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이 YTN노조의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에 대해 3명의 해고는 정당했고 3명의 해고는 부당했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준비한 꽃다발은 결국, YTN 해직기자들에게로 전달되지 못하고 대법원 정문 앞에 놓이게 됐다. (사진=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기획실장 페이스북)
꼭 2주 전, 회사의 대량 해고사태의 부당함을 확인받기 위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모였던 대법원 앞에 YTN 해직기자 6명이 섰다. 하지만 대법원은 YTN 노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며 야멸차게 6명의 운명을 갈랐다. ‘권석재, 우장균, 정유신 기자의 해고는 부당했다. 하지만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기자의 해고는 정당했다’

부당해고된 자신들이 아닌 쌍용차 편에 섰던 대법원이었지만, 정권이 보낸 낙하산 사장에 맞선 YTN 해직기자들의 투쟁은 그 정당함을 확인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을 비롯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도 대법원 앞을 지켰으나, 허탈한 선고에 무거운 침묵이 한동안 계속됐다.

YTN 해직기자 6명 전원의 해고가 무효했다는 판결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축하의 의미로 준비한 꽃다발은 갈 곳을 잃었다. 이창근 기획실장은 “패소한 YTN 노종면, 현덕수, 조승호 기자와 승소한 우장균, 권석재, 정유신 기자님께 작은 꽃다발 드리고 싶었는데 반을 갈라버린 대법원 판결 앞에서 이 꽃 나눠드릴 솔로몬의 재간이 없더군요”라며 “울고 있던 YTN 기자들과 기자들의 허탈감을 봅니다. 기운 내요”는 글로 위로의 뜻을 전했다.

“좋은 결과 나오면 축하해줘”… 지키지 못하게 된 약속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이하 YTN노조)는 지난 2008년 MB특보 출신 낙하산 구본홍 사장 퇴진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권석재, 노종면, 우장균, 정유신, 조승호, 현덕수 기자가 해고됐다. MB정권의 ‘방송장악’ 신호탄이었다.

2009년 11월 1심 재판부는 기자 6명에 대한 해고가 무효했다고 판결했으나, ‘법원 판결을 따르겠다’던 YTN은 대법원 판결을 의미한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 2011년 4월 2심 재판부는 문제의 3:3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아주 오랫동안 묵묵부답이었다. 보통 민사 사건은 항소심 이후 대법 판결까지 4개월 정도가 걸린다. 하지만 YTN 해직사태 선고는 3년 7개월 만에 났다. 그동안 당사자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은 피가 말라가는 시간을 겪어냈다.

해고 2244일째였던 27일은, 한참 소식이 없던 대법원에서 YTN 해직사태에 대해 마지막 법적 판단을 내리는 날이었다. 선고는 오전 10시로 예정돼 있었으나 9시가 조금 넘은 시각부터 하나 둘 사람들이 모였다.

고향인 제주도에서 선고 소식을 듣게 됐다는 현덕수 기자는 ‘좋은 꿈 꾸셨느냐’는 질문에 “밥만 잘 먹더라, 란 노래 있잖아요. 그랬어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법정에 들어서기 10분 전, 마지막으로 노종면 기자가 도착했다. 모처럼 6명이 한 자리에 섰다. 노종면 기자는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다. 상식적인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하고 재판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 27일 오전 9시 50분 경, YTN노조 징계무효확인소송 선고를 듣기 위해 YTN 해직기자들이 법정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현덕수, 권석재, 노종면, 정유신, 조승호, 우장균 기자 (사진=미디어스)

법정에 들어서기 전, 대기하며 옛 동료들과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던 해직기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YTN노조의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에 나섰다는 이유로 정직 6개월을 받았다가, 스스로 회사를 나간 최기훈 <뉴스타파> 기자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오늘 생일이라며?”라는 노종면 기자의 질문에 최기훈 기자는 “오늘 좋은 결과 나오면 같이 축하해줘”라고 말했다.

오전 10시, 대법원 2호 법정에서 선고가 시작됐다. 대법관들은 ‘파기 환송한다’ 혹은 ‘상고를 기각한다’ 등의 짤막한 말을 숨 가쁘게 전하며 14분 여 만에 49개의 선고를 마쳤다. 10시 15분, 50번째로 YTN노조 징계무효확인소송 선고가 났다.

“원고 노종면 외 8인, 피고 주식회사 YTN.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원고 권석재, 우장균, 정유신과 피고 사이에 생긴 상고비용은 피고가 부담하고, 나머지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생긴 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지독한 시간들이었다… 대법원은 3년 7개월 동안 뭘 했는가”

1분도 걸리지 않았던 선고 후, 다시 해직기자들이 취재진 앞에 섰다. 권석재 기자와 정유신 기자가 눈물을 훔쳤다. 우장균 기자와 노종면 기자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YTN노조 변호를 맡았던 강문대 변호사는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노종면 기자는 울음을 삼키고 판결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2심 나오고 3년 7개월 동안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그 시간들은 단순히 혹독하다는 표현을 넘어서 지독한 시간들이 아니었나… 감정을 자제하고 냉정하게 소감을 정리해 보면 사실 이 사건은 단 한 명의 부당징계도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입니다. 패소한 저를 비롯한 3명과 무관하게, 이번에 ‘무효’로 나온 3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이명박 정부와 배석규 사장과 그리고 YTN 경영진들, 그리고 대통합 운운하면서 저희들을 기만했던 박근혜 정부까지… 그들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는 판결이었다고 봅니다”

▲ 노종면 기자가 27일 오전 대법원 선고 직후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노종면 기자는 “제가 2심 때 재판장이 가장 책임이 중하다는 저에게 ‘해고는 좀 지나치고 YTN에 있는 해고 밑 가장 무거운 징계인 정직 6개월보다는 조금 무거운 책임이 당신에게 있지 않느냐’라고 했다. 그래서 저도 ‘그 정도 책임은 충분히 인정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해고 무효가 나와야 하지 않나”며 “대법원이 어떤 기준으로 3명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3명의 해고는 정당했고 3명의 해고는 부당했다는 판결은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분이 있으면 저희들한테 설명해주셨으면 좋겠다. 왜 3년 7개월을 끌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 해고는 저희들을 언론계에서 퇴출하는 과정이었다.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언론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싸움이라면 싸움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우장균 기자도 “사적인 일도 아니고 자유언론 투쟁을 위한 행위였다”며 “노동자로서 해고는 사형선고다. 이번 판결은 2014년 OECD 국가라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언론인 해고로 모든 언론인에게 겁주기 효과를 주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3명 해직은 부당”… 해직사태 해소에 한 줄기 희망될까

▲ 30초도 되지 않는 선고가 끝나고, 취재진 앞에 선 YTN 해직기자들의 모습 (사진=미디어스)

대법원은 언론장악을 위해 투하된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에 나선 언론노동자들의 운명을 갈랐다. 하지만 권석재, 우장균, 정유신 기자의 해고는 ‘무효했다’고 판결했다. YTN은 선고 직후 “회사가 그동안 해직자 문제와 관련해 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른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던 만큼 이번 대법원 최종 판결을 존중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의 최종 판단을 따르겠다는 말대로라면, YTN은 ‘해고가 부당하다’는 법적 판단을 확인 받은 3명을 복직시켜야 한다. 노종면 기자 역시 ‘3명의 승소’가 결코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오늘 승소한 분들, 축하해 주세요. 많이. 거기서 실마리가 풀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장균, 권석재, 정유신의 YTN 복귀는 단순히 3명이 ‘이겼다’의 차원을 뛰어넘는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노사 합의에 의해서 실현된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일부지만 저희들이 관철해 낸 성과라고 생각해서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우리 조합원 동지들 선후배 동료들은 비록 6명이 한꺼번에 돌아가지 못하지만, 먼저 돌아가는 복귀하는 3명과 함께 YTN 더 튼튼히 만들어 주시고 우리들 복직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YTN노조는 ‘진정한 해직사태 해결은 내부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YTN노조 임장혁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은 “당연히 6명 복직 판결이 나올 줄 예상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와서 좀 당혹스럽기는 하다”면서도 “판결은 하나의 과정이다. 노조는 YTN 사태 해결과 공정방송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서는 YTN 내부와 시민사회의 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복직하고 누가 떠나고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해직사태’라는 만행이 바로잡히는 것을 위해 싸워왔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은 하나의 참고사항일 뿐”이라며 “노조는 우리 힘으로 현명하게 해직사태를 완전히 해소해야 한다는 데에 변함이 없으니 너무 동요하지 마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YTN노조는 오늘 판결 내용과 투쟁 방향을 공유하는 집회를 오늘 오후 6시, 상암동 YTN 뉴스퀘어 로비에서 개최한다.

▲ 노종면 YTN 해직기자가 선고 결과에 오열하는 김용수 전 YTN노조 수석부위원장을 안아주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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