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재특회’와 ‘카운터’가 대립하는 풍경이 이런 것일까. 27일 서울 마포구 인권재단 ‘사람’ 사무실 앞 풍경은 한 행사에 난입하려는 자들과 이들을 막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이 광경을 부지런히 찍어대는 기자들이 함께 모여 만들어낸 어떤 아수라장이었다.

이 행사는 서울시 시민보호관 주최로 열리는 ‘2014년 시민인권보호관 제도의 평가와 발전방안 토론회’였다. 지난 1년간의 시민인권보호관 제도 운영 현황과 제도 개선 방안 등에 대해 민·관 전문가들의 합동토론회로서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서울시 시민인권현장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인권재단 ‘사람’은 20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시민인권헌장 공청회를 무산시킨 성소수자 혐오 세력이 “카카오톡과 SNS 등을 통해 인권센터에서 토론회가 개최된다는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면서 “성소수자 혐오세력이 이날 인권센터에 강제로 들어올 것을 예고했다”며 “재단이 이들에게 더렵혀지지 않게 함께 해달라”고 도움을 호소한 바 있다.

▲ 이날 인권센터 '사람' 앞에선 동성애 혐오발언을 하는 이들과 이들을 막아서는 사람들, 그리고 기자들이 대치했다. ⓒ미디어스

인권재단 ‘사람’ 측은 “지난 공청회의 경우 서울시청에서 열리다 보니 성소수자 혐오세력의 출입을 제한할 길이 없었지만 이번엔 인권센터 내에서 열리는 만큼 철저하게 출입을 막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서교동 인권재단 ‘사람’ 사무실 앞은 토론회에 난입하려는 수십 명과 이들을 막아선 수십 여명, 그리고 기자들로 붐볐다. 토론회 난입을 막으려는 쪽이 조금 더 많아 보였고, 그래서 20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의 시민인권헌장 공청회 상황과는 다소 달랐다.

토론회 난입을 막으려는 이들은 성소수자 활동가와 진보적 기독교 신자들이 다수인 것으로 보였다. 동성애자 혐오발언을 하는 목사가 설교를 하면 웃음과 야유를 보내거나 아는 성가가 나오면 따라 부르거나 했다. 목사가 동성애를 다소 극적으로 준엄한 언성으로 질타하면서 “이 나라는 삼강오륜의 나라”라고 하자 많은 이들이 실소를 금치 못하며 “기독교냐 유교냐”라고 묻기도 했다. 누군가는 설교하는 목사 앞에 거울을 들이밀었다.

▲ 동성애가 사탄의 것이라 설교하는 목사 앞에 누군가 거울을 들이밀었다. ⓒ미디어스

토론회가 열리는 사무실 바깥에서의 대치상황이 삼십여분 진행된 시점에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잠시 나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박래군 상임이사는 “기자 분들에게 당부드릴 것이 있다”면서 “유럽에서 신나치 시위 같은 것을 하면 그들의 혐오발언을 그대로 담지 않는다.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발언을 주로 담는다”라고 말했다. 박래군 상임이사는 “저들의 발언을 날 것 그대로 보도하여 성소수자들에게 수치심을 준다면 저들의 목적에 부합하는 보도다”라면서 언론의 자제를 촉구했다.

그러나 박래군 상임이사가 발언을 하고 떠나간 이후에도 상황은 한참 동안 해결되지 않았다. ‘동성애’와 ‘에이즈’를 연결짓는 혐오발언이 난무했다. “동성애를 왜 하려고 합니까. 인간 일생이 칠십년인데 왜 삼십 년을 덜 살려고 합니까”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 난무했다. 자기를 막아선 남성을 성소수자로 단정하고 “어이 아저씨, 여자가 좋지 않아? 왜 여자를 안 좋아해?”라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분열을 그대로 드러내는 풍경도 있었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당신들 박근혜 사주받고 왔지?”라고 외쳤다. 그러자 저쪽에선 “지들은 김정은 사주받았나…”라는 웅성거림이 흘러나왔다. 양쪽 모두 자신이 ‘상식’이란 확신이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었다.

▲ 혐오발언자를 막아선 활동가들과 시민들. ⓒ미디어스

한국 사회의 ‘재특회’와 ‘카운터’는 일본처럼 ‘소수의 시끄러운 재특회’와 ‘다수의 조용한 시민 카운터’의 대립양상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의 사회운동가들은 공권력을 귀찮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과 시민들이 섞여서 다른 시민들과 대치하는 셈이었는데, 저쪽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이 서로를 비난하며 고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경찰 두 어명이 사태를 지켜보며 방관하고 있었다.

경찰에게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물어봤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라고 질문하니 “내버려둬야 합니다”라는 답이 나왔다. “폭력 상황이 발생해야 개입할 생각이냐”라고 묻자 “그렇다”는 답이 나왔다. 경찰은 “서로 생각이 달라서 합의가 불가능하지 않느냐. 이럴 때는 서로 지칠 때까지 떠들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한국적 다원주의’ 혹은 ‘한국적 상대주의’의 풍경처럼 보이기도 했다. 경찰이 용역의 폭력을 방관하는 노동문제와는 조금 다른 영역의 풍경 같기도 했다.

하지만 혐오발언을 원하는 이와 그것을 막으려는 이의 권리는 양립할 수 없었다. 폭력사태를 막은 것은 양쪽 사람들의 어정쩡한 비율이었다. 토론회 난입을 막으려는 이들이 다소 많았지만,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순간 토론회에 난입하고 싶었던 이들이 “충돌이 일어나면 안 된다”면서 “피켓을 내리고 조용히 출입하자”면서 상황의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당연히 이들의 진입을 막고 있는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 혐오발언자들을 막아선 활동가들과 시민들 ⓒ미디어스

힘으로 돌파가 안 되고 피켓을 내려도 들어갈 수 없단 걸 알자 놀랍게도 그들은 ‘인권’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 하긴 그들의 혐오발언 속에서 서울인권헌장은 “일부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다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긴 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출입할 자격이 없다고 그런다. 이것은 인권침해다. 인권위에 제소하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서울시 측에 행사에 대해 문의했는데 시민 아무나 참여할 수 있다고 분명히 확인받았다”면서 “서울시에 계속 전화를 하고 있는데 전화를 안 받는다”라고 호소했다. 몇몇 사람들은 서울시청에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기도 했다.

▲ 양측의 대치는 해결될 길이 난망해 보였다. ⓒ미디어스

그후 서울시공무원이 한 명 등장했다. 서울시공무원은 토론회에 난입하려는 이들에게 일단 행사의 취지를 한참을 설명했다. 서울시공무원은 “이 행사는 인권헌장안과는 관련이 없고, 동성애 문제에 관한 토론도 아니며, 전문가토론이지 시민 모두에게 공개된 토론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서울시공무원은 또 “서울시청 내에 행사공간이 없어서 인권재단 ‘사람’의 공간을 빌린 것일 뿐이다”라고도 설명했다.

그의 해명을 듣고 납득하는 이도 있었고, “서울시에 몇 번이나 문의했는데 다르게 얘기했다. 공무원이 잘못한 거다. 서울시 때문에 지인들까지 불러서 시간낭비를 했다”고 계속 항의하는 이도 있었다. 결국엔 토론회 항의 시위 참석자 중 대표자 두 명에게 행사를 방해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토론회에 입회시키기로 했고, 인권재단 ‘사람’ 측도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인권운동가들이 요구하는 것은 혐오발언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혐오발언을 하는 이들이 그 개념을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울 시민인권헌장을 거부하는 동성애 혐오세력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인권운동가들의 활동 자체를 혐오하기에 이르렀다. 오늘의 일은 해프닝처럼 지나갔지만 바로 내일인 28일 시민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시민위원회 6차 최종회의에 그들은 총력결집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풍경은, 슬프게도 한국 사회에서 한동안 종종 봐야 할 것이 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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