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왕가의 혈통에 따라 왕위가 세습되었던 세습 군주국가이다. 하지만 대를 이어가면서 왕가의 혈통은 왕의 아들, 즉 적통으로 세습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왕의 적통은 아니지만 왕가 주변에서 왕위에 어울리는 인재를 찾아 왕위를 세습하는 방계 세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첫 번째 대상자가 바로 <왕의 얼굴>의 14대 선조이다.

선조는 중종의 서자였던 덕흥군의 셋째 아들이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 덕흥군은 중종의 일곱 번째 아들로 후궁 창빈 안씨의 소생이었다. 그렇게 왕가에서도 비교적 먼 방계 혈족이었던 하성군은 이름조차 원래 이름이었던 균을 버리고, 명종의 세자 항렬을 따라 고치며 34살 이른 나이에 죽은 명종의 후계자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서자에게는 어미의 신분을 따르게 하여 양반의 자식이라도 어미가 천민 신분이면 천민이 되었던 철저한 신분제 국가 조선에서 왕의 아들이 아닌, 그것도 후궁의 소생인 아버지를 둔 대비의 뜻에 따라 하루아침에 왕이 된 선조의 처지가 어떠했을 거라는 건 짐작할 만하다. 왕이라지만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쟁쟁한 가문의 신하들 사이에서 항상 자신의 정통성에 대한 자격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부실한' 정통성으로 인한 결핍으로 몸부림치는 선조란 인물이, '관상'이란 매개를 통해 TV드라마로 등장했다. 11월 19일부터 KBS2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왕의 얼굴>이다.

드라마에서 선조(이성재 분)는 임금의 얼굴을 논하는 '용안비서'를 근거로 하여 늘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심지어, 우연한 기회로 왕의 자리를 차지한 그는 자신이 그랬듯이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증까지 가지게 된다. 드라마는 이렇게 정통성을 얻지 못해 고뇌하다 '왕의 얼굴'을 예언한 '용안비서'를 불태우고, 의로운 정여립을 왕의 자리를 넘본다며 역적으로 몰아죽이고, 자신의 부족한 왕의 기를 후궁의 관상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아버지 선조를 그려낸다.

방계라도, 서자라도 선조는 나은 편이다. 21대 영조로 가면 그 콤플렉스는 극에 달한다. 후궁이 되었지만 궁중에서 제일 천한 신분이었던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를 가진 영조는, 후세 사가의 책에서 형 경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혐의를 받았다. 실제 1722년 소론의 공격으로 60여 명의 노론이 처형당하고, 170여 명이 귀향을 간 임인옥사에서 경종 시해 음모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목숨이 경각에 이르기도 하였던 인원왕후의 뒷배와 경종의 요절로 가까스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드라마 <비밀의 문>은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르게 된 영조의 사연을, 영조와 노론 사이의 밀약 '맹의'를 통해 풀어낸다. 즉 왕위에 오르기에 불리했던 연잉군은 노론과의 밀약을 통해 왕위에 올랐고, 그때 맺었던 밀약으로 인해 영조는 노론에게 발목을 잡혔으며, 맹의의 실종과 재등장으로 정통성에 콤플렉스를 가진 영조의 입지는 오르락내리락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드라마 속 아버지 선조와 영조는 출생으로 인해 생긴 콤플렉스를 선정을 통해 극복하는 대신, 무리한 신하들과의 밀약 혹은 그것의 근원이 되는 서적의 제거, 심지어 인물의 제거를 통해 풀어내고자 하는 무리수를 범한다.

정통성을 잃은 아버지들의 이런 무리수는, 묘하게도 근대사 속 정통성을 잃은 우리의 아버지 세대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선조와 영조에 대한 해석은 드라마적이다. 최근 들어 임진왜란 동안 도망친 비겁한 군주 선조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들을 죽였다는 원죄를 벗어날 수 없는 영조는 교과서에서는 '탕평책'을 통해 조선후기의 당쟁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왕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역사적 사실의 한 부분, 출생의 콤플렉스란 부분을 부각시킨다. 그리하여 정통성을 잃은 아비 세대의 왜곡된 몸부림을 통해 오늘의 왜곡된 현실을 상징해 내고자 한다.

<비밀의 문>에서 사도세자는 척신들의 치마폭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버지에 대항한, 보다 근대적인 정치관을 가진 진보적인 왕제로 그려진다. 그래서 결국 그의 죽음을 그런 아들을 허용할 수 없는, 그런 왕을 옹립할 수 없는 아버지와 권신들의 정치적 살인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왕의 얼굴>은 관상이라는 신비주의적 혹은 운명론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아버지를 넘어, 진정한 얼굴의 상은 그가 한 일로부터 비롯된다는 보편적인 가르침을 얻고 백성들의 삶을 살펴보기 시작한, 진정한 왕의 얼굴을 추구해가는 아들을 그린다. 그렇지 못한 아비와 권신들과 갈등하는 아들 광해의 노력을, 그리고 그 노력이 품은 슬픈 운명을 그려가고자 한다.

<왕의 얼굴> 평균 6.2%(닐슨 코리아)과 <비밀의 문> 평균 5.4%(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에서 보여지듯, 용포를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고 막말을 하며 감정에 휘둘리는, 결핍 그득한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한 아버지 왕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들 드라마의 부진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왕답지 않은 왕의 모습이 불러오는 거부감이 빠질 수 없는 요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란 존재는 영화 <인터스텔라>, 그리고 개봉 전 이미 천만관객이 예언되는 <국제시장>에서 형상화되듯 가족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고 희생했던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그가 감행했던 정치적 불의 혹은 외면, 역사적 왜곡은 논의의 대상이 되기엔 여전히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조선이라는 신분제 사회에서 평민에게 과거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혁명적 발상'을 하는 왕세자와, 진정한 왕의 얼굴을 얻기 위해 관상가의 길을 마다치 않는 왕제의 구도적 발상은,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손에 잡히지 않은 신기루와 같은 이상주의로 다가온다. 그래서 아비의 발악만큼 아들의 고군분투가 허망하다. 억울한 죽음의 사도세자와 왕의 이름을 얻지 못한 광해군에 대한 재해석 역시, 당당한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한 우리 아들 세대만큼이나 현실감 없이 다가온단 점이 이들 드라마의 부진 요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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