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한화의 빅딜을 놓고 일간지들이 다양한 관점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 기사들의 내용은 기업의 미래와 경영전략에 대한 해설부터 국내 산업계의 구조조정 문제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포괄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문은 삼성과 한화의 빅딜을 ‘선택과 집중’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1면에 <삼성은 ‘선택’, 한화는 ‘집중’…윈윈 빅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한겨레> 역시 <재계가 놀란 ‘자율 빅딜’, 삼성 선택과 집중 강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다른 신문들도 거의 유사한 관점의 기사를 냈다. 빅딜 대상이 된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테크윈의 실적이 삼성그룹 내에서 저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는 점이 이러한 평가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화그룹은 기존에 중점을 두고 있던 방위 산업과 석유화학 산업의 덩치를 더 키울 수 있게 됐다. 그러므로 ‘선택과 집중’이다.

▲ 조선일보 27일자 기사.

재벌 기업이 서로 이런 방식을 ‘거래’를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거래가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언론은 그룹 총수의 ‘결단’을 꼽고 있다. <경향신문>은 이와 관련해 <인수·합병으로 몸집 키운 한화 이번에도 김승연 회장의 ‘작품>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고 <조선일보>는 <김승연의 5번째 승부수…고비마다 M&A로 성장동력 마련>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이러한 보도는 삼성이 이번 빅딜에 대해 한화 쪽에서 먼저 접촉해옴에 따라 성사됐다고 밝힌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재벌기업들의 3세경영이 일반화되면서 합병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도모하거나 자기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우선 집중하는 기업별 구조조정이 시작됐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중앙일보>는 4면에 <현대차는 금융, LG는 자동차…확 바뀌는 재계 지도>, 5면에 <하버드대 동문 오너 3세 이재용·김동관 작품>이란 기사를 배치해 이와 같은 흐름을 강조했다.

▲ 경향신문 27일자 지면.

이번 빅딜의 성사를 삼성그룹의 후계구도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는 기사도 눈에 띈다. <경향신문>은 3면에 <삼성, 전자·금융 축 전열 정비…지배구조 단순화 ‘일석이조’> 제하의 기사를 통해 삼성이 이번 빅딜을 계기로 주력사업 중심으로 그룹 체질을 개선했고 복잡하게 얽혀있던 계열사 간 지분구조를 단순화시켰다고 보도했다. 지난 번 무산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이 재추진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룹의 주력사업인 전자·금융·건설 분야를 맡게 되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호텔신라와 삼성물산의 상사부문을,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은 패션과 미디어를 맡게 된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 중심으로 후계구도가 강화되는 셈이다. <한겨레>는 2면에 <삼성 ‘이재용 중심’ 승계구도 더 뚜렷>이란 제목의 기사를 배치해 이와 같은 해석을 뒷받침했다.

재벌 기업의 미래 전략이나 계열사의 인수합병 배경 등을 폭넓은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은 중요한 언론의 역할이다. 일부 언론은 이를 넘어 이번 빅딜이 국내 산업계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언급하고 있다.

▲ 동아일보 27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이날 <삼성-한화 ‘빅딜’ 재계 구조개혁 신호탄 쐈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삼성과 한화 간의 자율적인 인수합병은 다른 기업들의 성장 전략에도 충격파를 던질 것”이라면서 “세계 시장이라는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재벌도 예외가 아님을 두 그룹은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중앙일보>는 <삼성·한화 자율 빅딜…선택과 집중은 시대의 흐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더 이상 ‘수평적 계열화’나 ‘선단식 경영’, ‘문어발 확장’은 지속 불가능하다. ‘대마불사론’도 사라진 지 오래다”라면서 “삼성·한화의 자율 빅딜이 국내 기업들의 과감한 사업 재편에 촉매제가 되길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조선일보>는 <삼성 ‘화학·방산’ 매각, 선제적 구조조정만이 불황 이긴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국내 경기가 장기간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도 사업구조를 날렵하게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라면서 “삼성과 한화는 이번 거래를 잘 마무리해 대기업 자율 구조조정의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 중앙일보 27일자 사설.

이들 신문의 사설들을 보면 삼성-한화의 빅딜과 재벌대기업 스스로의 구조조정이 시대의 대세이고 모두 이러한 길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재벌대기업이 문어발식 확장에서 벗어나 기업의 체질을 합리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반드시 발생할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언론이 단지 인수합병 및 분리매각을 통한 체질 강화만을 부르짖을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거둘 수 없다.

▲ 조선일보 27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위 사설 말미에서 “소속이 바뀌는 8000여명의 삼성 계열사 직원들이 고용 불안을 느끼게 되면 빅딜에 대한 회의감이 경제계 전체에 퍼질 수 있다. 모처럼의 대형 빅딜이 고용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썼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예외적 상냥함은 기업간의 인수합병이 결국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 등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언론들도 이에 대한 불안을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하루아침에…명함 바뀌는 삼성맨들 “황당”>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한국일보>는 <하루아침에 한화맨으로 ‘뒤숭숭’>이라는 기사로 이번에 빅딜 대상이 된 삼성 직원들의 불안함을 전하고 있다. 삼성과 한화가 빅딜을 합의하면서 한화그룹이 이들에 대한 100% 고용승계를 합의했다고는 하나 실제 기업 인수 과정에서 새로운 인력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할 지 등에 따라 실질적 고용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 경향신문, 한국일보의 27일자 기사.

어떤 측면에서 보면 대기업의 ‘빅딜’을 통한 체질 강화는 생산성 제고를 위해 경쟁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핵심 양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위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논리를 극단적으로 적용하면 삼성은 반도체와 휴대폰, 한화는 중화학과 방위산업, LG는 디스플레이, 현대차는 그냥 자동차라는 식으로 기업구조를 재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거시적 차원에서 재구성하면 어떤 국가는 휴대폰 중심으로, 어떤 국가는 농업 중심으로, 또 어떤 국가는 면직물 등 경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재편해 서로 자유무역을 하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도그마’에 도달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대기업들간의 빅딜을 비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합리성과 효율성을 구축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중요하지 않게 다뤄지는 문제들이 있고, 그 문제들에 따라 힘없는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한다는 점이 ‘상식’처럼 다뤄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대국들과의 FTA로 국가로부터 사실상 버려지는 ‘농민’들의 처지와 ‘하루 아침에 한화맨’들의 처지가 어떤 차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상식적 우려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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