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대한 배상 문제가 논란거리다. <한겨레>는 24일자 1면에 <당·정, 세월호 배상 아닌 ‘보상’ 가닥…‘국가책임’ 회피>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정부 여당이 ‘세월호 피해구제대책 특별법’ 초안에 ‘배상’이라는 용어를 넣지 않고 내용상으로도 배상안을 배제하거나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 기사에서 국회 농해수위 관계자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되려면 법원에 의한 최종 결정이 나와야 하는데, 현재 국가 행위와 관련해 진행되는 재판은 해양경찰 소속 고속정장 정도”라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한겨레>는 기획재정부가 피해구제 대상을 ‘인적피해’로 한정하고 상당수 피해구제 사업을 ‘강제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으로 넣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하루동안 이를 문제삼으며 정부 여당을 비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수석대변인은 같은날 오전 “세월호 참사의 총체적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최종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라며 “그런데도 세월호 참사 피해대책에서 ‘배상’이 아닌 ‘보상’을 명기한 것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치부하려는 이 정부의 본심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기홍 대변인은 “새정치민주연합은 줄곧 사고수습 과정에서 정부의 과실이 있었던 만큼 불법 행위에서 비롯된 손실을 보전하는 배상이 더 적절하다는 것을 주장한 바 있다”면서 “대통령이 인정한대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통감하고 ‘배상’의 책임을 인정하는 피해구제 대책을 세울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도 밝혔다.

박완주 원내대변인도 같은 날 오후 “세월호 참사는 인재(人災)이며, 관재(官災)”라면서 “지난 7~8월 세월호특별법 협상에서 배상 필요성에 대해서는 논의한 바 있고, 지난달 31일 여야 합의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논의’라고 명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완주 대변인은 “새누리당은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해볼 일”이라면서 “‘세월호 피해구제대책 특별법’에 ‘배상’을 넣지 않는다는 것에 절대 반대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 2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영현봉송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의 이러한 공세에 새누리당과 정부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월호 피해구제대책 특별법’의 정확한 내용은 25일 ‘세월호 참사 배상 보상 논의 2+2 태스크포스’ 2차 회의에 안이 제출돼야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배상’이라는 문구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배상이나 보상 등의 표현 대신 ‘피해구제’라는 표현을 쓰되 구체적인 법안 내용에서 이견을 좁혀가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현재 상황에서는 ‘배상’과 ‘보상’ 용어의 사용을 통해 국가의 책임을 어느 정도로 인정할 것이냐가 쟁점이 되고 있으나 앞서 국회 농해수위 관계자의 주장처럼 법적인 쟁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제1야당이 주장하는 ‘국가의 책임’에는 도의적, 정치적, 법률적 측면이 모두 달리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참사가 국가의 책임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대통령이 눈물을 흘렸다거나 새누리당이 지금까지 ‘배·보상’이라는 용어를 써서 논의를 해왔다는 사실 등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것이 법률적 차원에서 배상에 대한 책임의 근거로서 제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월호 참사에 국가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배상과 보상의 문제는 법률상의 문제일 뿐이며 정부와 여당이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이 배상이든 보상이든 관계없이 피해자들에 대한 최대한의 지원을 해줄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세월호의 실소유주로 언론에 보도돼왔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그 일가들의 은닉 재산을 환수해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에 투입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경로를 통해 공공연히 밝혀왔다. 하지만 유병언 전 회장이 사망하는 등 은닉 재산 환수 등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에도 일정한 제약이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 또한 제기돼왔다.

과거 성수대교 붕괴 사고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또는 서해훼리호 사고 등을 보면 사고의 배·보상과 관련해 각 주체들이 책임을 나눈 사례가 있다. 이를테면 일단은 국가나 지자체 등이 자체 예산에 국민성금, 재해의연금을 더해 보상에 재정을 투입하고 사후에 선사나 시공사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보통 선사나 시공사 등은 충분한 배상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종국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경우 시공사인 동아건설 측이 보상액의 반을 조금 넘는 금액밖에 지급하지 못했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경우도 구상권 청구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해운조합의 배상책임보험이나 피해자들의 여행자보험 등을 통해 일정 부분 보상에 대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어 앞의 사례들 보다는 상황이 비교적 낫지만 구조와 수중수색에 상당한 재정이 투입됐거나 투입되어야 하는 데다가 앞으로 인양까지 하려면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즉, 정부 여당이 굳이 논란을 만들면서까지 ‘배상’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에는 이런 사정이 있는 것이다.

정부 여당의 이러한 행태는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과정에서 유가족들과 새누리당 의원들이 수차례 마찰을 빚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지칭해 문제가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 불거진 세월호 선체 인양에 대한 찬반논란도 결국은 세월호 참사 관련 수습에 투입된 재정을 최소화해보겠다는 정부 여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은 돈의 문제인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9일 오전 국회 시정연설과 여야 지도부 회담을 마치고 국회 본청을 나서다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세월호 유가족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것은 돈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 여당이 세월호 참사 직후 형성된 전국민적 추모 열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리드해갔다면 지금 이런 식의 모양빠지는 행보를 할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결국 정부의 재정 투입 우선순위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조정되는 것인데 정부 여당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이 서로 대립적 관계를 유지해오지 않았다면 이 시점에서 적절한 보상 방안 및 규모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모하는 과정을 밟아나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정조사 과정에서부터 여야가 대립하는 차원으로 갈등구조가 고정되면서 정부 및 여당과 야당, 유가족들이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제 정부 여당이 돈과 관련한 얘기를 꺼내면 야당이 반발하지 않을 방법이 없어졌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정부 여당은 유가족들에 대한 지능적인 ‘작업’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지난 과정에서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통해 유가족들이 과다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흑색선전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됐으므로 이미 그 ‘작업’의 효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정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할 정부가 이런 저런 술수나 써야 하는 지경까지 내몰렸다. 박근혜 정부의 조악한 정치력이 만든 오늘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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