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7일 CGV 압구정 1관에서 열린 서울독립영화제 2014의 개막식 행사에서 2001년 한국독립단편영화제(서울독립영화제의 전신) 개막식 때 공연을 하였던 독립영화인 밴드 '깜장고무신'이 13년 만에 재결성된 ‘깜장고무신 2’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배우 권해효, 서영주, <송환>의 김동원 감독 등이 참여하였다.

'독립본색'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서울독립영화제 2014(이하 서독제)가 지난 27일 본격적인 행사의 막을 올렸다. 올해로써 서울독립영화제는 40주년을 맞이한다. 대종상영화제 등 영화 상영 대신 시상에 주력하는 영화제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인 셈이다. 물론 처음부터 '독립영화제'의 이름을 걸고 시작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1975년 '한국청소년영화제'라는 이름의 관제 행사로 시작되었던 영화제는 청소년과 대학생의 작품을 공모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청소년들의 건전한 생활모습'을 담은 영화를 우대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영화제의 성격은 독립영화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유일하게 존재하던 비상업영화를 위한 행사라는 점에서 영화제는 점점 시간이 흐르며 자신만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후 1999년 이름을 '한국독립단편영화제'로 바꾸며 본격적으로 영화제의 성격을 재정립하였고, 2002년부터는 행사의 주체도 정부(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한국독립영화협회로 바뀌었다. 서독제의 역사는 한국 영화사에서 독립영화가 어떻게 자생적으로 정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서독제가 40주년을 맞이한 지금 한국 독립영화의 상황은 어떠한가. 외형적으로는 예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독립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라는 영역에서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기록을 남긴 <워낭소리>가 2009년 290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했고, 이후 크고 작은 흥행이 독립영화계에서 터져 나왔다. 2014년에는 <한공주>, <족구왕>이 좋은 흥행 기록을 거두면서 상영이 종료되었고 현재는 <다이빙 벨>이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흥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외형적인 성장이 모두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 상업영화에서도 종종 비판의 대상에 오르는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이미 독립영화계의 큰 손이 되었다. 확보할 수 있는 상영관의 수는 늘어났지만 한 개의 영화를 진득하게 상영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각종 지원, 펀딩 프로젝트가 늘어나며 예전보다 제작비, 배급비용을 구하는 것은 쉬워졌지만 동시에 독립영화계 일각에서는 지원을 받기 위한 경쟁이 독립영화의 정신을 어지럽히고 있다며 지적을 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독립영화를 쉽게 접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활동하던 비수도권의 몇몇 독립영화관이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이 중단되며 어려움에 처한 상황이다. 이미 거제아트시네마는 폐관했고, 대구의 동성아트홀도 내년 1월 중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선정에서 탈락된 영화관들이 지난 몇 년간 수익성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선정의 변을 밝혔다. 그리고 대신 지원 계획에 선정된 영화관들은 CGV 아트하우스와 같은 멀티플렉스 계열이었다. 이는 단적으로 독립영화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와 같이 희망과 절망이 섞여있는 와중에도 서울독립영화제는 4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앞날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펼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토크포럼'의 주제들이다. 12월 1일에는 '나의 서울독립영화제', 12월 2일에는 '독립영화 버라이어티 생존기'라는 주제로 서독제의 방향과 독립영화의 배급-유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서독제는 40주년을 맞이해 지금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국내외의 초기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특별전을 마련했다. 특히 이들 작품 대부분은 현재 보편화된 디지털 상영이 아니라 35mm 필름으로 상영되어 옛날 극장에 추억을 가진 이들이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보자>의 임순례, <세븐 데이즈>의 원신연, <오직 그대만>의 송일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의 윤성호, <한공주>의 이수진, <경주>의 장률 등이 만들었던 독립 단편이 상영되며 해외 감독 작품으로는 짐 자무시, 구스 반 산트, 마이클 무어, 스티븐 소더버그 등이 찾아온다. 특히 현재는 <베를린> 등으로 입지를 굳힌 류승완의 첫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필름으로 상영된다. 또한 서독제는 개막식에서 산수벤쳐스 등과 함께 독립영화 장편 제작을 지원하는 펀드를 계획해 독립영화인들이 작품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를 하였다. 이렇게 과거의 필름들에서 오늘의 모습을 찾고, 다시 오늘의 모습에서 내일의 길을 찾는 '모색'이 진정으로 독립영화의 '본색'을 찾는 길이 되길 바란다.

Review

개막작 <오늘영화> : 영화같은 삶, 삶과 같은 영화

서울독립영화제는 2010년부터 '트라이앵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옴니버스 형식의 독립영화를 기획, 제작하고 있으며 이들 작품들은 개막식을 통해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선을 보인다. <원 나잇 스탠드>로 시작해 작년까지 총 세 편의 작품이 제작되었다. 서독제 2014의 개막작 <오늘영화>는 그렇게 제작된 네 번째 영화이다. 작년 개막작인 <서울연애>가 가벼운 터치로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살고 조금은 버겁고 조금은 들뜬 연애를 하는 지를 보였다면, <오늘영화>는 '영화'라는 주제로 젊은 세대들의 사는 모습을 비춘다. 그러한 시도의 결과 <오늘영화>는 <서울연애>의 정신적인 후속으로 보이는 느낌을 가진다.

영화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에피소드인 윤성호 감독의 <백역사>는 영화관에 가는 커플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윤성호의 장편 데뷔작 <은하해방전선>부터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출출한 여자> 등이 그러하였듯 이 커플의 모습은 매체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스타일이 아니다. 남자는 돈이 없어 사장에게 가불을 받고서야 데이트를 할 수 있다. 또한 같이 영화를 볼 여인 역시 원래부터 사귀던 사람이 아니라 나이트클럽에 전화번호를 교환했던 상대이다. 여자는 남자를 전혀 기억에 두지 않았지만 어쨌든 둘은 기묘한 동행을 하게 되고 어느새 이 둘은 영화관에서 생각치도 않았던 감정에 빠져든다. 강경태의 <뇌물>은 작중 대사에서도 나오듯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같이 끝없이 영화 속에 영화를 삽입하는 구조로 이뤄져있다. 졸업 작품을 찍어야 하는 학생은 자신이 만든 작품을 끝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묻지만 그 조언은 영화를 만드는 것에 도움을 주는 대신 그들의 발가벗은 속내를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하지만 과연 그 장치가 정말로 그들의 속내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의도된 연출인지 영화는 일부러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영화에 대한 흥미를 높이게 만든다.

마지막 에피소드이자 이옥섭과 구교환의 공동 연출작인 <연애다큐>는 <뇌물>의 모호함을 더 끌어올린 작품이다. 두 연인은 제작 지원금을 받기 위해 EBS국제다큐영화제에 자신들의 연애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라고 지원 심사 자리에 나아가 발표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둘은 헤어진다. 하지만 자신들의 다큐멘터리가 정말로 지원을 받게 되자 이 둘은 돈인지 일말의 정인지 모를 이유로 다시 만나 연애 다큐멘터리를 찍어야만 한다. 물론 EBS국제다큐영화제와 연인의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영화는 그 허구를 더욱 모호하게 한다. 관객들이 진짜처럼 믿도록 만들기 위해 실제 다큐멘터리 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핸디캠과 고정 카메라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물론, 극중에 등장하는 가족과 가족 행사의 모습은 쉽게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을 가르기 어렵다. 이렇게 세 개의 작품들은 영화 속에 또 다른 영화를, 그리고 영화와 삶의 경계를 지우면서 삶과 영화를 자연스럽게 겹치게 만든다. 삶은 또 다른 영화이고, 영화의 모습이 또 다른 삶이 되는 것이다.

Preview

▲ 서동일의 <명령불복종 교사> 중 한 장면.

<두물머리> 등의 다큐를 만들었던 서동일 감독은 이번 서독제에 <명령불복종 교사>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를 들고 나왔다. 다큐멘터리는 2008년 많은 논란과 갈등을 낳았던 '일제고사'(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에 거부한 뒤 각종 압박과 고통에 시달렸던 교사들을 다루고 있다. 사실 이미 그들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2008년 이후로 잊힌 존재가 되었고, 다른 언론들도 그들의 삶과 이후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었다. 서동일이 <두물머리>를 통해 잘 다뤄지지 않는 4대강 공사로 쫓겨나게 될 남한강 근처 주민의 삶을 그렸듯 이번 신작 역시 주목에서 사라진 존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국가의 시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각종 압박에 시달려왔던 교사들의 삶을 어떻게 조망할 것인지가 주목된다.

한편 장편 파운드 푸티지 다큐멘터리 <미국의 바람과 불>을 만들었던 김경만 감독의 신작도 눈길을 끈다. 원래 단편 다큐를 주로 만들던 감독이었고 <미국의 바람과 불>을 만든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 단편 프로젝트를 발표했던 김경만은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통해 1945년부터 1965년까지 한국인들의 삶을 다룬다. 그는 영상을 직접 촬영하는 대신 과거에 나왔던 영상들을 재조합하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를 애용하는 감독이고, 그는 그러한 방식을 통해 <미국의 바람과 불>에서는 한국의 근현대사와 미국 간의 어떤 밀착된 관계, 그리고 직전 단편이었던 <삐 소리가 울리면>에서는 한국을 여전히 감싸고 있는 반공주의와 모순을 그려냈다. 공개된 시놉시스에는 한국전쟁, 전쟁 이후의 삶, 그리고 노동에 눈에 띈다. 과연 그는 어떤 자료를 통해 그 시절을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까. 이외에도 서울독립영화제 사상 애니메이션 장르로는 처음으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이은영 감독의 <똘>과 새로운선택 부문으로 초청된 허범욱 감독의 <창백한 얼굴들>은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독립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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