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정례연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 첫번째 편(경제위기)을 방영하지 않기로 12일 최종 결정했다.

당초 MBC 보도국은 지난 10일 대통령 연설을 방영하기로 결정했으나 노조가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중단을 요구하고, 야당에서도 '반론권을 보장하라'며 반발하고 나서는 등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12일 오후 5시 회의에서 재논의해, 방영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방영 강행 땐 물리적 충돌까지 우려…12일 오후에 최종 결정

MBC관계자에 따르면, 보도국은 대통령 연설이 뉴스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 방영하기로 했으나 이같은 사실을 라디오 부문에 통보하자 PD들이 반발하고, 노조도 저지하겠다고 나서는 등 물리적 충돌까지 예상됨에 따라 방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 이명박 대통령 ⓒ여의도통신

이에 앞서, 지난 10일 KBS와 MBC는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정례연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가칭)의 첫 방영분인 '경제위기'편의 주제가 뜨거운 현안이라는 이유로 13일 아침에 방영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KBS와 MBC 내부에서는 '사전 조율도 없이 청와대의 일방적 통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공영방송으로서 적절한 행동이 아니다'라는 내부 구성원의 비판과 '반론권을 달라'는 야당의 반발이 이어졌다. 지난 9일 박형준 홍보기획관이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아침 출근시간대에 7~10분 정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통보한 것을 방송사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대통령 연설 방영과 관련해 12일 오후 2시부터 대책회의를 연 박성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은 보도국에 '공영방송인 MBC가 대통령의 녹음분을 일방적으로 내보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김도인 MBC 라디오편성팀장도 "우리도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고 당황했다. 이런 게 있다면 사전에 조율을 해야 하는데, 청와대가 방송사에게 서면이나 구두로 제안한 게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11일 현안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일방통행식 연설을 하는 것은 자칫 화가 될 수도 있다. '노변정담'을 하겠다는 시도는 좋으나 '노변괴담'이 되면 대한민국은 이제 버틸 구석이 없어진다"며 "만일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진행된다면 국민을 대변할 수 있는 제1야당의 반론권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자유선진당도 12일 논평을 통해 "라디오가 통치권자의 정치선전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언론장악을 통한 여론 조작, 이미지 조작이란 오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며 "전파 이용이 대통령의 독점 내지는 전유물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에 야당에게도 대등한 기회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KBS 관계자 “MBC와 보조 맞춰야 되지 않겠나”…SBS는 처음부터 편성 안해

MBC가 방영을 취소함에 따라 지상파 방송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KBS만 제1라디오에서 13일 오전 7시 15분부터 23분까지 방영하게 됐다. 하지만 KBS 내부에서도 MBC가 취소됐으므로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KBS관계자는 "일단 편성이 돼있긴 하지만 MBC가 취소했으므로 최소한 보조를 맞춰야 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SBS는 민영방송이 대통령의 연설을 라디오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편성하지 않았으며, 비중있는 발언이 나올 경우 향후 뉴스에서 소화한다는 입장이다. SBS는 지난 9월9일 <대통령과의 대화>도 지상파 3사 가운데 유일하게 방송하지 않았다.

한편 2003년 참여정부도 대통령 라디오 정기연설을 시도했으나 전파독점, 일방적 소통이라는 논란으로 인해 무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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