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없었다. “언론이, 기자들이 문제를 제대로 보도했다면 두 사람은 저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씨앤앰 간접고용 노동자의 싸움을 ‘정규직 과보호’ 논리에 사용하고, 한국경제는 “하청노조 때문에 원청이 흔들린다”는 주장을 늘어놓는다. “업체를 신설해 해고자 109명을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하겠다”는 씨앤앰의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기자들이 절대다수다. 언론사 간판이 사방에 대문짝하게 붙은 서울 광화문 한복판의 싸움은 이렇게 활용되고 있다.

씨앤앰 하도급업체에서 일하다 계약만료로 해고된 노동자 109명은 씨앤앰의 최대 투자자인 ‘사모펀드운용사’ MBK파트너스가 입주한, ‘한국 금융자본의 심장’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130일 가까이 노숙농성을 벌이고, 두 노동자가 20미터 높이 옥외광고판에 오른 지난달 12일에야 이 싸움은 ‘가까스로’ 알려졌다. 민주노총과 사회운동단체들이 달려왔고, 씨앤앰 정규직 노동조합은 파업을 시작했다. 문재인과 문희상 같은 야당 유력정치인도 입을 열고 투쟁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이 싸움을 기록하는 기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노동을 변호하는 언론은 더 적다. 5일 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단체들이 기획한 문화제를 취재한 매체는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 언론노보 3곳이었다. 미디어오늘과 언론노보의 카메라만 저 위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렸다. 언론노보 이기범 기자는 “플래시를 아무리 터뜨려도 저 곳을 찍을 수 없다”고 했다. 빛이 부족한 밤이라서 그렇지만, 훤한 낮에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이곳을 지나친다.

▲ 언론노조 사무처 활동가들은 5일 밤 열린 씨앤앰 연대문화제에서 카드섹션을 준비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문화제는 ‘반성’으로 시작했다. 언론노조 최정기 조직차장은 “언론이 투기자본의 악랄함을 조금 더 잘 보도했다면 강성덕, 임정균 두 동지가 저 곳에 올라가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파도 케이블도 IPTV도 같은 미디어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인데도 그렇다. 문화제 현장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깃발을 들고 온다면 큰 힘이 될 텐데요.” 철저하게 지면 계획과 큐시트에 따라 움직이는 게 언론이라지만 서운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언론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문제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한 방송사 PD는 “출장 간 곳에서 계약직 조연출과 둘이 <미생>을 보는데 민망하다”고 했다. ‘하청’ 조연출과 서브작가는 ‘원청’의 업무지시에 따라 움직이지만 회사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도, 시간외수당을 제대로 청구하지도 못한다. KT스카이라이프 직접고용 정규직인 장지호 언론노조 KT스카이라이프지부장은 “우리 정규직은 300명 정도인데 그보다 몇 배 많은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같이 일한다”고 말했다.

장지호 지부장은 “원청은 협력사가 없으면 처음부터 제대로 걸을 수 없다”며 “정규직이 영업을 잘 하더라도 접시를 설치하고 수리하는 노동자가 없다면 고객은 TV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파부터 IPTV까지 방송통신업계는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노동의 한가운데를 갈라 외주화했다. 직접고용은 간접고용의 선이 다가오는 게 두렵다. 하청을 쥐어짜는 게 원청의 ‘성과’가 돼 버렸다. “원청에 하청의 생사가 걸려 있고, 하청은 원청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씨앤앰 사태는 2008년 언론계의 ‘무관심’에서 시작했다. 당시 방송위원회는 최초로 사모펀드의 방송 진출을 허용했다. MBK파트너스는 씨앤앰 장영보 사장 표현대로 “어차피 떠날 투자자”다. 가입자를 늘리든지, 노동 몫을 줄여야 ‘매각차익’이 생긴다. 이런 까닭에 주주가 경영진에게 ‘구조조정’을 압박하는 것이 이 바닥 생리다. 여기에 노동조합을 순치하거나 아예 없애버리면 ‘가격’은 더 뛴다. 109명 대량해고와 임금 20% 삭감은 2008년에 예고됐다.

씨앤앰 노동자들은 150일 넘게 길바닥에서 먹고 자고, 고공농성을 하며 알리려 하는 것은 ‘7년이나 지난 문제’다. 2008년 당시 이 문제에 관심이 있거나, 정책결정에 관여한 언론계 인사들은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부작용을 막으려 노력했다”고 하지만 변명이나 자기합리화에 가깝다. 언론과 언론운동단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추혜선 사무총장은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며 사모펀드에게 방송을 넘긴 것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혜선 사무총장은 “(2008년 씨앤앰 최대주주 변경 승인에 관한) 국회 진상조사가 필요하고,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는 무리한 차입경영을 막을 가이드라인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MBK파트너스와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가 주도한 씨앤앰 인수과정이 투명하게 밝혀지고, 씨앤앰 재매각시 ‘구조조정 중단’ 등 사회적 책임을 ‘최대주주 변경 승인 조건’으로 못 박으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언론계가 책임지고 이 문제를 풀 방법은 이것뿐이다.

▲ 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지부의 김종호 부지부장은 “최소한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사과 한마디만 했다면 이렇게 싸우고 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싸움을 시작한지 6개월이 넘어가지만 이제 시작이다. 동지를 믿고 나를 믿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노사교섭이 어그러진 상황은 언론을 호출한다. 씨앤앰이 내놓은 대책은 ‘영업·설치전문점 신규채용’이다. 내근·설치·AS·철거업무를 했던 노동자에게 영업을 하라는 것이다. 더구나 씨앤앰은 업체 설립에 참여하지 않는다. 되레 해고자들에게 “직접 설립하라”고 했다. 업체와 최대주주가 바뀔 때 고용불안이 예상되는 간접고용, 사실상 ‘비정규직’이다. 씨앤앰의 꼼수와 MBK파트너스의 실체, 노숙·고공농성 이야기,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파업 등 언론이 파고들 지점은 많다.

씨앤앰의 언론플레이에 놀아난 언론과 2008년 첫 단추를 잘못 꿴 언론운동단체들이 나서야 할 때다. 김종호 씨앤앰지부 부지부장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뒤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상윤 새언론포럼 대표는 “(언론이) 자본과 권력의 동반자 관계를 깨야 한다”고 말했다. 추혜선 사무총장은 “방송의 공공성과 공적책임에 노동이 있고, 이 문제는 시청자의 권리와 직결된다”며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방통위와 미래부를 압박하겠다”고 말했다.

▲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단체는 이날 문화제에서 팥죽과 호박죽 130인분을 준비했다. (사진=언론노보 이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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