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 한 카페에서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곰신’ 카페 회원 14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곰신’ 카페는 회원 수 49만명이 넘는 국내 최대 군 관련 사이트로 꼽힌다. 이날 간담회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문재인 의원 측이 국정감사를 준비하면서 ‘곰신’ 카페에 요청하여 성사되었다고 한다.

간담회는 성격상 문재인 의원이 주로 듣는 쪽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곰신’ 카페 회원과의 간담회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칭찬할 일이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된 길지 않은 문재인 의원의 발언 중 아쉬운 부분이 보인다.
하나는 문재인 의원이 “우리 세대들은 학교 다닐 때부터 벌써 단체 기합이니 이런 걸 너무 겪어서 그런 일에 대해서 훨씬 담담하게 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위계질서와 권위주의를 싫어하고 개성이 강하다”며 “군대가 기강이 서지 않아서 전투를 할 수 있나 의문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새로운 세대들의 성향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부분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23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홍대 앞 한 애니메이션 카페에서 `사랑하는 군화가 못한 말, 곰신이 대신합니다'란 주제로 곰신 카페 회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세대들은(…) 훨씬 담담하게 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그렇지 않다)”라는 진술에 일말의 진실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발언은 ‘요즘 세대’가 ‘군기’가 빠져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 있으니 군기를 강화해야 한다는 어떤 보수적 인식을 정당화해줄 수도 있다.
막상 통계를 찾아보자면 그 세대라고 담담하게 임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을 그 당시 군대이기 때문에 그렇다. 문재인 의원은 1953년생이니, 이십대에 유신시대를 거친 유시신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의원은 10월 유신이 일어난 1972년 경희대 법대에 진학해서 대학생들의 유신반대투쟁에 함께 했고, 구류‧구속‧제적 및 강제징집의 과정을 거쳐 1975년에서 1978년까지 군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5년의 군대 사망자(자살자+사고자) 숫자는 1555명이다. 1976년은 1360명, 1977년은 1471명, 1978년은 1342명이다. 유신정권기(1973~1979)의 연평균 군대 사망자 숫자를 구하면 1403명이다. 이후 5공시기(1980~1987)의 해당 통계는 평균 740명, 민주화 이행기(1988~1997)의 해당 통계는 386명하는 식으로 현저하게 낮아져 왔다.
▲ 2013년 3월 9일자 한겨레 토요판 한홍구 칼럼에 실린 표
결국 대표적인 유신악법인 ‘군사기밀보호법’이 사실상 군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기밀 범주에 묶어놓았던 것처럼 독재정부 시기 사람이 죽어나가도 신문에 기사 한줄 나지 않았다면, 민주화 이행기 과정에서 민간사회가 점차 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기 때문에 사망자 숫자가 준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의원의 발언을 섬세하게 다시 쓴다면, “우리 세대들은 학교 다닐 때부터 벌써 단체 기합이니 이런 걸 너무 겪었는데도 당시 군대가 너무 포악스러워 많은 이들이 죽어나갔고 보도도 되지 못했다. 요즘 세대는 위계질서와 권위주의를 싫어하고 개성이 강해서 많이 개선된 군 생활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배운다면 군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의 폭이 넓어질수록 문제가 개선될 것이다”라고 발언했어야 옳다.
민주화 이후의 평균 사망자 숫자는 어떻게 될까. 김대중 정부시기(1998~2002)의 통계를 내면평균 196명, 노무현 정부시기(2003~2007)를 보면 평균 132명, 그리고 통계가 나와 있는 바 ‘이명박근혜’ 정부시기(2008~2013)를 보면 125명 정도다. 체감상 보수정부 군 인권이 더 악화된 것 같지만, 통계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물론 군 사망사 숫자 감소의 폭이 확실히 줄었기에, 만약 ‘민주정부 3기’가 들어섰다면 100명 이하로 줄일 수도 있었을 거라고 주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감소 추세가 둔화된 것일 뿐 역진한 것은 아니다. 최근 군 문제가 거듭 보도되는 것은 군인권센터의 활동과 더불어 보도기능을 가진 매체의 숫자가 확연히 늘어났기 때문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종합편성채널의 탄생이 가진 단 하나의 순기능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군개혁 조치가 후퇴하고 있다거나, 병영폭력의 양상이 다른 방식으로 변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섬세하게 검토해볼 지점이 있을 것이다.
▲ 국방부에서 발표한 최근의 군 사망사고 현황. 사망 사유를 곧이 곧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총계를 믿지 않기도 어렵다.
또 문재인 의원은 사병 월급 문제에 대해선 “의무복무라는 게 국방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지 그 기간에 장병 노동력을 무상으로 사용한다는 건 아니다”라며 “제대로 노동에 상응하는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전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장래에는 모병제로 가야 한다”는 발언은 당장의 정책적 대안이라기 보다는 장기적 지향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성급해 보인다. ‘모병제’라는 발언이 너무 큰 화두라 이렇게 될 경우 문재인 의원의 모든 발언이 지워지고 ‘모병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난 201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모병제 공약을 내세운 것은 문재인 후보가 아닌 김두관 후보였다. 그리고 김두관 후보의 공약은 예산문제에서도 설익었으며, 징병제와 모병제의 장단점을 제대로 고민하지도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24일자 한겨레 6면 기사
문재인 의원은 국방위원회 소속이다. 장기적으로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모병제’라는 단어 하나에 빨려 들어가는 언론 보도를 양산하기 보다는, 현 시기 군대의 문제의 맥을 하나하나 짚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비록 모병제가 신념이라 하더라도 모병제와 징병제 문제 역시 각 제도의 장단점을 비교하는 차원에서 말했다면 고민의 깊이가 더 드러났을 것이다. 현재의 모병제는 군인권문제 개혁의 방벙론이라기 보단 강도 높은 군인권문제 개혁을 통해 나중에야 전환을 모색해볼 수 있는 정책에 가깝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문재인 의원실은 군개혁 문제에 관해 물론 충분히 고민했겠지만, 징병제-모병제 문제나 징병제 개혁 문제에 있어 어떠한 논점이 가능한지가 궁금한 독자들은 아래 <미디어스> 기사들을 참조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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