 있더라도 확대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에 비춰보면 박 시장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의당 문정은 부대표는 “6·4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않고 박원순 후보에 대해 지지를 보냈었는데 이 같은 기자회견이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박원순 시장은 인권의 문제를 찬반 프레임으로 가져오면서 인권을 후퇴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통합진보당 유선희 최고위원은 “박근혜 정부 아래 인권은 후퇴하고 있는데, 박원순 시장이 이에 편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원순 시장의 버팀목이던 시민사회단체들의 말말말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 밖에도 6·4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을 지지했던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했다. 이들은 박 시장의 큰 버팀목이기도 했다.

▲ 성소수자 인권 지지와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 촉구 인권시민사회 긴급기자회견이 끝나고 농성장에서는 미사가 진행됐다ⓒ미디어스

“인권이라고 하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선 안 되고 신체적 불편함이나 종교, 성에 의해 차별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걸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다른 집단에 대해 마녀사냥하는 모습을 우리나라에서 보고 있다. 성소수자 문제 또한 당연히 인정되어야할 인권의 영역이다. 사람은 권력과 체제, 야욕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회가 가져가야할 올바른 가치를 훼손하면 안 된다”<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

“인권헌장은 시민제정위원회가 참여한 만큼 서울시가 발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번 사태는 비단 성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성소수자 혐오는 그 대상이 또 다른 여성, 이주민,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보편인권을 저버리는 반인권 행태에 굴복하는 서울시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박차옥경 사무처장>

“이번 사태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혐오범죄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박원순 시장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아야 한다. (박원순 지지세력들은)대의를 위해 당신들의 권리를 양보하라고 한다. 진보진영의 분열은 안 되며 차기 대권 유력 주자의 발목을 잡지 말라는 것이다. 과연, 그 같은 말이 ‘잘 살고 있는데 무슨 인권타령’이라던 세력과 무엇이 다른가. 인권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다” <즐거운교육상상 안영신 집행위원장>

“환경운동은 좋은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일한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생태계는 다양성이다. 어떤 특정한 존재들만이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생명들이 각각의 위치에 있을 때 생태계가 건강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정신에 비춰보더라도 성소수자들에 대한 어떠한 행태의 차별은 있어선 안 된다. 그것은 폭력이다. 박원순 시장은 당장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사과해야한다” <환경운동연합 염형철 사무총장>

“일부 보수기독단체들이 인권헌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어떻게 동성애 조장인가. 그들은 일부 종교 교리를 이용해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특정한 사람들을 배제하면서 전체주의 사고로 전환하려는 의도와 목적이다. 혐오는 반인권의 다른 말이다. 혐오 목소리에 대해서 반대표명하지 않는다면 안된다” <새사회연대 신수경 공동대표>

“성소수자도 시민이다” <노들장애인야학 김명학 학생대표>

한편, 서울시는 이날 오전 9시 성소수자 차별 반대 인권단체들의 농성단에 ‘퇴거장’을 발부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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