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강준만을 좋아한 적이 있었다. 우연히 그가 낸 책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를 알게 되었고 하루 이틀 사이에 나는 그 시리즈를 거의 다 읽게 되었다. 책은 정말로 깊고 넓은 시간대를 세세히 다루고 있었다. 두꺼운 책의 분량은 한 사람이 다 썼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고, 한동안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책에서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다. 영남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호남 출신이라고 공연히 차별받는 사람, 야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무시 받는 사람, 아버지는 무조건 여당을 지지해 그게 못내 불편한 자식. 그때서야 한국에 지역 간의 차별과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왠지 모르게 영남에 대해서 조금은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났다.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라온 고향은 전북 군산이지만 딱히 군산에서 오래 산 것도, 그리고 영남에 많이 가본 것도 아니었는데 이미 마음속에는 어떤 전선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한 인식은 한국을 사는 사람 모두에게 존재한다. 한 쪽에서는 '홍어'라는 말을 쓰면서 전라도 지역을 범죄와 반역과 '빨갱이'의 도시로 낙인찍기에 바쁘다. 다른 한 쪽에서는 전직 대통령들의 고향과 경제 발전의 현황, 그리고 '고담' 등의 수식어를 쓰면서 경상도 지역을 미개하고 천박하며 답답한 '수꼴'들의 지역으로 보기 마련이다. 특히 최근 일련의 선거에서 전라도, 경상도가 각각 특정 정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한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서로를 흉보기 좋은 소재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는 상황은 한편으로 각자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러한 기록은 호남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있어도 영남 지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호남의 경우 늦은 산업화에 낙후된 지역 경제, 여기에 5.18 광주민주화항쟁 등 오랜 시간 동안 아픔을 겪었던 전력이 있었기에 그러한 자기 인식이 다른 지역보다 클 수밖에 없다는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분명 호남에 사는 사람들만큼 영남에 사는 이들 역시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는 있었을 텐데, 그러한 기록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어딘가 묘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최근 출간된 김수박의 만화 <메이드 인 경상도>는 그런 점에서 참으로 반가운 작품이다. 작가는 대구에서 태어나 약 30년 동안 고향에서 살았고, 40대가 된 지금은 경북 구미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 경상도 토박이인 셈이다. 작가는 '토박이'로써 살아왔던 과거 자신의 기억을 반추하며 조금씩 '경상도 사람'에 대한 정체성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물론 다짜고짜 처음부터 깊숙이 찌르지는 않는다. 김수박은 일종의 '사소설'같이 작가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만든 만화를 계속 만들었고,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작업 경향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사소설'과 차이가 있다면 단순히 자기 자신으로 깊게 침잠하는 대신 경험을 토대로 더 멀리 바라보면서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러한 경향을 가져왔던 작가인 만큼 작품 역시 한지에 먹물이 조금씩 퍼지는 것처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그 과거들에서 느꼈던 공통점을 통해 경상도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이의 과거가 그렇듯 작가의 과거 역시 희로애락이 모두 섞여 있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를 시절 그에게는 주변 사람들이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그의 성격과 과거를 조금씩 조립하게 된다.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존재는 그의 아버지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에 유도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키가 작다는 이유로 결국 중도에 포기하고만 아버지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한다. 보호세를 명목으로 돈을 뜯으려고 하는 동네 깡패를 주먹으로 굴복시키게 만드는 등 그는 자기의 앞날을 방해하는 대부분의 존재들을 폭력으로써 해결한다. 그렇게 주먹으로 살아왔던 사나이인 만큼 가족과 정부에 대한 태도도 이와 비슷해진다. 강하게 살아남으라는 이유로 작가를 포함한 자식들에게 매우 엄하게 대하고, 등화관제 같이 정부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던 권위주의적 움직임에도 그는 매우 시큰둥한 태도를 취한다. 작가는 그렇게 살아왔던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아하고 조금씩 거리를 두려 하지만, 작가는 결국 그러한 행동이 '생존'에서 나온 것임을 알기에 마냥 떨어지려는 대신 계속 대화를 하려 애쓴다.

그 다음으로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은 그의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이다. 각자 나이도, 성격도, 행동도 조금씩 다르지만 그들은 제각기 지금 현재를 살기 위해 나름대로의 생존 투쟁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것은 작가 역시 동일하다.) 그러한 모습들이 어렸을 적 세상 물정을 잘 모를 때에는 그저 모든 게 흥미로워 보이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게 되면서 아름다웠던 모습들은 현실적이고 차가운 모습들로 바뀌어 나간다. 주먹을 쓸 줄 알았던 아이는 어느새 깡패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패거리를 이루게 되고, 너무나도 일찍 가난과 생존을 배웠던 아이는 자신들의 먹고 살길을 찾기 위해 한 박자 일찍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만다. 같이 부대끼고 살았던 마을 사람들도 어른이 되어 돌이켜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 역시 각자의 생존 경쟁을 하고 살았던 이들이었다. 이 모든 경험들과 과정들은 작가를 '경상도 사람'으로써 규정짓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내부에 쌓아두는 일종의 사회화 절차로써 자리를 잡는다.

▲ 작가의 아버지는 때로는 엄하고 폭력적이지만 때로는 자식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며 작가에게 많은 감정을 낳게 만든다. 그러한 모습은 작가의 삶에 있어 무수한 영향을 주었다. (사진제공=창비)

만약 작가에게 그러한 경험만 있었더라면 작가는 자기 자신과 공간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대신 그저 '한 명의 경상도 사람'으로써 자기 자신을 체화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금씩 경상도라는 사회에 익숙해지던 그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두 명의 사람, 그리고 한 개의 지역이다. 학교 양아치가 작가의 친구 간 이간질을 통해 싸움을 부추기려 할 때 스스로 싸움을 거절한 친구, 학원에서 만나 같이 '노찾사'를 이야기하고 작가에게 4.3 사건과 5.18에 대해서 생각을 물어봤던 대학생 선생님. 그리고 사업차 돌아다니던 아버지와 함께 처음 땅을 밟아보고, 아버지 몰래 다큐를 통해 실상을 접하게 되었던 광주라는 공간. 이들은 지금까지 그저 사회와 같이 흐르고 쓸려갔던 작가에게 처음으로 생각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그리고 작가는 비로소 자기가 살고 있는 '경상도'라는 공간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수적이다. 배타적이다. 텃세가 세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폭력적이다. 무뚝뚝하다. 인맥 문화가 강하다 등등에 대한 경상도에 대한 수식어는 분명 '경상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찌 보면 해방 이후를 살아왔던 사람들 대부분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가졌던 한국인 대부분의 성격일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사는 공간에 따라 분명 어떠한 차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 차이는 조금씩 커져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분열하고 가르는 굴곡이 되고 만다. 작가는 그 이유를 사람들의 습속에서 찾는 대신 자신의 어린 시절 친구 사이를 이간질하고자 했던 양아치에서 찾는다. 애초부터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의 특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위적인 요인과 지리의 차이로 인해 근래 새롭게 태어난 현상인 것이다. 마치 김치에 고춧가루가 원래 들어가지 않았듯 '전통'이라 전해진 것 대부분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처럼, '경상도'에 대한 어떤 인식 또한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작가는 거기에서 안주하는 대신 그러한 인식이 굳어진 계기에는 분명 경상도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말하지 않았던 것에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경상도 사람'인 자신으로써, 그리고 같은 경상도 사람인 가족들에게 계속 묻고 말하는 것을 시도한다. 그는 아버지에게 그동안 광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살아야만 했는지를 묻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듣는다. 작가의 아버지는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고 있었고,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과거의 일들을 정당화한다. 분명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존을 이유로 계속 과거부터 쌓여진 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결국 더 큰 굴곡을 낳는 길이 되고 만다. 작가는 그러한 문제에 침묵하고 가만히 있는 대신 계속 기억하고 계속 말하는 것이 해결책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그 주장대로 그는 <메이드 인 경상도>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재생하고 그 기억을 현재에 투사하여 변화를 모색한다. 그가 지금까지 그려왔던 만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여전히 인터넷에는 어떤 집단이나 조직의 특성을 일반화하여 비난하는 일이 많다. <메이드 인 경상도> 역시 창비 문학블로그 '창문'에 연재되는 사이에 몇몇 독자들이 작품에 의심의 눈초리를 겨누기도 했었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특성을 무기로 공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불안함 역시 작가의 작품이 그러한 무기가 되지 않을지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가만히 있는 것은 현상 유지는 될 수 있어도 본격적인 변화는 낳지 못한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서 계속 말을 해왔던 것처럼, 입을 다무는 대신 조금씩 입을 열고 말을 할 때 일말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까. 비록 조금은 초라하고 궁색해 보일지라도 결국 말을 통해 생각을 쌓아올릴 때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이 놓인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2014년 10월 30일 발행, 창비.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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