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는 11월 30일 보도자료에 나온 “헌장의 표결처리에 대해 최종적으로 합의에 실패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같은 날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위원회 소속 전문위원들은 “서울시는 시민위원회가 확정한 인권헌장을 예정대로 선포함으로써, 애초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상황을 전혀 다르게 보고 있다.

서울시민인권헌장 채택 파행에 이르기까지
맥락을 보면 제정위원회 전문위원들의 인식이 훨씬 합당하다. 서울시는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문위원 40명과 시민위원 150명을 포괄하는 총 190명의 제정위원을 위촉(서울시 홈페이지와 보도자료에선 180명)해 헌장 제한 권한을 위임했다. 전문위원은 인권전문가 및 단체, 명예부시장, 시의원 등으로 구성되었고, 시민위원은 서울시의 홍보에 따르면 “만 14세 이상 일반시민 대상으로 참여자 공개 모집 및 무작위 추첨을 통해 시민대표성 확보”하는 방식으로 “연령․성별․지역 대표성을 고려하여 균형있게 선정”되었다. 전문위원은 처음에는 30명으로 예고되었으나 이후 시의원 중심으로 10명이 추가 선정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8월 6일부터 11월 28일까지 6차에 걸쳐 시민위원회를 열었고 시민위원회 중 분과토의를 거쳤으며 강남북 권역별 토론회 2회, 10대 분야 인권단체 간담회 9회, 공청회 등을 열었다.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4차 시민위원회(10월 25일)에서부터 시민의원들 사이에서 동성애 혐오발언이 나오기 시작했고 강남북 권역별 토론회(9월 30일, 10월 17일)는 비정상적으로 개최되었으며 6차 시민위원회 직전인 인권헌장 공청회(11월 20일)는 기독교인으로 추정되는 동성애 혐오 시위대의 난입으로 개최도 못하고 파행되었다. 그들은 6차 시민위원회 전날엔 서울시 시민보호관 주최로 열렸으나 인권헌장과는 관련이 없는 ‘2014년 시민인권보호관 제도의 평가와 발전방안 토론회’(11월 27일)에까지 난입하려 했으나 혐오발언에 반대하는 '카운터' 시위대에 의해 저지당하기도 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2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민선 6기 인사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무원이 일 잘하면 도시 발전, 시민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마음으로 인재 발굴, 경력 개발, 교육훈련,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5차 시민위원회(11월 13일) 때 분과별 초안 조정 및 인권헌장안이 작성되었으며 합의된 사안과 미합의된 사안을 분류했다. 이견 없이 합의된 것은 45개 조항, 미합의 조항은 5개였다. 그리고 문제의 11월 28일, 26명 자진사퇴자 외 총 164명의 위원 중 110명이 출석했다(110명이 출석했다는 것은 현장 참여자인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의 증언이며 서울시에서 집계했다). 제정위원들은 합의된 45개 조항에 대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후 미합의된 조항에 대한 결정방식을 논의했다.
이때부터 서울시가 바빠졌다. 발언을 요청하고 ‘만장일치가 아니면 인권헌장을 선포할 수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발표했다는 것이 제정위원회 전문위원들의 설명이다. 그들에 따르면, 시는 이후에도 총 4차례의 발언을 통해 투표로 결의한 헌장은 시가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30일 서울시의 보도자료에서 해당 사안에 대한 서술을 찾자면 “서울시는 6차 시민위원회에서 지속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표결형태의 처리방식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합의방식을 진지하게 고려해주실 것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이어서 서울시는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최선의 합의를 촉구한 서울시로서는 헌장의 표결처리에 대해 최종적으로 합의에 실패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의 놀라운 ‘언론 플레이’
그러나 제정위원회 전문위원 측은 제정위원회가 서울시 입장의 수용 여부를 논의한 결과, 압도적 다수가 의결절차를 스스로 정하고 결정하기로 의결했고 이후 표결에 의해 미합의 사항을 확정하기로 의결했다고 한다. 제정위원회가 이렇게 결정하고 표결에 돌입하자 서울시 관계자는 사회자의 마이크를 빼앗는 등 회의진행을 방해했고 나중에는 위원들의 퇴장을 종용했다고 한다.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서울시가 아마도 통상적인 의결정족수인 ‘과반수 출석, 과반수 찬성’의 요건을 붕괴시키기 위해 그리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서울시는 최종적으로 표결결과를 ‘77명 투표 중 60명 찬성’이라 정리했다. 차별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기하는 1안 찬성이 60명, 명기하지 않는 2안 찬성이 17명이었다. 마지막 표 집계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지연되어 위원들이 발표 안 하고 뭐하냐고 소리를 칠 정도였다고 한다. 더구나 일부 참석자들은 나중에 서로 맞춰가며 추론한 걸로는 도저히 당시 현장에 77명 밖에 없었다는 걸 납득하기 어렵다는 ‘강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그러나 현장에 77명 이상이 있었다 하더라도 기권자가 있었기에 투표결과가 그렇게 나올 수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 ‘의구심’은 넣어두고 ’77명 투표 중 60명 찬성‘이란 것이 얼마나 오묘한 숫자인지 보자. 77명의 표결은 당일 회의 당시 의결권이 있었던 총 164명 위원의 과반인 82명에 약간 못 미친다. 당일 참석자는 서울시 집계로 110명이었고 그중 60명이 찬성했다면 ’과반수 출석, 과반수 찬성‘의 요건은 넘는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하지만 110명 중에 60명 찬성이라면 찬반이 팽팽해 보인다. 물론 ’서울시‘와 ’표결을 원하는 이들‘이 대결하는 상황에서, 먼저 퇴장한 이들(33명 추정)의 심리를 함부로 짐작하기는 어렵다. 현장 분위기를 생각해 볼 때, 일이 있어서 일찍 간 사람, 서울시의 의사 방해에 항의차 퇴장, 셈 오류, 기권표 등 다양한 이유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지난 11월 30일 저녁 서울시청 주변의 풍경 ⓒ미디어스
다만 서울시가 제정위원회의 자율적인 결정이 한쪽으로 확 쏠리지 않았다는 결말을 보여주기 위해 무던히 애쓴 것은 분명해 보인다. 110명 출석에서 2/3 이상이 되려면 74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정황상 서울시가 자유투표를 보장했다면 가능했을 수도 있는 수치다(퇴장하거나 기권했다는 33명 중 14명의 추가찬성이 필요).
전문위원들이 주로 찬성을 던진 것도 아니었다. 참석자들은 전문위원 중 운영담당 4인은 확실히 기권했다고 증언한다. 의회에서 위원장이 보통 한편을 안 들고 기권하듯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결국 제정위원회는 인권 문제에 대한 시민위원들의 인식의 진전을 위해 애를 썼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77명 투표 중 60명 찬성, 이란 결말은 “합의에 실패한 것으로 판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처럼 제시됐다.
그나마 MBC 뉴스에선 “위원 18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퇴장”한 가운데 “퇴장하지 않은 73명이 표결로 1안을 선택”했다 왜곡보도를 한다. 서울시가 11월 30일에 보낸 보도자료에도 “서울시민 인권헌장에 참여해주신 180인의 서울시민 인권헌장제정위원들이 보여주신 열정과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쓰여 있다. 앞서 정리했듯, 최초 계획은 180인, 실제로는 190인으로 운영됐으며, 26인이 사퇴한 결과 164인이 남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당시 출석 제정위원이 110명이란 건 서울시가 확인한 바다. 그럼에도 “180인”에 감사드린다고 보낸 저의는 뭐였을까. 서울시는 “절반 이상이 퇴장”한 가운데 일부가 1안을 선택했다는 MBC의 왜곡보도를 적극적으로 창출했거나, 적어도 방치했다.
세련되지 못한 정치력을 보여준 박원순
하지만 이 건을 ‘원칙 vs 실리’의 문제로 정리하면 오히려 ‘정치인 박원순’에 대한 우려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현재 야권의 상당수 지지자들에게 ‘이 엄혹한 시기를 끝내줄 2017년 대선의 주인공’으로 각인되어 있다. 역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의 주변에선 무능한 새정치민주연합이 미처 품지 못한 전략가 내지 모사꾼들이 모여드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 서울시청의 일처리 방식을 보면 도대체 그 ‘전략가’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며 박원순 서울시장을 그렇게 높게 평가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 일련의 아수라장을 보면 여러 가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첫째, 도대체 왜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청은 서울시민을 포함한 제정위원회라는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이 제안은 시민사회에서 기존 사례에 비해 좀 더 의미 있는 인권헌장 제정을 위해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제안을 받아 들이려면 제정위원회의 결정을 감수한다는 결단이 있어야 했다. 만약 인권헌장에서 성소수자 문제로 문제가 발생한다 판단했을 경우 전문가들 몇이 헌장을 작성하게 하고 공청회나 하면서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판단하면 될 일이었다. 왜 전권을 줘야 할 결단을 하고 이제 와서 전권을 회수하는 판단을 내린 것일까? 시민사회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리란 생각으로 갈등의 비용을 아웃소싱할 생각이었을까?
혹시 시장과 시청은 무규칙하게 뽑힌 다수 시민위원이 포함되었다 하여 그들이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된 혐오의 논리를 넘어설 수 없다고 봤을지 모른다. 그런 계산 하에(얄팍하다 부를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합리적이다) 소수 활동가들이 좌절하는 상황을 느긋하게 관측하려 했을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만일 제정위원회에게 사실상 인권헌장 제정을 맡긴 이들이, 그 제정위원회가 소속 시민위원들의 상당수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면, 비록 그들이 무엇을 대의하는지를 여론조사에 단순대답하는 시민들이 인정하지 못할지라도, 존중해야만 하지 않았을까? 저 박원순을 존중하는 이들이 ‘서울시장 박원순’에게 그 정도도 기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치인 박원순’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 지난 11월 30일 저녁 서울시청 주변의 풍경 ⓒ미디어스
둘째, 도대체 왜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청은 어차피 제정위원회가 만들어낼 인권헌장을 철회할 바에 혐오세력의 범죄에 적극 대처하지 않았을까.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청이 이 정도 반대도 뚫고 나가지 못할 거라면 그들은 제정위원회의 결정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제정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혐오범죄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청이 ‘발을 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가령 그 순간에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갈등이 발생하고 상처를 받는 이들이 많아 (이렇게 말했다면 듣는 사람에 따라 ‘상처를 받는 이들’의 주체를 달리 설정했을 것이다) 보류하고 폭력사태를 발생시킨 이들에 대해선 처벌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굉장히 정치적으로 얄밉게, 하지만 밉보이지 않고 이 아수라장을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박 시장이 그토록 바쁜데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고민하겠는가. 하지만 자신이 모시는 이의 특성도 파악하지 못하고 출구전략도 짜지 못하는 참모들을 과연 참모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아는 중앙정치란 대체 뭘까?
셋째, 왜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청은 자신들에게 어깃장을 놓는 이들의 힘을 과대평가했을까?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미스터리라 생각했다. 마지막 회의 날 부흥회를 벌이는 그들은 무력했다. 자신들을 막는 경찰을 사탄으로 규정하며 너희들 때문에 나라가 망할 거라고 울부짖는 그들은 패배를 예감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이 미쳐간다는 예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 기준에서 세상이 미쳐나가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었다. 동성애를 성적 지향이 아니라 성적 도착으로 보고, 동성애와 에이즈와 죽음을 동일시하는 그런 논변에 다수 개신교인이 설복되리라 여겼던 걸까? 그들을 비판하는 모든 기사에 허황된 통계로 거짓 덧글을 다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이들의 논리구조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은 어쩌면 절호의 기회가 아니었을까?
몇 번의 취재과정에서, 기자가 느꼈던 건 왜 서울시가 그들이 행사할 수 있는 행정권력을 충분히 행사하여 성소수자 운동가들을 보호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 행위가 정당화될 이유는 서울시가 이참에 혐오세력을 여론의 차원에서 분리하고 이 헌장의 선포를 공고하게 한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 정치적인 노림수는 비판될 수도 있지만 어떤 차원에선 필요도 한 것들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서울시가 보여준 태도는 무엇이었을까. 성소수자 활동가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시민들을 가장 최악의 아수라장을 막는 바리케이트로 활용하고, 그들은 그 바리케이트 너머에서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옹호하는 가장 최악의 정치행위를 벌이고야 말았다. 앞서 얘기했듯 그럴 바에야 몰상식에 대한 비상한(애초에 예정되었던 인권헌장 제정안에 대한 계획을 물리는) 대처를 호소하고 그들에 대해 강경한 대처를 선언하면서 인권헌장도 미루는 게 차라리 가능한 방법이었다.
넷째, 왜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청은 이 문제를 ‘참여 시정’의 고유한 딜레마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이 문제는 성소수자란 쟁점에서만 발생하는 지극히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시민 참여의 길을 열어두었을 때 극우파나 혐오세력이 적극적으로 들어와 그들이 동성애자만큼이나 혐오하고 증오하는 박원순과 그의 서울시정을 망치려는 적극적인 행위를 펼치려는 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 수백명의 집단행동만 모으면 박원순의 정책 따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시그널 말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박원순은 이를 극복하려면 성소수자 문제를 특별히 더 차별해야 할 난감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다섯째, ‘SNS의 총아’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왜 아직까지도 아무런 해명이 없는가? 박원순 시장의 이미지는 진중함이 아니라 소통이었다. 애초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도자료로만 답한 이라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이 상황에서 이 문제에 관해 긴 침묵을 지키는 건 할 말이 없음을 인정하거나 인권운동 진영에 대한 의도적 무시라고 여겨질 가능성이 너무나 명백하지 않은가?
박원순 시장은 오히려 1일 한국장로교총연합회와 가진 간담회에서 “서울시민인권헌장 폐기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란과 갈등이 야기되어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라고 말했다고 2일 <기독신문>에서 보도되었다. <기독신문>은 “특히 인권헌장은 시민과 사회적 약속이자 협약으로서 표결로서 처리할 사안이 결코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라고 전했다. “동성애와 관련 박 시장은 성전환자에 대한 보편적인 차별은 금지되어야 한다며,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고 거듭 밝혔다”고 한다.
물론 ‘보편적인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한 박원순 시장은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게 아니라 동성결혼 허용에 반대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적어도 그 정도 선은 지켰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서울시의 인권헌장 채택거부에 실망한 인권운동가와 시민들의 질문이 쇄도하는 가운데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무슨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인가?
굳이 정치적 셈법으로 봐도 문제였다
이것을 지극히 정치적인 행보라고 평하는 이가 있다면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의 정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시장은 새누리당 사람이 아니다. 그가 견인해야 할 것은 다종다양한 관심과 세계관과 이해관계를 지니고 언제든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 있는 집단의 다발이다.
한국 사회의 제1야당 정치인은 이 집단의 다발들 대부분의 미움을 사지 않고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51’(지금부터 제시하는 숫자는 모두 한국 사회의 여론지형을 묘사하는 백분율 자연빈도값이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절대로 새누리당에게 정권을 주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제1야당 지지층의 코어라고 불릴 만한 지지층도 있다. 하지만 많이 쳐봐야 ‘35’ 정도다. 그 ‘35’ 중에서도 이 정치세력에 대한 충성을 지닌 이들은 ‘15’미만, 나머지 ‘20’은 무엇보다 새누리당이 가장 싫은 이들이다. 지금 이 순간 박원순 시장이 그래도 괜찮다고 옹호하는 이들도 많이 쳐봐야 ‘35’다.
하지만 그 ‘35’는 자기 이념이나 취향으로 정치인을 선택하지 않는다. 집권에 필요한 나머지 ‘16’을 끌어올 수 있을 것 같은 정치인을 지지한다. ‘친노’와 ‘반노’로 분절된 지금의 야권 지형도에서, ‘친노’는 문재인과 같은 후보로 ‘51’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반노’는 절대 안된다고 말한다. 그 ‘반노’가 지금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박원순 시장인 셈이다.
박원순 시장의 행보는 오지 않을 지지층에 구애하며 그 ‘16’을 붕괴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주변엔 ‘개신교 800만’을 운운하며 그의 정치전술을 옹호하거나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장로회를 구별할 수 있는지,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보호 조항조차 용납할 수 없는 건 전자일 뿐 후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부터 물어보라. 예장 일각의 혐오세력과 인권운동을 하는 개신교 목사들 사이, 중도적이고 합리적 입장을 취하는 그룹과 대화를 하면서 공감대를 넓혀가는 가운데 인권헌장을 천천히 제정하자고 말한다면 또 모르겠다. 가장 극단적인 세력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리며 무슨 정치를 할 것인가. 왜 혐오세력을 그들의 실력에 맞는 소수파로 대우하지 않고 뭉뚱그려 더 거대한 집단으로 만드는가.
정권교체 바라는 지지자들부터 걱정한다
‘인생사 운칠기삼’이란 재미있는 말을 대입해 보자면 이렇다. 한국 사회에서 야권 정치인에게 ‘운칠’의 영역은 다종다양한 관심사와 세계관과 이해관계를 지닌 이 집단의 다발들의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이다. 큰 집단의 버튼도 작은 집단의 버튼도 누르지 말아야 한다. 사실 작은 버튼을 무심하게 눌러대는 사람들은 큰 버튼도 잘 누른다. 박원순 시장도 알겠지만, 지금 그를 대선후보로 가장 열렬히 원하는 ‘반노’ 성향 유권자들은 반년 전만 해도 박 시장이 아닌 안철수를 열렬히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안철수가 7.30 재보선에서 그 중요성도 모르는 채로 순천곡성 공천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버튼’이 눌려 그를 하루아침에 욕하면서 버렸다. 오늘 박 시장이 인권헌장을 헌신짝처럼 내팽겨쳐도 괜찮다는 이들도 어느 순간에 그리 될 수도 있다. ‘운’은 다종다양한 이들의 버튼을 누르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태도에서 온다. 지금 박원순 시장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
▲ 지난 11월 27일 인권재단 사람 사무실 앞에서 혐오발언자들을 막아선 활동가들과 시민들 ⓒ미디어스
성소수자 활동가와 인권운동가를 ‘버튼’을 조심할 필요도 없는 미미한 소수자라고 봤다면 박원순 시장은 잘못 판단한 것이다. 활동가는 적을지라도 당사자는 뚜렷한 문제다. 어떤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 인권운동 자체를 거추장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팍팍한 한국 사회에서 조용히 숨어 살고 싶은데 그들이 자꾸 시끄럽게 존재증명을 하는 게 귀찮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라고 인권헌장을 싫어할까. 인권헌장을 만들려다가 내팽개치는 박원순 시장에게 관심이 없을까. 그들 입장에서 보면 순진한 활동가들 꿰어다가 부려먹고 버린 사람이 된다. 특정 정책이나 이념에 대한 지지와는 차원이 다른 자기 존재의 문제다. 피켓들고 막말하고 때려부수는 사람만 셈하고 드러나지 않은 이라고 계산에 넣지 않으면 ‘정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박원순 시장은 지금 생각보다 큰 ‘버튼’을 눌렀다.
한편 ‘기삼’의 영역은 개인으로선 대적하지 못하는 어떤 거대한 권력에 대항하는 이라는 판타지를 심어주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행보는 애초부터 이 영역에서 부족했는데, 이번 행보에선 더더욱 부족함이 드러났다. 성소수자 문제에 무지한 야권 지지자들도 많지만, 정권교체가 지상명제이면서 인권문제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지지자들도 많다. 그들의 입장에선 박원순 시장의 태도가 인권문제와 별개로 황당해 보인다. 부조리와 ‘맞짱’을 뜨는 모습을 보여줘서 사람들의 열광을 사야할 야권의 거물 정치인이 경제적 이해관계도 뚜렷하지 않은 이 정도 문제에서 저 정도의 저항과 잡음을 듣고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다 물러선다면 과연 앞으로는 정치를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대를 받는 것은 그가 시정에서 탁월함을 발휘한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자신들의 삶의 편리가 증대했다고 느낀다.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도 시민의 입장에서 편리를 도모하는 세밀한 행정이 그의 강점이다. 그가 ‘소통’과 ‘참여’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은 한편으로는 노동문제 등에서는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의 노동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기 때문일까. 그런 부분도 있겠으나, 반드시 그래서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문제는 대부분 특정 업계 기업이나 사용자 등 이해당사자가 뚜렷하게 존재하는 문제들이다. 박 시장이 노동문제에 취약하다면, 그것은 자기 이해관계를 지키려고 눈에 불을 켜고 들이대는 집단과 싸우고 싶어 하지 않는 어떤 성격의 문제일 수도 있다.
물론 박원순 시장이 활동가도 아닌데 노상 싸울 수는 없다. 그러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야권정치인이 이 한국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51’을 만들어내기 위해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저 사람은 시민들이 필요한 부분에서 싸울 수 있고, 이길 수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개선될 수 있을 거라는 판타지를 심어주는 것이다. 박 시장은 이번에 그 영역에서 함량미달일 수 있다는 불안감을 지지층에게 심어주었다.
‘35+16=51’이라는 산수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상황은 박원순 시장이 그를 지지했다가 실망한 일군의 이들에게 성의를 차린 해명을 해야 할 때다. 시간도 많지 않다. 인권헌장 발표가 예정되었던 세계인권선언의 날이라는 10일을 넘어 버리면, 성의를 차리든 말든 사과도 필요없다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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