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활자가 사멸하는 동시에 활자가 번성하는 시대입니다. 책과 신문은 늙고 병들었지만, 인터넷 신천지에선 활자가 무한증식해갑니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글쓰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습니다. 문자와 카톡 메시지를 시시콜콜 쓰고 보냅니다. SNS에 로그인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울립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키보드 배틀’을 벌이고, 공들여 치장한 블로그 포스트로 나만의 인터넷 도서를 간행합니다. 글쓰기는 삶과 함께 걸어가고, 글쓰기를 통한 자기표현의 욕망도 커집니다. 1인 1표의 민주주의 시대를 지나, 1인 1지면이 보장되는 글쓰기의 민주주의 시대가 왔다면 과장일까요?

어떻게 하면 나를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좀 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도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갑니다. 숱한 글쓰기 강좌가 성황을 이루고, <고종석의 문장> 같은 책이 절찬리 각광받는 것이 증거일 테지요. 그런 세태에 한 발 얹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그간 몸으로 익힌 ‘글쓰기의 자기 원칙’ 열두 가지를 추려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 글은 “이렇게 하면 나처럼 잘 쓸 수 있다”고 으스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렇게 글쓰기를 훈련했노라”는 고백에 가깝습니다. 같은 눈높이에서, 구체적이고 실전적인 조언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듭니다.

1. 문장을 짧게 쓴다.

긴 문장과 짧은 문장 사이 우열관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길든 짧든 좋은 문장이 좋은 문장이겠지요. 그런데 긴 문장으로 좋은 문장을 쓸려면 어렵더군요. 글쓰기는 머릿속 생각을 술술 구체화하는 기능입니다. 문장의 꼬리가 길면 호흡이 엉키고 문법이 틀리고 주술이 어긋나기 쉽습니다. 문장을 짧게 치면 장황한 서술이 없으므로 깔끔한 단문으로 짜인 글을 수월하게 쓸 수 있습니다. 문장의 호흡은 스타일의 문제입니다만,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짧게 쓰는 연습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2. 표현이 아니라 생각을 쓴다.

글쓰기의 최소원칙은 간결 명료함일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문체로 지은 논리의 성채는 눈부십니다. 그것은 쉽게 이룰 수 없는 언어적 기예입니다. 표현과 논리는 함께 갈 수 있고, 그럴 때 '명문'이 탄생하는 것이겠으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사태는 피해야겠죠. 벌판에 처음 나선 초짜 사냥꾼이라면 한 마리만 쫓는 게 현명할 듯합니다. ‘내 글이 어떻게 보일까’에 신경 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생각을 푼다’는 느낌으로 글을 씁니다. 꼭 정치하게 쓰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강 아귀가 맞는 말을 찾아 맞춘다는 기분으로, 문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편안하게 서술합니다. 세련된 표현에 얽매이다 보면, 내용은 뒷전이 되고, 어느 순간 말을 쥐어짜 낸다는 느낌이 들지요. 자기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보그체'가 탄생하는 겁니다. 한 가지 더, 지나치게 표현에 공을 들이면 글쓰기가 고달픈 일이 되어버립니다. 무슨 일이든 흥미를 붙여야 에너지가 생기는 법인데, 낱말 하나 비유 하나를 고심하다 보면 글 쓰는 리듬이 툭툭 막히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저는 이 단계를 웬만큼 숙달한 후에 문장을 꾸미는 연습을 했습니다.

3. 많이 생각한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글쓰기는 생각을 활자로 형상화하는 작업입니다. 머리에 든 것이 있어야 글이 나올 것이고, 좋은 생각이 있어야 좋은 글이 나오겠지요. 구체적 훈련 방법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하나. 사회 현상이든, 문화 현상이든, 생활 주제이든, ‘덕후질’ 소재이든, 하나의 대상을 정해놓고 원인과 결과, 의미와 관계를 꼼꼼하게 다각도로 따져봅니다. ‘안철수 현상’은 무엇일까, 왜 생겼을까, 누가 만들었을까, 어떻게 가능했을까, 시사점은 무엇일까, 그 현상의 대안은 무엇인가, 거기서 도출할 수 있는 더 큰 의의는 없을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생각을 뒤쫓는 게 중요합니다.

둘. 하나의 논점을 상정하고 가상의 논박을 진행합니다. 주장하는 사람도 나고, 반박하는 사람도 나입니다. “안철수 현상은 민심의 반영이다. -> 아니다, 결국 지지율이 꺼지지 않았는가. -> 그렇다 해도 그토록 센세이션한 인물론은 없었다. -> 그럼 2002년 노무현 현상은 뭐냐? -> 안철수는 무소속 정치인이었다. 노무현과 다르다. -> 그러고 보니 새정연 창당하고 '무소속 정치인'에서 '기성 정치인'이 된 후로 날개가 꺾였네? -> 결론 : 그렇다면 안철수 현상의 힘은 정치혐오 정서와 '새 인물'에 대한 열망이었다.” 이렇게 끈질기게 자기 논리를 검증/발전해봅니다. 사유를 끌고 가는 핵심 고리는 왜? 라는 질문입니다.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하는 힘'에 근육이 붙은 것을 확연히 체감합니다.

4. 필사를 하지 않는다.

필사는 작문이 아니라 ‘필기’입니다. 남의 생각, 남의 표현, 남의 스타일을 복사하는 가치생산이 없는 작업이지요. 글쓰기는 내면을 표현하는 창작 작업입니다. 좋은 글의 생명은 개성이겠지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으나, 남의 것을 모사하는 것 보다, 내 속에 있는 걸 하나라도 꺼내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좋은 글을 몸에 새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긴 품을 들여 손으로 베끼는 것보다 꾸준하게 많은 글을 숙독하는 것이 효율적이더군요. 그 글에서 본 표현을, 내 글에서, 내 방식대로 흉내 내는 거지요. 필사는, 나름의 의미가 있겠으나, '가성비'가 떨어지는 훈련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5. ‘패러프라이즈’하는 연습을 한다.

같은 표현, 같은 낱말이 반복되면 좋지 않습니다. 글 맵시가 빈곤하고 추레해 보이더군요. 어휘가 생각을 나타내는 기호라면, 다양한 어휘를 익힐수록 생각을 표현하는 스펙트럼도 넓어집니다. 반복되는 낱말은 유의어로 대체해보시지요. 비슷한 울림의 문장은 다른 맛을 내는 문장으로 바꾸어도 좋습니다. "생각하는 게 어렵고 글 쓰는 게 어렵고 노력하는 것도 어렵다." -> "생각하는 게 힘들고 글 쓰는 게 버겁고 노력하는 것도 막막하다." 뉘앙스가 한결 풍부해졌습니다. 무료할 때마다, 하나의 표현을 대치하는 다른 표현을 줄줄이 연상하는 놀이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글을 쓸 때, 네이버 국어사전을 이용하는 것도 아주 유용합니다. 낱말을 검색하면 그와 연계된 유의어와 반의어 네트워크를 제공하거든요.

6. 퇴고를 거듭한다.

퇴고는 글쓰기 과정 중 하나가 아니라, 또 다른 글쓰기 과정입니다. 퇴고의 질에 따라 글의 질도 바뀌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저는 크게 세 가지 목적으로 퇴고합니다. 오타와 비문을 잡아내고, 운율을 점검하며, 논리와 표현을 재고합니다. 예컨대 탈고한 글을 죽 훑어가다 보면 '리듬'이 턱턱 막히는 구간이 밟히는데, 그런 부분을 손봐주면 호흡이 매끈해집니다. 퇴고는 글과 글쓴이 사이 거리감을 만들어줍니다. 자기 논리와 감정에 몰입해 머리를 박고 펜을 끼적이는 동안 깨닫지 못한 허점과 대안이 불현듯 떠오르는 수가 많더군요. 퇴고는, 내 글의 약점과 장점이 무엇인지 조망하는 전망대입니다. 대상에 가까이 붙으면 '사물'만 보이지만, 멀리 떨어지면 '풍경'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저는 보통 2~3번, 많게는 3~5번 정도 퇴고를 합니다. 이 과정에 힘을 쏟으면 쏟을수록, 글이 빠르게 늘더군요.

오늘은 여섯 가지 원론을 제 방식대로 풀어보았습니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는 고전적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만, 기본은 언제나 중요하니까요. 다음번 글에서 개인 경험에 바탕한 좀 더 디테일한 글쓰기 전략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다들 건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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