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하는 웹 용어로 말한다면 “아, 쫌!!”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규직 과보호’론을 펼치고 기획재정부가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입에 담은 상황 말이다.

사실 정규직의 정리해고 요건 완화는 굳이 정부가 나설 필요도 없다. 최근의 ‘쌍용자동차 판결’을 비롯한 몇몇 판결을 보면, 이미 대법원이 알아서 판례를 ‘정리해고 요건 완화’ 쪽으로 바꾸어내고 있다. ‘해고하기 어려운 정규직’이란 것은 이제 그저 보수정부와 대기업의 수사 속에서나 존재할 따름이다.
그렇기에 한국 노총 출신인 새누리당의 김성태 의원마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에 우려를 표한다. 김성태 의원은 28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방안을 찾자는 차원에서 엉뚱하게 화살을 정규직으로 돌려 노동시장 전체를 하향평준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보수격차가 크다면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를 높여 문제를 해결해야지, 오히려 정규직에 대한 보호를 낮추겠다는 발상은 자칫 실효성이 없는 사회적 갈등만 초래할 위험성이 상당히 높다”고 비판했다.
▲ 28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또 김성태 의원은 “최경환 부총리나 정부 관계자들이 정규직에 대한 해고를 쉽게 만들고 고용유연성을 높여야 비정규직의 처우가 향상된다는 것은 넌센스”라며 “비정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의 계약직 근로자로 2년을 채우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법이 되려 기업 입장에서는 2년이 되면 근로자를 잘라야 된다는 법으로 통용돼 버렸다. 기업들의 노력과 배려는 전혀 가져가지 않은 채 갑자기 ‘정규직에 대한 해고를 쉽게 만들어서 고용유연성이 돼야 지금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가 원하는 것은 ‘수사’가 아니라 ‘실질’일 것이기에, 갑자기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해고 조건이라는 금단의 영역을 건드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정규직 노동운동에 대한 비난과는 별개로, 현재 정부와 대기업과 대공장 정규직 노조는 암묵적 협력관계에 있다. 더 이상의 정규직을 충원하지 않는 대신 그들의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방식의 협약이다. 이처럼 눈에 뻔히 보이는 공모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조합에게 삿대질하는 평론가들의 자세야 사회문제 해결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집착에 다름 아닐 것이다.
어쨌든 이 상태로 이십 여년 정도 지나면 대부분의 산업 영역에서 ‘정규직 노동자’는 멸종할 것이다. 현장에선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나, 대기업의 연구소에 다니는 이들은 “사실 이젠 자동차산업도 기계화가 많이 진행되어서 숙련노동자가 거의 필요가 없다”고 증언한다. 예외가 있다면 매번 개별 계약으로 ‘다른 배’를 만들어 내야 하는 조선업 정도라고 한다. 운동세력에서야 안 그래도 10%에 불과한 노조조직률이 1~2%로 떨어질 수 있는 이십년 후의 디스토피아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만, 정부는 사실 무리한 일을 벌일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 28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
그렇기에 정부의 노림수는 다른 곳에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로 기획재정부는 ‘정리해고 요건 완화’ 건은 빠르게 번복하고 임금체제 개편 얘기를 꺼냈다. 고령화-저성장 시대에 맞춰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임금피크제를 확산하고 호봉제 연봉 대신 직무급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공공기관 개혁과 관련해 공기업 등에서 먼저 추진하고,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대기업들에게도 적용하겠다는 취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정책 취지에 합리성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정년을 늘려야 할 필요성이 있고, 그 경우 지금처럼 근속연차에 따라 계속해서 임금이 올라가기를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일단 특정 나이를 지나면 오히려 임금이 줄어들게 되는 피크제를 실시하면서, 호봉제가 아닌 직무급 전환을 시도하는 것도 필요하기는 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정규직 과보호’를 비난하면서 나온 비정규직 대책이 될 지는 의문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목적이 격차해소가 아니라 ‘부자감세’로 축난 재정을 확충하는 것이라면, 임금제도 개편의 목적 역시 격차해소가 아니라 새누리당의 주요 지지층인 중장년층을 배려하면서 기업의 출혈을 최소화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28일자 한겨레 9면 기사
결국 이 정부는 다양한 이해관계 집단의 충돌을 조장한 후 원하는 정책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지지율 관리’의 차원에서 “유능하다”라고 평할 수는 있겠으나 사회개혁은커녕 문제해결과도 큰 관련이 없는 일이다.
진보파를 자임하는 이들 중에서도 사실상 정규직 노동을 비난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와 비슷한 인지를 보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언제나 정규직의 과도한 임금 때문에 비정규직이 착취를 당하고 있으므로 격차해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주장을 하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높은 비율의 최저임금 인상안이나 호봉제 약화 대신 초임 상승 정도의 제안은 들고 나와야 한다. 정규직 노조는 자신들의 권리를 내려놓을지 말지만 결정할 수 있을 뿐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물론 정규직 노조에 대해 그들의 몫을 떼어내서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라고 요구할 수는 있겠으나, 그런 요구를 할 거면 정부와 사측에 대해서도 비슷한 제안을 들고 나와 정규직 노조를 설득하라고 말해야 한다.
▲ 28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기업의 이윤추구는 신성한 원칙으로 받아들이면서 정규직 노조는 이기적이라 욕하고, 그 이기성을 욕하면서도 이타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 인구구성상 청년층이 적고 비정규직은 애초에 투표하기가 힘들다는 얄팍한 정치적 판단이 있겠지만, 그와 같은 안이한 생각에서 사회문제를 방치해서는 장기적으로 보수의 지지층을 좀먹을 뿐이다.
제1야당이 하도 무능하니 일본식 자민당의 장기 집권체제, ‘1.5당 체제’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안정적으로 작동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제1야당이 무능하고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이 무력한 시대, 보수정당은 꽃놀이패를 들었다 믿을 수 있지만 사회가 황폐화되면 사람들의 욕망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혼돈의 카오스’의 세상이 올 뿐이다. 아니, 지금도 이미 반은 왔다.
그런 실정에서 자기 잇속만 교묘하게 차리는 보수정당의 미래는 담보받을 수 있을까. 지금은 정규직 노조라도 욕할 수 있지만 그들이 멸종당한 이후의 세계, 공무원 연금도 사라진 세계에서 1대99의 갈등구도가 나타나게 된다면 1은 어떤 식으로 자신을 방어할 것인가. 새누리당은 몇 백년 후 ‘한민족 멸종 시나리오’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으니 이십년 후 정도는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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