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썰전>은 제주도로 간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우리가 알만한 연예인들이 이른바 '공기 좋고 물 맑은' 제주도로 이주했으며, 그렇게 연예인들을 비롯한 다수의 사람들이 제주도로 이주를 선택한 덕분에 요즘 제주도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솟았으며, 더 이상 제주도는 도시 사람들을 피해 호젓하게 은자의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니란 얘기다.

이렇게 조용한 섬 제주도를 북적이게 하고 땅값을 들먹이게 만든 요인이 연예인들 말고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11월 22일 KBS1을 통해 방영된 <다큐공감>은 제주도로 몰려드는 새로운 교육 열풍을 다루었다.

제주도 이주민의 상당수는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이다. 제주도 중산간 지역 송당 초등학교 아이들의 등굣길을 맞아주는 이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교장선생님이다. 육지에서 전학 온 학생이 18명이나 되지만 그럼에도 송당 초등학교 전교생은 63명, 한 학년 학급이래 봤자 열 명 남짓이다. 그래서 수업은 거의 선생님과 일대일 식으로 진행되고, 수업 후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목관악기, 골프, 외국어 수업을 다양하게 누릴 수 있다. 굳이 사교육을 찾을 이유가 없다.

워킹맘이던 엄마 때문에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해야 했던 엄마와 아이는, 이제 이 학교의 방과후 교사와 학생으로 만난다. 그 시간이 끝나면 아이는 자전거로 제주도의 마을을 달리고, 감나무에 오르고, 엄마와 함께 마당에서 딴 감을 나누어 먹는다. 서울에선 꿈도 꾸지 못했던 삶이다.

아이의 학교를 제주도로 옮긴 것은 서울에서는 선택할 수 없었던 자유로운 아이의 삶이 목적이다. 제도교육의 틀 내에서 아이를 포용해 줄 수 있는 학교, 더 이상 학원을 뺑뺑이 돌리지 않아도 되는, 경쟁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아이의 숨겨진 소양을 키워줄 수 있는 학교. 그런 학교를 찾아 학부모들은 기꺼이 바다 건너 이곳 제주까지 '교육 디아스포라'를 감행한다.

건강 때문에 옮겨온 경우도 있다. 요즘 학부모들에게 아토피, 비염 등 도시 공해로 찌든 삶이 낳은 아이들의 질병은 병치레 수준이 아니다. 아토피가 심한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로 학교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또 선생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반 아이들과의 교류에서도 자연히 뒤처지고 성격조차도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제주도 작은 학교로 전학 온 사랑이네도 같은 경우이다. 아토피로 인해 학교생활조차 여의치 않았던 사랑이는 제주도로 와서 아토피가 나았음은 물론, 그간 위축되어 드러나지 않았던 창의성이 작은 학교에서 만개했다. 이렇게 한 학급에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 때문에 방치되던 아이들은 작은 학교에서 그들의 숨겨진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新맹모 삼천지교'라 아름답게 지칭된 제주도로의 일련의 교육 '디아스포라'는 크게 보면, 한계에 봉착한 한국 제도교육에 저항하는 '교육 노마디즘'의 한 흐름이라 볼 수 있다. 경쟁 속에서 일류가 되지 않고서는 좋은 상급 학교에 도달할 수 없는 교육 체제에 불만을 가진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에 맞는 교육 제도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왔다. 그것이 때로는 해외 유학이 되기도 하고, 대안 학교라는 제도권 밖 교육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제주도'가 살기 좋은 곳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해외 유학 혹은 대안 교육을 선택했던 학부모들에게 제 3의 대안으로 '제주도'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외 유학을 갈 만큼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면서도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자연이 있고. 대안 학교라는 제도 밖의 불안감을 상쇄시킬 만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관심 있게 지켜봐 줄 작은 학교가 바로 그곳 제주도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큐 공감>이 말하지 않은 요소들 또한 그곳에 존재한다. 그래도 혹여 아이들의 공부가 뒤처질까, 학부모가 나서서 방과후 교사로 외국어, 악기, 골프 같은 다양한 특기를 가르치고, 그것도 부족하여 저녁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영어 교육을 시키는 등 제도 교육 속 학부모의 교육열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제주도에 생긴 '국제 학교'는 제주도라는 교육 환경에 매력을 더하는 요소라는 점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제 아무리 집값이 도시에 비해 싸다지만, 전원의 삶을 누릴 정도의 여유를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 배경 또한 드러나지 않지만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다큐에서 보면 아버지와 함께 온 가족이 도시의 삶을 접고 여유로운 제주의 삶을 선택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이다. 즉 이 아이들의 여유로운 제주 생활을 위해 다른 유형의 기러기 아빠가 된 것이다.

비록 외국에 비해 자주 볼 수 있다지만 기러기 아빠까지 감수하면서 선택한 제도로의 교육 러시 덕분에, 제주도 각 마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학부모들로 인해 집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대기 학부모가 50여 명 넘는 곳도 있다.

전국에 폐교 위기에 놓인 작은 학교가 오직 제주도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며 제주도로 가야 하는 것일까? 중상층 이상의 경제적을 가진, 기러기 아빠의 삶을 선택하면서라도 아이들의 교육을 중시하는 교육열을 가진 학부모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바로 제주도의 작은 학교이다.

과연 이것이 너도 나도 살고자 찾는 트렌드로서의 제주도, 그리고 다른 유형의 과열된 교육열인지, 그게 아니면 진정 대안적 교육 형태에 대한 욕구인지, 혹은 그것들이 혼재된 과도적 형태인지 그 판단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싶다. 하지만 제주도가 유행의 흐름으로 피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내 아이를 조금 더 행복한 환경에서 교육시키고자 하는 학부모들의 '교육 노마디즘'은 '경쟁 위주'의 현 교육 체계에서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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