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합산 규제법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2일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선 새누리당 권은희, 서상기 의원 등은 "합산 규제는 'KT 규제법'"이란 논리를 펴며 반대에 주력했다. 논의는 2월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KT는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KT는 ‘유료방송 가입가구 1/3’ 기준을 아예 무력화 시키기 위해 총공세에 나서는 모습이다.

KT동부산지사는 최근 부산 거제동에 위치한 일부 아파트에 월 6600원에 187개 HD채널을 제공하는 제안서를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사장 명의로 발송된 공문에는 KT가 자사부담으로 아파트 단지 내 olleh TV 스카이라이프 디지털 위성방송 공동 수신기를 설치하고 개별계약 시 △디지털 TV 월 6600원 제공(골프·낚시·바둑 등 187개 HD채널), △TV 1대 신청 시 추가TV 디지털 무료 제공(동일 채널 제공) 등의 가입조건이 적시돼 있다.

▲ KT동부산지사에서 지사명 이름으로 부산 거제동에 위치한 일부 아파트에 월 6600원에 187개 HD채널을 제공하는 제안서를 발송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덤핑' 판매 제안서이다. 187개 HD채널을 66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도 그렇지만 신청만하면 거실TV 뿐 아니라, 각 방의 세컨드 TV 역시 동일 HD채널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은 다른 업체에선 흉내내기도 힘든 제안이다. 위성방송이 결합된 OTS 판매에 있어 KT는 최소 12000원 정도의 요금을 책정해, 스카이라이프와 '5:5'로 요금을 배분해왔다. 6600원 요금이면, 반값이 훌쩍 넘는 할인폭이다. KT의 공문은 부산 내 총 1천 가구 이상의 아파트 입주자 대표들에게 발송된 것으로 보인다.

KT는 왜 ‘파격’적인 가입자 확보에 나섰나

KT의 이런 영업은 필연적으로 유료방송 시장의 과열과 황폐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 유료방송업계 전체가 대기업 중심 과점 현상이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KT의 이런 ‘저가경쟁’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2014년 6월 기준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 수는 2881만으로 △종합유선방송(SO) 가입자는 1483만, △IPTV 974만, △위성방송 424만 이다. 이 가운데, 종합유선방송 5대 MSO(CJ헬로비전과 티브로드, 씨앤앰, 현대HCN, 씨앰비)의 점유율은 86.9%에 달한다. IPTV의 경우, 거대 통신3사(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가 각각 536만, 242만, 196만으로 나눠먹기 하고 있는 상황이다.

▲ (자료=미래창조과학부)

관심을 모으고 있는 KT의 가입자는 IPTV 가입자는 536만, 위성방송 KT스카이라이프 가입자 424만을 합해 960만명에 이른다. 이미,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2881만)의 30%를 넘어선 수치다. 물론, 중복가입을 제외해야겠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KT가 유료방송 규제 기준 1/3에 거의 육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KT가 33.3% 기준 무력화에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 다른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래서 국회의 유료방송 합산 규제법 처리 여부가 중요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번에도 KT의 독주를 규제할 법안 처리를 못했다. 처리가 무산된 곳은 미방위 산하 법안심사소위인데 해당 개정안에 가장 강하게 반대한 이는 공교롭게도 KT 출신의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정상 수석전문위원은 ‘유료방송 합산 규제법’ 처리 무산과 관련해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과 서상기 의원이 노골적으로 반대를 했다”며 “전병헌 의원과 우상호, 최민희, 최원식 의원은 표결을 하자고 주장했으나 논란을 벌이다 본회의 시간(오후5시)이 되어서 심사가 중단됐다”고 밝혔다. 여야는 해당 법안에 대해 차후 열리는 법안심사소위에서 첫 번째 안건으로 심사를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문제는 기간이다. 안정상 수석전문위원은 “차기 회의가 언제 열릴 지 불투명하다”며 “올해 안에는 쉽지 않고 내년 2월 임시국회로 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KT, 규제 없이 영업할 기간 받았다

KT가 아무런 규제 없이 영업할 수 있는 기간이 최소 내년 2월 까지로 늘어난 셈이다. KT가 6600원에 187개 HD채널 제공하는 저가상품을 대단지 아파트 중심으로 집중 마케팅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 2월까지면 실제 KT의 기대대로 33.3%의 기준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여기에 KT는 3일 보도자료를 통해 2500여 편의 영화를 무료로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KT가 ‘덤핑 영업’과 ‘무료 콘텐츠’를 통해 가입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시간을 벌었으니, 가입자를 확보해 ‘유료방송 가입가구 1/3’ 기준을 넘겨 규제 자체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계산이다.

▲ 올레tv가 오는31일까지 작년에 비해 60% 증가한 영화 2,500여편을 무료로 서비스한다(사진=KT)

KT스카이라이프 김형준 부사장은 지난달 28일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포함한 통합방송법 공청회에서 ‘유료방송 가입가구 1/3’ 사전규제 가능성 물음에 “그렇게 보지 않는다”이라고 말했다. KT가 사실상 유료방송 1/3 규제에 묶이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현실이 되고 있다. 실제, KT가 1/3 가입을 넘은 상황에서 역규제는 쉽지 않다. 또, 역규제하는 법안을 국회에서 만드는 것 또한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회 내에서도 ‘유료방송 합산 규제법’이 무산된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해당 법은 ‘동일서비스 동일규제’ 원칙에 따른 것으로 2013년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현 미방위 위원장)과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들(<방송법 개정안>, <IPTV법 개정안>로 여야 간의 이견이 비교적 적다. 정부 역시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방송법시행령>을 개정해 ‘유료방송 가입가구의 1/3’라는 기준을 세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된다. 유료방송 시장이 동일한 서비스라면 KT와 케이블방송을 동일하게 규제해야한다는 점에 KT를 제외한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데 끝내 법안처리는 안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기간에 KT는 총공세로 가입자를 늘려 법안 자체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유료방송 합산 규제법은 비대칭 규제를 손보는 것이고 여야 국회의원이 같은 법을 낸 것이다. 그런데 KT는 자사 출신 권은희 의원을 앞세워 반대만 했다”고 직접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사 출신 국회의원까지 갖고 있는 KT가 입법 과정을 주무르고 있단 비판이다. 국회는 자사 출신 국회의원이 막고, 시장은 덤핑 공세로 교란하는 KT를 언제 '제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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