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 김광석은 “이룰 수 없는 이와 사랑에 빠졌을 때, 너무나 사랑하여 이별을 예감할 때,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고 절창했다((<슬픈 노래>). 그런 사랑과 ‘예정된’ 이별을 하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정작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저 세상 사람인 그는 더는 노래하지 않는다.

지난 봄과 여름, 거리를 가득 물들인 촛불을 바라보며, 어느 지인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런 앞날만 보이는 싸움이 눈물겹다”고, 촛불에 달뜬 내 앞에서 울었다. 앞날은 잿빛으로 선연하고, 시곗바늘은 부지런히 돌아 그 앞날이 마침내 오늘이 될 때, 눈앞의 현실은 너무 적나라해서 무참할까? 손쓸 수 없어 무기력할까? 아니면 이미 내다봤기에 무감할까? 그도 아니면 그 모두 다일까? 가을이 되었다.

대통령 후보 이명박이 당선된 뒤, 아니 당선이 유력하던 시절부터, 2008년 한국사회는 이미 예고편이 완성돼 있었다. 그의 살아온 이력과 정치적 배경, 공약, 모순의 언어, 심지어 빤한 거짓말에도 연출 의도는 다 드러나 있었다. 지금 우리는 편집을 마친 본편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본편을 보는 무참함이나, 무기력함이나, 무감함이나, 혹은 그 모든 것이 이미 연출 때부터 그의 계산속에 들어 있었는지 모른다.

<미디어스>가 창간 1주년을 맞았다. 2007년 10월10일,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던 때 문을 열었다. 이명박 후보는 예상대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한국사회도 예상대로 많은 것이 변했다. 하필 (그러나 예상대로) 그 격변의 한가운데 언론판이 있었고, 하필 미디어스는 미디어 전문 매체였다. 어쩔 수 없이 그 정해진 격변의 뒤를 좇거나 빤히 보이는 앞날을 내다보며, 기록해왔다. 격변은 따라가기에 벅찼고, 예상은 무섭도록 맞아떨어졌다. 1년이 지났다.

미디어스는 창간 1주년에 맞춰, 1년 사이에 급변한 언론판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언론판의 변화는 규모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몇 사람에 대한 인물사로만 기록·정리되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훨씬 더 큰, 보이지 않는 변화로 이어지고, 몇몇 인물의 부침은 언론판 내부자는 물론, 언론과 닿아 있는 외부의 모든 존재, 독자와 시청자에게까지 영향이 미친다. 그리고 언론판 내부 권력 지형도를 바꾸려는 자로서도 전혀 뜻하지 않게, 언론판 자체의 개념과 범주까지 변하게 한다. 상전벽해다.

미디어스는 물갈이된 얼굴만 비추지 않고, 그 얼굴이 바꾼 조직과 의사 결정 구조, 문화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관심을 끌지 못하던 자리에 소리소문 없이 앉은 이가 언론을 능욕할 수 있게 된 사례도 분석할 것이다. 언론과 언론인이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들의 위상 변화, 사회와의 관계 변화 등도 주목할 계획이다. 방송판에 불어닥친 돈놓고 돈먹기 바람도 비판적으로 접근하겠다. 언론기업과 언론인의 전유물이었던 미디어와 발언권이 사회전반으로 확장되는 흐름에도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이별했더라도 지나간 사랑은 재앙이 되지 않으며, 다시 사랑하지 못할 도리도 없다. ‘실패에의 의지’마저 내려놓을 때, 그때 비로소 무참함이나, 무기력함이나, 무감함이나, 혹은 그 모든 것이 현실이 되리라. 이제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미디어스의 이번 기획이 찾고자 하는 것은 ‘슬프더라도 희망찬’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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