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아침 강성덕, 임정균씨는 삭발했다. ‘하루 경고파업’에 나선 동료 500여 명을 맞이한 자리였다. 서로 머리카락을 잘라줬다. 두 사람은 지난 12일 원청 씨앤앰과 이 회사의 최대투자자인 ‘사모펀드운용사’ MBK파트너스에 대해 “해고자 109명을 전원 복직시키고,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 나서라”며 서울 한복판 프레스센터와 파이낸스센터 사이에 있는 20미터 높이 전광판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26일 씨앤앰 장영보 사장은 ‘3자협의체’를 제안했으나, 쟁점에 대한 ‘입장’은 없었다. 두 사람은 문제가 모두 해결될 때까지 내려오지 않을 계획이다.

▲ 27일 20미터 높이 전광판 위에서 삭발투쟁을 한 씨앤앰 하도급업체 노동자들. (사진=민주노총 금속노조)

씨앤앰 하도급업체에 다니던 109명은 계약만료로 해고됐다.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지부장 김영수)는 MBK파트너스 사무실이 입주한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143일째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8일에는 씨앤앰 직접고용 정규직 노동조합(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지부, 지부장 김진규)이 ‘109명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과 구조조정 중단 및 고용보장, 임단협 체결’을 촉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노숙·고공농성, 정규직 파업에 민주노총,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시민사회의 전방위 압박에 씨앤앰과 MBK는 한발 물러섰다.

희망연대노동조합 이종탁 위원장은 이날 <투기자본 MBK 씨앤앰 먹튀 중단! 비정규직 대량해고 철회와 구조조정 중단! 케이블방송 공익성을 위한 씨앤앰 정상화 촉구!> 종교·시민사회·언론·정치·노동단체 1090인 선언 기자회견에서 “28일 오전 11시 3자협의체 회의에 참석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사측이 ‘2명이 내려와야 한다’, ‘109명 복직이면 되지 않느냐’는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면 한국에서 씨앤앰과 MBK를 지워버리는 싸움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 안에 교섭을 끝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규직-비정규직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조합은 그 동안 교섭의 방식이 ‘사회적 합의’든 ‘노사 직접교섭’이든 관계없이 △109명 해고자 원직복직 △구조조정 중단 및 고용보장 △2014년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 △위로금 지급 등 4가지를 동시에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씨앤앰 장영보 사장은 27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조합과 하도급업체에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지도·배석하는 ‘씨앤앰-협력사협의회-노동조합’ 3자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장영보 사장은 고공농성 노동자에 대한 안전문제 때문에 “법적 책임이 없는 원청이 인도적이고 도의적으로 나섰다”고 말했다.

▲27일 1090인 선언 기자회견 모습.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협의체에 참석하기로 밝힌 상황에서, 씨앤앰이 4가지 쟁점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씨앤앰에서는 노무담당 한상진 상무가 대표로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장영보 사장 등 씨앤앰 경영진은 ‘109명 고용문제’를 3자협의체의 우선순위로 두고 논의할 계획을 밝힌 만큼 다른 쟁점에 대해서는 입장을 정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씨앤앰은 협력사와 노동조합 등과 사전에 4대 쟁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은 채 3자협의체 구성을 제안했고, 장영보 사장이 “법적 테두리 안”을 강조한 만큼 타결 가능성은 낮다.

이 같은 상황 탓에 민주노총 중심의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와 노동조합은 씨앤앰과 MBK파트너스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일 계획이다. 운동본부와 노조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있는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 집에서는 일인시위를 진행 중이고, 27일에는 각계 1090명의 서명을 받아 <한겨레>에 전면 의견광고를 게재했다. 씨앤앰 사태 해결을 바라는 사회운동단체들은 250여개에서 500여개로 크게 늘어났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도 3자협의체에 주목하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방통위와 미래부에 ‘먹튀 방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계획이다.

진짜사장나와라운동본부와 함께 한 1090인은 “씨앤앰 노동자들의 요구는 상식적이고 소박하다. 합법적 수준의 노조 활동 보장과 정당한 대가를 달라는 것뿐”이라며 “그런데 씨앤앰과 MBK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투기자본의 발톱을 세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짓누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고공농성투쟁을 하고 있는 임정균, 강성덕 동지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며 “시간이 많지 않다. 하루라도 빨리 두 사람이 땅을 밟을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 범시민 대책기구는 더욱 비상한 각오로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모으는 일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 기자회견에 참석한 씨앤앰,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규찬 대표는 “자본의 차가운 대리석은 인간의 따뜻한 살갗을 이겨내지 못한다”며 “언론과 방송이 망가졌지만 여기 있는 빨간조끼들이 금융자본의 지배를 비켜서는 돌과 바위, 힘이 될 것이고 씨앤앰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지켜 내리라 확신한다”고 독려했다.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김서중 공동의장은 “투쟁현장에 나오면 ‘우리가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정치권력, 비정규직 문제에서 자본권력을 마주하면서 우리가 틀린 게 아니고 저들이 폭압스럽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사회진보연대 정영섭 공동운영위원장은 “박근혜 정부는 정규직 해고요건을 완화하고, 비정규직 기간을 늘리려고 하면서 노동문제에 군불을 때고 있는데 씨앤앰 투쟁에는 간접고용 문제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대책, 정리해고의 문제가 모두 결합돼 있다”며 “노동자들의 상황이 열악해지는 상황에서 이 싸움은 전체 운동에 있어서도 큰 의미”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그 동안 꿈쩍을 않던 씨앤앰과 MBK를 움직여 3자협의체라는 결실을 만들었다”며 “참여연대도 4대 요구안을 관철할 수 있도록 교섭이든 투쟁이든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이종탁 위원장은 “사람이 저 위에 올라가야 자본이 교섭을 하자고 하는 진절머리나는 대한민국이 싫다”면서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듯 씨앤앰은 240만 가입자와 간 쓸개 다 내주고 회사를 일군 노동자들의 것”이라며 조합원을 독려했다. 그는 “이제 저 위에 있는 두 동지를 쳐다보지 말자. 위로 올라가고 머리 깎은 것으로 됐다. 더 이상 다른 행동하지 않게 하자. 어려운 짐을 요구하지 말자. 이제 우리가 하자. 우리가 해야 한다. 두 사람 내리는 게 1순위가 아니다. 모든 문제가 다 끝나야 내려올 수 있다. 두 사람에게 ‘미안하다’ 했다”고 말했다.

▲ 이종탁 위원장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미디어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