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복싱 금메달리스트 신종훈이 계약위반 논란에 휘말려 당초 목표로 하던 2016년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이 좌절될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24일 '경향신문' 등에 따르면 신종훈은 지난 18일 국제복싱협회(AIBA)로부터 모든 국내외 대회의 출전을 잠정 금지한다는 내용의 이메일 공문을 받았다. 특히 AIBA가 보낸 이메일에는 AIBA 프로복싱(APB)와 계약을 위반한 신종훈의 징계위원회도 열릴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징계위원회에서 징계 내용을 확정할 때까지 모든 선수 자격을 중지한다는 긴급조치로 결국 신종훈이 AIBA가 주관하는 메달이 걸린 각종 국제대회 출전이 불가능해진다는 의미다. AIBA는 여기에 금전적 피해에 대한 피해보상 절차는 별도로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AIBA 우칭궈 회장(대만 IOC 위원)은 지난 12일 제주에서 열린 AIBA 총회 기간 중 인터뷰에서 “신종훈은 계약을 위반했으니 응당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AIBA는 하락하는 올림픽 복싱의 인기 부활을 위해 프로리그인 APB를 추진하면서 2012년 런던올림픽을 전후해 신종훈을 포함한 세계 상위 랭커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APB는 이후 기존 프로복싱 단체들의 반발 속에 대회 개최 추진이 지지부진하다 지난 11월 1일 중국에서 첫 대회를 가졌으나 신종훈은 이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제주에서 열린 전국체전에 출전했다. AIBA가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AIBA는 지난 5월 신종훈이 APB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계약서에 따르면 신종훈은 APB 경기와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 아시안게임을 제외한 대회에는 나설 수 없다.

▲ 복싱 신종훈 (왼쪽) ⓒ연합뉴스
그러나 신종훈은 당시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초 지난 4월 AIBA 우칭궈 회장이 방한, 인천에서 장윤석 대한복싱협회 회장, 신종훈과 만나 계약서에 사인할 예정이었지만 우칭궈 회장은 AIBA 내부 사정으로 일정을 취소했고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종훈은 지난 5월 국가대표 전지훈련지인 독일에서 AIBA 직원이 내민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AIBA 직원들은 훈련장을 찾아와 오후 늦게까지 머물며 사인을 요구했다. 대표팀의 박시헌 감독은 신종훈이 이로 인해 훈련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 사인을 종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상황에 대해 신종훈은 "영어로 돼 있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설령 누가 해석본을 주었다고 해도 계약에 관한 어려운 내용을 혼자서 다 알아볼 수 없다. 그래서 계속 사인을 거부했더니, AIBA 직원이 스위스 본부에 있는 한국인 직원(신종훈은 그를 ‘필립 형’이라고 했다)이 ‘그건 정식 계약서가 아니니 사인해도 좋고 인천에 돌아가 마음에 안 들면 폐기 처분을 요청해도 된다’고 해서 그 말을 듣고 사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종훈은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AIBA와 대한복싱협회로부터 지속적으로 전국체전에 출전하면 안 되고 같은 기간 중국에서 열리는 AIBA 프로복싱에 출전해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복싱협회는 계약서를 AIBA 본부로부터 받은 뒤 그 내용 확인도 없이 장 회장의 직인이 아닌 협회 도장을 찍은 뒤 1부를 AIBA에 보내는 한편 나머지 1부를 신종훈에게 전달하지 않고 보관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복싱협회 최희국 사무국장은 "지난 7월 AIBA로부터 DHL로 계약서를 받았다. 그때까지는 신종훈이 APB 대회에 출전하는 데 이견이 없었기에 계약서에 협회 도장을 찍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신종훈이 계약 무효를 주장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신종훈은 " 당시 대한복싱협회도 계약서가 없다고 했는데, 지난 6일자로 보내온 계약서를 복싱협회가 보관하고 있었다고 이제와서 말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 공간에서는 복싱협회의 무능과 안일한 일처리를 비판하는 여론이 빗발치는 한편 신종훈을 살려야 한다는 서명운동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신종훈(25·인천시청). (EPA=연합뉴스DB)
하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해 보면 신종훈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AIBA에서 공식 문서를 보낸 이상 AIBA 측에서 이를 스스로 철회할 가능성이 ‘제로(0)’에 가깝다고 본다면 신종훈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 AIBA 주관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로서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 제소 등과 같은 기나긴 소송전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승소한다는 보장은 없다. 최상의 경우가 승소겠지만 계약서에 담긴 내용도 잘 모르는 가운데 일개 AIBA 직원이 구두로 한 말을 믿고 계약서에 서명을 한 행위 자체가 미숙하고 부적절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분야 전문가인 장달영 변호사도 자신의 SNS에 “구체적 경위를 몰라 뭐라 할 순 없다”면서도 “국제적으로 스포츠법 원칙 중의 하나가 "Pactasuntservanda".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최근 승소했던 사건 결정에서도 이를 지적”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결국 신종훈이 올림픽 출전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나긴 국제소송전을 각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종훈이 이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두 번째는 이번 기회에 아예 제대로 된 프로복서로 나서는 것이다. 메달 대신 챔피언벨트에 도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위험부담이 있다. 자신이 꿈꾸던 올림픽에도 나설 수 없고, 안정적인 스폰서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로지 실력으로 강자들을 차례로 물리쳐야만 안정적인 선수생활과 경제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이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을 앞세워 프로에 도전한다면 복싱환경이 열악한 국내는 힘들겠지만 일본이나 미국 무대에서 충분히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신종훈이 프로 무대에 데뷔, 몇 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올린다면 조기에 WBA, WBC, IBF, WBO 등과 같은 메이저단체의 상위 랭커로 올라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한국의 복서로서 ‘제2의 장정구’, ‘제2의 유명우’의 존재로서 상품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신종훈이 글러브를 벗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복싱계는 물론 체육계 전체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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