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21년 만에 사상 초유의 출제 오류 사태가 빚어짐에 따라 수능체제의 근본적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해서는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일보>는 25일자 사설을 통해 “출제에서 사후까지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만큼 수능제도의 혁신은 당연히 필요하다”면서도 “교육당국에 대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신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조변석개하는 제도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일보>는 “개혁에만 방점을 찍어 섣불리 큰 틀을 흔들 경우 대란을 피할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언뜻 보면 수능제도 혁신을 주문하면서도 큰 폭의 개혁에는 반대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

▲ 한국일보 25일자 사설.

<한국일보>의 이러한 스탠스는 수학능력시험 체제의 개선을 어떤 방향으로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다른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는 “일각에서는 대학별 본고사를 허용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사교육에 쏠린 입시경쟁만 가열시킬 뿐”이라고 지적해 이런 판단을 뒷받침하고 있다. 수능체제의 개선을 통해 수능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그럴 경우 수능체제가 극복하고자 했던 과거의 입시체제가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어떤 경우든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줄이기라는 중심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사설을 끝맺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줄이기는 그 자체로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 할 목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수능을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간주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어찌됐든 수능은 입시제도의 한 축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 동아일보 25일자 사설.

대표적인 예가 EBS 교재와의 연계 문제다. 수능과 EBS 교재와의 연계는 이번 출제오류 사태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EBS 교재 자체에 포함돼있는 오류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는 같은 날 사설을 통해 수능과 EBS의 연계정책은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처음 시행됐고 2010년 이명박 정부는 EBS 교재에서 70%를 출제하는 정책을 발표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과연 지난 10년간 사교육비 경감에 얼마나 효과를 거뒀는지 철저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경향신문 25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을 통해 “수능이 애초 도입 목표였던 통합적 사고력 평가가 아니라 ‘문제풀이 기술 테스트’가 됐다는 비판을 듣는 데는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단지 출제오류의 문제를 넘어서서 수능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 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수능이 ‘문제풀이 기술테스트’가 됐다는 비판은 앞서 언급한 EBS 교재와의 연계 문제에서도 제기되는 바다. 일부 학생들은 EBS 교재의 영어 지문을 한글로 번역한 후 이를 통째로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를 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어차피 수능이 EBS 교재 안에서 출제되니 문제 출제 의도 등과는 관계없이 무조건 EBS 교재 내용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애초 수능의 도입 의의처럼 ‘자격고사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박도순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25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수학능력시험이 처음에는 교수와 학생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능력, 학문을 하는 데 꼭 필요한 논리적 사고력 등을 중심으로 탈교과적이고 범교과적인 출제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후 수능의 성격이 변했다”면서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고 한편으로 그것과 상충될 수밖에 없는 선발고사로서의 성격을 강조하게 되니 그때 그때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애초의 의도는 수능이 최소한의 자격시험이 될 것을 염두에 뒀지만 이후 정책이 바뀌면서 현재와 같은 문제가 나타나게 됐다는 지적이다.

▲ 한겨레 25일자 사설.

<한겨레>는 이날 사설을 통해 전교조의 수능 자격고사화, 교총의 국가기초학력수준평가로의 전환 요구에 대해 “문제풀이 교실로 전락한 공교육의 황폐화와 학생들을 한두 문제 차이로 줄세우기 하는 제도의 폭력성 등에 대한 우려는 물론이고 객관식 문항으로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평가할 수 없다는 본질적 성찰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그러면서도 “분명히 해둘 것은 새로운 제도의 모색이 ‘본고사 부활’이라는 과거 회귀로 흘러선 안 된다는 점”이라고 못박았다. <한겨레>가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실제 수능체제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사실상 본고사 부활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25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해마다 실패가 반복된다는 것은 지금의 수능 제도가 단단히 고장 났다는 말”이라면서 역시 근본적 해결책 모색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다른 신문들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를 낸다. <조선일보>는 1991년 교육자치제 시행 이후 교육부가 대학 교육 만을 맡게 돼 정원 조정, 연구비 배분 등까지 대학 행정에 시시콜콜 개입하는 일이 늘었다면서 “교육부가 주도하는 개혁안은 결국 교육부가 대입 간섭 권한을 놓지 않는 틀 속에서 만들어질 게 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일보>는 “수능이 과연 필요한지부터 대학의 선발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까지 근본적인 대입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수능을 폐지하고 대학이 알아서 학생을 선발하는 입시제도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대목으로 읽힌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방식이야 말로 과거 입시제도의 폐단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는 앞서 인용한 <한겨레>의 사설 내용에서도 되풀이해서 지적되는 내용이다. <한겨레>는 “대학들이 알찬 교육을 통해 인재를 길러내기 보다는 입시의 높은 변별력에 기대어 이른바 상위권 학생들을 선발함으로써 대학 서열구조를 유지하려는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대학의 선발 자율성을 확대하면 더 왜곡된 입시제도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실제로 한국사회의 근본적 부분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대학 서열구조가 해소되지 않으면 수능체제의 근본적 개선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 중앙일보 25일자 사설.

대학 서열구조의 해체는 급진적 방법론을 동원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런 저런 뜬구름 잡는 논쟁은 그만하고 그냥 출제오류나 바로잡자는 주장도 나온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수능개편의 핵심은 출제 오류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 데 있다”면서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수능 폐지 또는 자격고사 전환은 평가원이 풀어가야 할 개편의 범위에서 한참 벗어난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출제 오류를 이유로 수능을 폐지하거나 자격고사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마치 빈대를 잡으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그러면서 EBS 교재가 아닌 교과서 지문과 내용을 바탕으로 한 출제 방식과 학맥과 전공으로 얽혀있는 ‘수능마피아’ 인적 구성 문제 해결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출제오류를 바로잡더라도 여전히 현 입시체제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앙일보>는 근본적 문제에 눈을 감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타협인지 단순함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