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은 27일 오전 10시 15분, YTN노조가 YTN을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해직기자 6명 중 3명(권석재, 우장균, 정유신)의 해고는 부당했으나 3명(노종면, 조승호, 현덕수)의 해고는 정당했다는 2심을 굳혔다. 이날은 해직 2244일째 되는 날이었다. (사진=미디어스)
이명박 정권이 문을 연 지 2달도 채 되지 않았던 2008년 4월, 보도전문채널 YTN에 낙하산 사장이 내려온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2007년 기독교TV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의 방송총괄본부장을 지냈고, 인수위에서 대변인실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구본홍 씨가 그 주인공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이하 YTN노조)는 “보도전문채널인 YTN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방송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며 거부 투쟁에 나섰다. 노조의 강한 반대로 사장 선임을 위한 주주총회 개최가 힘들게 되자, YTN은 일시와 장소를 바꾸어 일부만 참석한 가운데 도둑처럼 사장 선임안을 통과시켰다.

6개월이 지난 2008년 10월 6일, 당시 YTN노조의 ‘낙하산 구본홍 사장 반대 투쟁’을 이끌었던 노종면 전 위원장을 비롯해 권석재, 우장균, 정유신, 조승호, 현덕수 기자가 일시에 해고됐다. 그로부터 6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3년 넘도록 ‘검토할 자료가 많다’는 핑계로 선고를 미뤄왔던 대법원이, 해직기자 6명 가운데 3명(권석재, 우장균, 정유신)의 해고는 부당했고, 3명(노종면, 조승호, 현덕수)의 해고는 정당했다는 2심 판결을 확정한 27일은 그들이 ‘거리로 내쫓긴 지’ 꼭 2244일째 되는 날이었다.

“6명 전원복직 끝까지 함께 간다”
“전원복직 이뤄내어 공정방송 쟁취하자”
“해직사태 해결만이 YTN 살길이다”

27일 저녁 6시 3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신사옥 뉴스퀘어 1층 로비에서 YTN노조의 집회가 열렸다. 30초도 되지 않는 ‘초스피드 선고’ 직후의 법정과, 누구도 좀처럼 입을 떼기 어려웠던 대법원 출입문 앞에서처럼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해직기자들을 보고 “오늘 판결에 가지 못해 죄송하다”며 눈물을 보이는 이가 있었는가 하면, 길었던 아픈 시간들을 되짚는 과정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해직기자들은 함께 ‘기쁜 소식’을 기다리던 동료 선후배들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전하려고 애썼다. 해고의 부당성이 확인돼 복직할 수 있게 된 기자는 ‘다 같이 오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고, 해고가 정당했다는 판결을 받은 기자는 ‘판결은 아프지만 저는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다’며 위로했다. 마흔 다섯에 해고돼 쉰을 넘겨서야 그리운 회사로 돌아오게 된 맏형 기자는 조합원 뜻이라면 ‘뭐든지 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믿었던 사법부에 비수 꽂혀도…
“전혀 걱정하지 말라. 힘내라. 저도 힘내겠다” 격려

“제가 6년 전에 해직이 됐다가 6년여 만에… 마흔 다섯에 해직이 됐는데 오십 하나가 돼서 여기 서게 됐습니다”라고 말문을 연 우장균 기자는 “복직한 것에 대해 조합원 동지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이 자리에 서지 못한 것에 대해서 송구하다”고 말했다.

우장균 기자는 “(이번 판결로) 상황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것만 변했을 뿐이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복직 투쟁, 공정방송 투쟁을 계속해 나가겠다”며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제가 미력하나마… 조합원 여러분들이 명령만 내린다면 모든 걸 다 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선고 직후, 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치던 권석재 기자는 “눈물이 마른 줄 알았는데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었다”며 “여러분들한테 드리고 싶은 얘기는… ‘여섯 명이 다 같이 들어오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것이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 'YTN은 6인이 필요하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사진=미디어스)

오늘 판결에서 해고가 정당했다는 판결을 받은 조승호 기자는 “오늘 판결이 좀 아프다”면서도 앞장서서 YTN노조원들을 응원했다.

“사실 오늘 판결 좀 아픕니다. 6:0을 기대했었는데… (한숨) 그런 느낌 있죠. 적하고 싸우기 위해서 있는데 아군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등 뒤에 칼을 꽂아서 꽂히는 기분. 언론을 장악하려는 권력의 속성은 어느 정권이나 변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측면에서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기대한 적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회사 상층부에 있는 저 사람들 정말 진짜 기레기들의 원조인 저 사람들, 저 사람들에 대해서 기대 안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법부에 대해서는 사실 좀 저는 기대를 했거든요. ‘정의의 최후 보루’라고 하니까 기대를 했는데 오늘 그 권력과 회사 사람들과 싸우는 데 온 심혈을 기울이는 사이에 아군이라고 믿었던 사법부로부터 등에 비수를 꽂혔습니다. 그래서 참 아프고요.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해직기간에 어느 분이 저한테 그런 문자를 남겼습니다. 인생이란 게 검은돌과 흰돌이 똑같이 반반씩 들어있는 주머니라고. 지금 검은돌 뽑았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흰돌 뽑았다고 너무 좋아하지 마라. 오늘 판결이 검은돌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주머니 안에 흰돌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고 검은돌 하나 뽑았다고 너무 속상해 하지 마시고요. 나중에 흰 돌을 더 많이 뽑게 될 것 같습니다.

원래는 후배들이나 동료들이 저를 위로하는 게 되어야 하는데 참… 저는 말짱하고 제가 막 우는 후배들을 보고 위로하고 격려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기더라고요. 여러분들, 제가 여러분들한테 꿈과 희망과 격려를 드릴 테니까 너무 위축되지 마시고요. 행여라도 조승호 저 인간이 걱정스럽다 하는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전혀 걱정하지 마시고 힘내십시오. 저도 힘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해직사태를 해결할 의지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끌어 온 회사와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린 사법부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도 나왔다.

현덕수 기자는 “직장은 제2의 가정이라고 한다. 어떤 면에서는 가정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런 경우가 많은 만큼, 개인에게 있어서는 직장은 삶의 중심추 역할을 한다”며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은) 이런 직장이 옳지 못한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한 항의나 저항이었다. 우리의 행동은 어떤 이념이 아니라 스스로의 양심과 상식을 따른 것이었다고 저는 생각한다”고 전했다.

현덕수 기자는 “그런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한때는 형님 누나처럼 같이 지내던 회사 선배들이 해고의 굴레를 씌웠고 또 그런 원인을 제공했었던 정권은 나 몰라라 외면하고 어떤 때는 우리들을 좌파 언론인이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믿었던 법원은 정의와 진실을 쫓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쫓는 그런 결과를 내면서 스스로의 오명을 더했다”면서도 “법원 판결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함께 많이 아파하고 고민하고 격려해 주신 여러분들 고맙다”고 말했다.

‘해고 부당’ 선고를 받은 3명의 기자 중 한 명인 정유신 기자는 “오늘 복직 판결이 안 난 3명하고 오늘 승소한 3명하고 도대체 차이가 무엇인가”라며 “차이가 없다. 똑같은 행동을 했다. 노종면, 현덕수, 조승호 이들은 검찰에서 부당하게 체포했던 사람들이다. 그 판결을 대법원, 그리고 2심 법원에서 자기들이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그 부분만 강조해서 오늘까지 온 거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으로 해직사태 해결을 방해해 온 배석규 사장의 책임을 묻기도 했다. 정유신 기자는 “1심 판결 결과에 따르겠다고 4월 1일 합의한 것을 회사 간부였으니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까지 가는 거였다고요?”라며 “합의했던 당사자인 구본홍 사장은 ‘1심 전에 (해직사태를) 끝내려고 했고 (법원 판결에 따른다는) 문구는 1심 판결을 의미하는 취지라고 말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십시오”라고 질타했다.

정유신 기자는 최근 노골적인 찬양 보도로 화제를 모았던 ‘매력적인 대통령’ 리포트 등 엉망이 된 보도 상황을 언급하며 “이런 YTN 복직했다고 먼저 들어가서 나머지 사람들 올 수 있게 제가 출근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 제가 옳다고 믿는, 우리가 같이 지키려고 했던 YTN의 가치를, 저희 양심에 따른 보도를 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면서도 “항상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우린 언제나 그랬듯 해법을 찾아왔으니 그 해법이 뭔지 동료 선후배와 같이 고민하면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27일 저녁 6시 30분, YTN 상암신사옥 뉴스퀘어 1층 로비에서는“여섯 명 전원복직 끝까지 함께 간다”,“전원복직 이뤄내어 공정방송 쟁취하자”,“해직사태 해결만이 YTN 살길이다”등의 구호가 울려퍼졌다. (사진=미디어스)

‘한 묶음’이었던 해직기자들의 ‘부당해고’가 인정된 날
6년 만에 해고통보서를 찢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은, 보도전문채널 YTN의 방송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흔들 수 있다고 한 목소리 내며 같이 싸운 해직기자들을 3:3로 분리했다. 하지만 3명에 대한 해고는 부당했다는 점이 최종 확인됐다는 점만은 ‘작은 성과’였다.

YTN노조 권영희 지부장은 “이번 판결은 언론자유와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우리가 싸워왔던 그 가치에 대한 판결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약간의 문제점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지, 우리가 앞으로 계속 짊어지고 가야 할 커다란 가치에 대한 정당성을 판별 짓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위축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노조원들을 독려했다.

3명이 복직된 오늘을 ‘가장 기쁜 날’로 꼽기도 했다. 그는 “2008년 10월 6일, 여섯 명의 우리 동료들이 해고된 다음 가장 행복한 날을 맞았다. 6년 만에 3명이 돌아왔다. 6명이 모두 한꺼번에 돌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일단 3명이 먼저 오게 됐다”며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모두가 다 복직할 수 있는 그런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보다 노력하겠다. 무엇보다 여러분들의 하나 된 의견, 힘이 중요하다. 자, 다 같이 힘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집회 사회를 맡은 YTN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임장혁 위원장도 “오늘 우리는 최종 승리를 향해 가는 여정 중 큰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쾌거를 이뤄냈다. 3명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최종적으로 얻어냈다. 이걸 발판으로 삼아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 더욱 더 노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강성남 위원장은 “해고 동지들의 복직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판결을 듣고 보니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죄송하다”고 말을 꺼냈다. 강성남 위원장은 “우리들에게 공정방송을 하지 못하게 했던 그들이 반성해야지 복직이 완성되는 것인데, 지금 사법부에 의해 3명만 들어오고 3명은 바깥에 있다. 저들은 아직도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고난을 주고 탄압을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중앙조직에서도 조금 더 복직 투쟁의 사회적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YTN 해직기자들이 6년 전 받은 해고통보서를 찢어버리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집회의 마지막은 6년 넘게 해직기자들을 괴롭혀 왔던 회사의 해고통보서를 찢는 시간이었다. 임장혁 공추위원장은 회사 선배들이 자신과 해직자들을 헷갈려 하고, 본인 역시 2심 판결에서 누가 지고 누가 이겼는지 구분을 못했던 경험담을 전하며 “우리와 같이 싸우다 해고된 우리의 동료들, 이렇게 여섯 명을 한 묶음으로 바라보았다. 3:3 판결이라고 하는데, 오늘 해고가 부당하다고 나온 거면 6명의 해고가 다 부당하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6년 전 6명의 동료에게 전달된 해고통보서를 찢도록 하겠다. 오늘로서 그 해고가 전부 무효고, 우리의 공정방송 투쟁은 가치를 인정받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각오를 되새겨 보자”고 덧붙였다.

“해고는 무효다!”라는 노조원들의 힘찬 외침 속에 권석재, 우장균, 정유신, 조승호, 현덕수 기자는 자신들을 ‘해고자’로 만들었던 해고통보서를 6년 만에 찢어버렸다.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 <뉴스K> 생방송 진행 때문에 불참한 노종면 기자의 해고통보서는 권영희 지부장이 대신 찢었다. 큰 박수가 지나가고 “복직을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라는 인사가 이어졌다. 해직 2244일 만의 일이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