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로 따졌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리들리 스콧이 이번에는 출애굽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다는 서사 구조는 율 브린너의 <십계>와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를 통해 익히 보아왔던 터. 그렇다면 리들리 스콧의 출애굽 이야기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맨 먼저 관찰되는 건 ‘결정론’이다. 히타이트와의 전투에 나가기 전에 제사장은 람세스와 모세의 아버지 세티에게 이렇게 예언한다. "한 남자가 전투에서 지도자의 목숨을 구하며 그가 훗날 지도자가 된다" 모세는 이 예언을 시큰둥하게 받아들이지만 세티는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이고, 훗날 이집트에서 노예로 사는 히브리인을 이끄는 지도자는 다름 아닌 모세가 된다. 지도자로 예정되어 있었던 모세는 운명을 믿지 않지만 결국에는 동족을 이끄는 지도자로 승격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신인동형론’이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목격하는 건 <십계>에서 볼 수 있는 신의 ‘음성’이 아니라 신의 ‘모습’이다. 구약성경에서 신의 모습을 보았다는 사례는 모세가 여호와의 등을 보았다는 기록밖에는 전해진 바가 없다. 성경에서 신은 인간에게 모습을 보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지만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에서는 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근엄한 남자의 모습이 아니다. 자그마한 어린 남자아이의 모습으로 비치는 신의 모습은 모세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신이 아니다. 신이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 만일 신이 모세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신이었다면, 아마도 모세는 <십계>의 찰톤 헤스톤처럼 람세스에게 신의 명령을 전달하는 선지자의 모습처럼 그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모세가 신이 내리는 열 가지 재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때로는 신과 변론하기도 한다.

세 번째는 ‘카인 콤플렉스’다. 모세의 상대역인 람세스는 <이집트 왕자>처럼 모세에게 인간적인 형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아버지 세티가 숨을 거둔 다음에 왕위를 물려받자 동생을 정치적으로 살해하는, 유배의 방식으로 모세를 제거하려 드는 ‘카인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동생을 아끼는 <이집트 왕자> 속 인간적인 람세스가 아니라 왕위를 보전하기 위해 정치적인 책략을 아끼지 않는 태종과 같은 인물로 그려진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볼거리는 <십계>와 <이집트 왕자>에 비해 압승이다. <십계>가 제작될 당시에는 CG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라 방대한 엑스트라와 세트는 화려했지만 열 가지 재앙을 실감나게 묘사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십계의 한계를 설욕하려는 듯 작정하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 시각적인 압도감을 제공한다.

다만 이 영화가 묘사하는 연출이 100% 성경에 근거한 게 아니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한 예로 모세의 일생을 살펴보면 ‘40’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40년 동안 이집트 왕궁에서 생활하다가 40년 동안 양을 치고, 40년 동안 히브리인을 이끄는 지도자의 생을 살았다. 영화는 40년 동안 모세가 양을 치는 세월을 9년으로 단축하는 식으로 성경과는 다른 해석을 입힌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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