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하반기를 장식할 대작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다들 아시다시피 성경 중 '탈출기' 또는 '출애굽기'라고 하는 부분을 옮긴 것입니다. 찰톤 헤스톤과 율 브리너가 주연했고 세실 B 드밀이 연출했던 <십계>는 오래 전에 같은 내용을 다루면서 영화사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리들리 스콧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그 아성에 비교가 될 운명이기도 하겠지만, 그 전에 먼저 인종 논란에 휩싸여서 격론이 오가고 있습니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출연 배우는 죄다 백인입니다. 일단 고증에서 실패했거나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람세스를 연기한 조엘 에거톤과 달리 모세를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은 분장의 힘을 빌리지 않은 채 백인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미에서는 예전부터 리들리 스콧을 향한 비판이 일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중동계 배우를 썼더라면 투자를 이끌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조차도 철석같이 백인이라고 믿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일리는 있는 변명입니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의 이 발언은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주변에서 피어난 불씨에 기름을 끼얹었습니다. 버라이어티에 덧글을 남긴 한 독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리들리 스콧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는 옳은 것과 쉬운 것을 두고 틀린 선택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틀린 선택'이란 흥행 파워를 가진 백인 스타를 캐스팅했다는 걸 가리킵니다. 사실 이게 새삼스러운 건 아닙니다. 위에서 말한 <십계>도 그랬고 <노아>도 백인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최근에 개봉한 후자의 경우에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같은 논란이 크게 불거지지 않았습니다.

아마 리들리 스콧은 나름 억울할 수도 있겠는데, 그는 해당 인터뷰에서 "인종 문제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So the question doesn’t even come up)"이라고 말한 게 적지 않은 사람을 실망시킨 것 같습니다. 리들리 스콧 정도 되는 감독이 기본적인 것을 외면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혹자는 또 아주 간편하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라고 말하면서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정말 그럴까요?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백인 배우가 한국인을 연기하는 걸 봐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창작에 허용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감히 누구라도 함부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같은 논란을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는 건 위험합니다. 매번 이럴 때마다 만병통치제 내지는 면죄부처럼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아주 간단하고 편리하며 명료한 주장만을 내세우는 건 위험합니다. 적어도 진실이 무엇인지를 우리 모두로 하여금 의식은 하게끔 하고 영화로 받아들이게 해야지, 자칫 이것이 역사적 사실 내지는 논리적 진실로 정의될 여지에 대한 우려를 불필요한 것으로 무시해선 안 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할리우드는 언제까지나 이런 부분에 전혀 개의치 않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사고로 팽배할 것입니다.

영화(문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의식을 관장하고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의 경우는 인종 문제만으로 영화 전체를 폄하하거나 "영화니까 괜찮아"라고 무조건 두둔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영화로서 즐기되 그것의 사실 여부를 두고 오가는 논의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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