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논란의 대상이 될 때마다 한국 사회의 ‘시민적 상식’이란 것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한탄하게 된다.

이자스민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을 때부터 야권 지지자들의 원성을 샀다. 진보의 구성원 상당수가 ‘민족’을 말하며 보수세력을 ‘친일파들의 후예’로 규탄하는 이 나라에선 다문화주의가 죄악이라고 믿는 진보세력 지지자가 다수 존재한다. 뉴라이트가 탈민족주의를 먼저 대중화시킨 탓에 탈민족주의나 다문화주의가 ‘민족’을 붕괴시키려는 보수세력이 음모라는 골치아픈 관점마저 생겨났다. 그리하여 ‘다문화가정 비례대표’를 새누리당에 먼저 뺏긴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를 수구세력의 주구로 매도하는 일이 발생했다.

처음 거론된 것은 ‘학력위조’였다. 인종을 근거로 비판을 하는 것이 껄끄러우니 나온 최초의 핑계였다. 위조란 말은 문서 등 물건을 만들어낼 때 주로 쓰이는 말이다. ‘학력위조’라 함은 없는 학위증서를 만들어내 학위가 필요한 곳에 냈을 때 주로 쓰인다. 이자스민이 무슨 학력위조를 했을까. 이자스민은 선관위에 자신의 학력을 정확하게 보고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극적 감동을 위해 다소 왜곡된 사실을 전하는 건 흔한 일인데, 이것이 ‘학력위조’라고 이름붙여져야 할 행위였을까. 사실대로 말했지만 방송에서 바꾸었고 그 뒤로는 그 컨셉으로 나가야 했다는 그녀의 해명으로 모든 문제는 끝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녀를 비판하는 이들은 비판근거의 서두에 ‘학력위조’를 넣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고 있다.

▲ 지난 10월 21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열린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 3개 공단에 대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에는 이자스민 의원이 발의하지 않은 법안을 그녀가 발의한 것처럼 인터넷에 소문이 났다. SBS 임찬종 기자의 <[취재파일] 이자스민 의원이 왜?..한국판 이민법 논란>에 따르면,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인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필리핀계 한국인 이자스민 의원이 불법체류자를 보호하는 법안을 발의했다는 내용”은 완전히 허위라고 한다. 해당 법안은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를 대표발의자로 하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9명이 발의했다는 것이다.

또 게시물이 비난하는 아동복지법 개정안은 게시물이 주장하는 것처럽 불법체류자의 추방을 막는 법은 아니라고 한다. 대표발의한 정청래 의원은 “우리나라가 1991년 UN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을 비준했기 때문애, 우리나라 역시 부모의 신분에 상관 없이 아동의 체류권, 교육권, 보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임찬종 기자가 이자스민 의원실에 접촉한 결과 이자스민 의원은 발의자는 아니지만 아동복지법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하며, 대신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을 발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정청래 의원 법안이 이미 존재하는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교육과 건강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의원이 준비 중인 법안은 이주아동이 보장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에 대해 전체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새로 만드는 법안(제정법)”이라는 것이다. 이자스민 의원실은 준비 중인 법안에도 게시물이 비난하는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불법체류자의 강제 추방을 면제해주도록 하는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고 답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이자스민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지 않았는데, 발의자로 지목돼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선 "의원님은 이제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계신다"고 말했다고 한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면서 다문화 가족의 상징이 돼버린만큼, 감당해야할 몫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자스민 의원의 활동은 역으로 비례대표 제도의 취지를 매우 잘 살린 모범이라 불릴 만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일베’와 ‘오유’를 가리지 않고 혐오의 대상이다. 문창극 총리지명을 반대하는 새누리당 초선의원 6인의 성명이 발표되었을 때 ‘일베’에선 유독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혐오발언이 넘쳐났다.

이자스민 의원도 엄연한 한국국적을 지닌 한국인이다. 다만 저 멀리 필리핀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이런 사건을 두고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다”고 반응할 필요는 없는 까닭이다. 해야 할 일은 이런 사건들에서 소위 ‘단일민족 국가’라는 이유로 충분히 성찰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 문제를 성찰하고 공론화하는 것이다.

에네스 카야 사건을 이 뒤에 배치한다면 의아해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에네스 카야의 행동은 한국인이 했더라도 비난여론에 휩싸였을 일이기 때문이다. 터키인인 에네스 카야는 한국 여성과 교제하기 위해 ‘이탈리아인’을 연기했고, <JTBC> ‘비정상회담’에선 시청자들을 위해 ‘보수하고 고루한 터키인’을 연기했다.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에네스 카야는 자신의 부도덕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줬다.

▲ 방송인 에네스카야가 지난 10월 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인 남성과 교제하는 한국인 여성’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유별난 분노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여기서는 두 주체가 함께 규탄받는다. 외국인(주로 백인) 남성에 우호적인 한국 여성에 대한 분노, 그걸 활용해 한국 여성을 막 대하는 외국인에 대한 분노가 같이 온다. 여기엔 인종주의와 여성 혐오, 그리고 열패감이 함께 포개진다.

한국 사회에서 백인남성이 한국 여성을 쉽게 꼬실 수 있는 건 인종주의가 공고한 현상의 부산물이라 해석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 남성들은 그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 백인남성 개개인을 비판할 뿐, ‘흑인 석사’ 대신 ‘백인 고졸’을 영어강사로 채용하는 한국의 인종주의적 문화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젊고 예쁜 여성이 인생을 수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외모가 지나치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그것이 모든 여성에게 크나큰 압력으로 작용하는 구조의 부산물이라 해석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 남성들은 여성의 외모를 매우 공격적으로 평가하는 행위는 그치지 않은 채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는 젊고 예쁜 여성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이것은 마치, 프로야구에서 FA제도의 기간이 너무 길어 소수선수만 풀리게 되어 금액이 급등하게 되는 구조를 두고, FA제도의 기간을 줄일 생각은 않고 몇몇 선수의 연봉에 ‘거품’이 꼈다고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그래서야 매번 개인의 행태에 대한 분노만 표출할 수 있을 뿐 사회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이참에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 문제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한화 이글스의 김태균 선수가 이제는 팀 동료가 될 지도 모르는 유먼 선수에게 개인적으로 정중하게 사과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조성되었으면 한다.

▲ 지난 10월 15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 롯데 선발투수 유먼이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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