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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피해자 코스프레’, 그 대책 없는 ‘나 중심성’[기자수첩]‘조선일보’조차 지겨워 하기 시작한 대통령
한윤형 기자 | 승인 2014.12.04 17:06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다. 색출하여 일벌백계해야 한다“

지난 11월 28일 <세계일보> 보도로부터 시작된 ‘정윤회 문건’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간 자기 자신이 비판의 대상이 되야 할 때 다른 이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소위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한다는 평을 들었다. 후보 때도 그랬고, 저 유명한 윤창중 사건 때도 "전문성을 보고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인물이 한번 맡으면 어떻겠느냐 해서 그런대로 절차를 밟았는데도 엉뚱한 결과가 나오고, 그런 때는 참 저 자신도 굉장히 실망스럽고 '그런 인물이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2013년 5월)라고 발언한 바 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1월 시정연설에선 “대선 이후 1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국회에서 대립과 갈등이 진행 중인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본인의 뜻을 충실히 반영하는 여당이 양보를 하지 않아 생긴 문제에 대해 저렇게 논평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보름만에 버티다 버티다 국무회의에서 사과를 한 2014년 4월엔 <동아일보>조차 사설에서 “행정부의 수반도, 국정의 책임자도 아닌 듯한 모습이어서 일각에선 ‘유체 이탈’ 화법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4월 30일)라고 썼다. 그나마 이때는 심상찮은 분위기에 대통령이 민심 이반을 우려하여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라고 사과한 상황이었다.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이후 ‘자기 책임’을 언급한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대통령은 안대희와 문창극, 두 명의 총리후보가 연거푸 사퇴한 2014년 6월엔 “인사청문회 못 가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안대희야 자존심에 상처가 나서 자진사퇴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문창극은 ‘멘탈갑’이란 조롱을 견디며 버티려고 했는데 중도파 지지율이 빠질것을 우려한 청와대의 만류로 사퇴시킨 정황이 명백했는데도 그렇게 말했다. 인사문제에 대한 책임 인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은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여 그와는 다르게 세월호 유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해주셔서 고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미 훨씬 전 시점부터 세월호 유족 가족대책위를 ‘없는 사람’ 취급했던 대통령이 한 말이었다. 
 
   
▲ 박근혜 대통령이 3일 오전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4 대한민국 지역희망박람회'를 방문, 문화체육관광부 전시관에서 생맥주 모양의 향초에 대해 설명듣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 9월에 대통령은 “국민을 대신해 선택받은 국회와 정치권에서는 제 기능을 찾고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국회가 정지한 건 세월호 특별법 때문이었고,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대통령의 고집 때문이었는데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에 간신히 적응했다 하더라도, 그 어떤 발언도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다. 색출하여 일벌백계해야 한다“만큼 황당하지는 않다. 청와대 문건을 유출하는 것은 청와대 소속이었던 이만이 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문제, 행정부의 문제, 국회의 문제는 자신과 떨어뜨려 생각하더라도 청와대는 자신이 사는 곳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 청와대 문건이 유출되어 이 소란이 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대통령이 해야 할 말은 엄포가 아니라 사과였고 해야 할 건 국무회의가 아니라 기자회견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와 같은 경악스러운 사고구조는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용어에 빗댄다면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표현할 수 있다. 언제 어느 때나 자신은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굳건한 믿음이다. 대통령이 그와 같은 사고구조를 가지게 된 데엔 개인사가 크게 작용할는지도 모른다. 유권자들은 대통령이 독재자의 딸로 ‘영애’ 대접을 받고 살다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사라졌던 경험, 아버지에게 아부하던 자들이 아버지를 욕하는 ‘배신’의 풍경은 내면에 깊이 각인됐을 거라 추정한다. “박근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해자”라는 그 인식은 대통령 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 특정 세대의 수백만명의 유권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무슨 일이 있어도 급락하지 않는 이 정권 지지율의 비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의 옆에 있는 이들은 불행하고 피곤하다. 이런 이들은 대체로 자신이 접하는 모든 이들에게 막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나 중심적’으로 대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원하는 대우를 받지 못할 경우 스스로 ‘피해자’인양 처신한다. 사적 개인이 이럴 경우 주변 사람들만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럴 경우엔 어떻게 되는가. 대통령은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도 그 도를 넘고 있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면서 국가의 위상 추락과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며 “가장 모범이 돼야 할 정치권의 이런 발언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혐오감을 주고 국회 위상 추락과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말해, 모든 사람이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지 않는 현실은 너무나도 부당하다고 질타한 것이다. 이 질타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이 발언 이틀 뒤 검찰은 '사이버상 허위 사실 유포 대응을 위한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전담 수사팀 운용,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 선제적 대응 등의 방침을 밝혔다. 이 회의에 다음 카카오톡 관계자가 참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망명’이라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대통령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로선 너무나 피곤한 세상이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대통령을 사랑할 자신도 없는데, 그 이유로 괴롭힘을 당할 날이 3년이나 남았다. 반대파들의 환상 속에선 대통령직을 재태크 수단으로 여겼단 비아냥을 들었던 전임 대통령이 차라리 그리울 지경이다. 대통령직을 어떤 수단도 아닌 스토킹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우리도 이런데 ‘십상시’로 일컬어지는 그 청와대 직원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며칠 간 언론보도를 보며 약간의 위안을 찾긴 했다. 이젠 <조선일보>마저 대통령을 지겨워 하는 것 같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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