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삼성 앞에만 서면 왠지 왜소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무게감 있는 펀치를 날리고 싶어 768페이지의 책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을 냈다. 2008년에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를 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삼성이 변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삼성 비자금 문제가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특검이 실시됐었다. 그 때 이건희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 약속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그런데, 국가권력도 언론도 아무도 삼성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거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삼성에게 책임을 다 하라고 이야기해야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책을 내게 됐다”

또 ‘언론’이다. 5일 열린 책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 북콘서트에서 가톨릭대 사회학과 조돈문 교수는 책을 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언론조차 안하니 누군가는 삼성에게 책임을 물어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삼성테크윈만의 문제?…누가 회사를 위해 일하겠나”

‘삼성이 망하면 안 된다’라는 사람들의 인식과 관련해 조돈문 교수는 “망하는 것은 총수일가일 뿐, 삼성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삼성테크윈과 삼성토탈 등 4개 계열사의 한화 매각과 관련해 “총수일가는 공장을 팔아치우면 그만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남는다”며 “총수일가가 기업을 팔아먹건 아니건 끝까지 공장을 지키는 사람은 결국 노동자들”이라고 강조했다.

▲ 5일 책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 북콘서트가 합정동에서 열렸다. 가수 손병휘 씨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조돈문 교수와 삼성서비스지회 박성주 부지회장, 권영국 변호사의 모습ⓒ미디어스
조돈문 교수는 “하루아침에 공장 팔아버리고 ‘가서 일 잘해라’라는 것이 현재 삼성의 태도”라면서 “삼성 노동자들도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 단순히 삼성테크윈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전자, 삼성중공업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어떤 노동자가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겠나. 삼성은 정말 그러길 바라나”라고 되물었다. 그는 “노동자들이 삼성을 위해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제품에 따른 최고의 AS를 제공하면서 회사의 이윤을 축적했다. 그런데 그게 다 어디로 갔냐?”며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삼성 총수일가가 마련한 비자금이 확인된 것만 10조원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총수일가가 자기 주머니돈처럼 주물럭거리고 있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조돈문 교수는 ‘삼성이 바뀌면 무엇이 달라지느냐’는 물음에 “노동자 인권유린은 없어지고 불법과 편법을 통한 3대세습도 없을 것이다. 비자금, 정치자금도 없어질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책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삼성이 왜 바뀌어야하는지 다 나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사회는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행복, 인간관계를 파괴했다. 그 가치를 파괴하게 된 원인이 매우 잘 분석돼 있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북콘서트에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와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 씨가 참석했다. 황유미 씨는 지난 9월 법원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은 바 있다.

고 황유미 씨 아버지, “남이 내 권리를 찾아주지 않는다”

▲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가 북 콘서트장을 찾았다ⓒ미디어스
황상기 씨는 ‘가장 힘든 일’로 “피해자 신고가 또 들어올 때”라고 말한다. 그는 “또 한 사람이 병에 걸리고 또 다른 가족들이 힘들어하고 해체되는 얘기를 들을 때 힘들다”며 “이제 이런 일은 스톱되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혼자만 움켜쥐고 있기에는 큰 아픔”라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황 씨는 삼성에 노조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속초 집에서 멀리 설악산이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설악산을 간다고 하면 엄두가 안 난다. 그런데 집을 나서서 설악산으로 가다보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한 두 사람 모여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삼성은 노조를 만들려고 하면 어떤 이유를 달던 와해시킨다. 그러다보면 노동자들이 자신감이 사라진다. 혼자서는 힘들다. 그렇지만 여러 명이 모이면 반드시 할 수 있다. 삼성에 노조가 없어서 어떤 일이 생겼나. 삼성반도체에 노조가 없었기 때문에 작업장을 안전하게 만들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유해물질에 자신이 노출돼 있는 것 자체를 몰랐다. 교육도 안시켜주고 알권리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노조가 있었다면 조합원이 병 걸리고 죽게끔 놔뒀겠나. 노조는 권리다”

황상기 씨는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남이 나의 권리를 절대 찾아주지 않는다”면서 “내가 나설 때만이 권리가 주어질 수 있다”고 당부했다. 실제 삼성에 제대로 된 감시시스템이 없다 보니 유사한 일들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한혜경 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LCD 제작작업을 하다가 뇌종양에 걸려 투명중이다. 힘겨운 상황에서도 편지를 들고 북 콘서트를 찾아줬다.

▲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 씨가 북콘서트를 찾았다ⓒ미디어스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에 입사한다는 생각에 상상만 해도 너무 좋았다. 돈 말이 벌어 집안 형편상 포기했던 대학도 가고 우리 엄마 호강도 시켜드리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입사를 하니 제 생각과 너무 달랐다. 날로 피곤해지고 몸이 이상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같이 일했던 친구는 임신이 안 된다고 했다. 몸이 더 안 좋아져 내 꿈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줄은 몰랐다. 마사지사가 되고 싶었으나, 이제는 그 조차도 할 수 없게 됐다. 지금 저는 누구의 도움 없이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돌이켜 보면,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 그런데 왜 지금 장애인이 되어 살아가야하는지 정말 삼성이 원망스럽다”

한혜경 씨는 “엄마한테 죄송하다. 저 때문에 너무 많이 고생을 했다”며 “삼성에게 말하고 싶다. 신입사원 뽑았을 때, 철저히 교육시키고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제대로 된 건강검진해서 다시는 저 같은 사람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토크콘서트에서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박성주 부지회장이 참석했다. 그는 삼성에 노조를 결성하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삼성에서의 ‘희망’은 어쩌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박 부지회장은 “노조가 있기 전과 후로 구분된다”며 “삼성전자서비스에서 10년을 일했는데, 그 전에는 점심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생겼다”고 밝혔다. 그는 “기본급도 생겼고 업무용 차량, 차량 유지비도 생겼다. 그런데 다 집어 치우고 우리에게 없던 인격이 생겼다”며 “그동안 우리에게 노동자로서 권리가 없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삼성전자서비스의 승리에는 희생이 따랐다. 이날 삼성서비스노동조합 노래패 ‘밧데리’는 최종범·염호석 씨를 기리는 노래를 열창했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숙연하게 만들었다.

아래는 책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 북콘서트장의 모습이다.

▲ 가수 이란·솔가의 공연모습ⓒ미디어스
▲ 삼성서비스지회 노래패 '밧데리'의 공연 모습ⓒ미디어스
▲ 북콘서트에서 펼쳐진 퍼포먼스로 인권나무에 불이 밝혀진 모습ⓒ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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