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토란같은 드라마 ‘미생’, PPL마저 사랑스럽다

유희열도 이기고 싶어 하는 허니 버터칩이 실시간 검색어를 휩쓸고 있을 무렵, 밤 아홉시를 훌쩍 넘긴 금요일 밤에 또 하나의 먹거리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닭갈비 프랜차이즈 ‘유가네 닭갈비’가 공식 홈페이지 서버마저 다운되는 기현상을 낳았던 것이다. 이는 금요일 밤의 인기 드라마 ‘미생’의 간접광고, 즉 PPL의 영향이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생생 정보통과 같은 맛집 전문 프로그램도 아니고 식도락 드라마도 아닌, ‘미생’에서 길어 봐야 십분 남짓했을 ‘닭갈비 먹는 장면’ 때문에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많은 시청자가 몰렸다는 것은 드라마 ‘미생’의 간접광고 효과가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광고 효과가 뛰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시청하는 장면이 광고라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역시나 간접광고의 존재감이 컸다는 방증 또한 될 것이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미생’의 피피엘이 과하다며 불만을 품는 의견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도리어 언론에서 이 드라마를 평하길 잘 만든 PPL의 교본이라 극찬하고 시청자 또한 이 의견에 적극 동감하고 있다.

시청자의 감정 이입을 필요로 하는 드라마에서 간접광고는 도리어 30초의 마법 이상으로 효과가 높지만, 그만큼 작품의 완성도를 논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제작비 지원을 위한 필요악이자 제작진의 센스를 점검할 수 있는 알리바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고 효과가 탁월함에도 시청자의 찬사를 받는 ‘미생’의 PPL은 이 드라마의 걸출한 완성도를 증명하는 예시로 제시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미생’의 PPL이 찬사 받는 이유는 그 리얼리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 방영중인 또 하나의 만화 원작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를 비롯하여 몇 개의 작품들이 시청자의 야유를 받으며 무너져 내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소문 속의 국내판 노다메 칸타빌레가 개장했을 때 손님들은 단 2회만 보고선 이미 이 드라마의 완성도에 실망을 느끼곤 토라졌다.

원작 만화에서 등장인물 미네의 아이덴티티나 다름없었던 중화요리 전문점 ‘우라켄’이 대한민국의 흔해 빠진 프렌차이즈 ‘서가앤쿡’으로 바뀐 부분에 시청자는 절망감을 느껴야만 했다. 미네 류타로는 중화 요리점의 외동아들이자 지독한 파파보이다.

아들을 향한 외골수 사랑이 그대로 녹아든 우라켄은 존재 그 자체가 미네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첫 번째 리메이크인 일본 드라마처럼 광고 효과와 완성도 사이에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가게를 선택한 과감한 포기까진 기대할 수 없다손 쳐도 최소한 중화요리 전문 프렌차이즈로 바꾸려는 노력쯤은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시청자는 이후 깐깐한 완벽주의자 차유진(주원 분)의 부엌에 쌓인 참치 통조림 탑을 보곤 혀를 찼다. 원작에서 치아키 선배는 결벽증에 가까운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어서 음악은 물론 요리에서마저 타협할 인간이 아니다. 이 인간이 참치 요리를 하겠다면 통조림은커녕 바다로 나가 참치를 잡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런 타입의 인간을 간접광고 때문에 무너뜨린 내일도 칸타빌레 제작사의 센스는 제로에 가깝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극찬 받는 ‘미생’의 영리한 피피엘. 그 힘은 치아키만큼이나 깐깐하며 타협하지 않는 제작진의 용기에서 비롯되었다. ‘미생’의 피피엘은 하나 같이 샐러리맨의 공식 애장품으로, 극과의 괴리감을 형성하며 감정이입을 무너뜨리는 결과치가 없다.

숙취해소 음료, 회의실에 놓인 생수, 직장인들의 무한 사랑을 받는 맥심 노랭이까지.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시청자의 혀를 내두르게 한 ‘복사 용지’는 피피엘의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작진이 얼마나 깐깐하게 괴리감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것이 곧 작품의 완성도를 취하기 위한 발버둥이었는가를 여실히 느끼며 감동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미생’의 관계자는 “김원석 PD는 기획단계에서부터 드라마와 어울리는 협찬만 받도록 방송사 측에 주문했다. 거액의 제작비를 제공해준다고 해도 드라마의 방향과 다르거나 어색한 제품이면 받지 않겠다고 고집했다”라고 전했다.

‘미생’의 복사 용지 피피엘에 감탄하며 문득 이와이 슌지의 영화 ‘러브레터’에서 눈치 채지도 못했던 간접광고를 엔딩 크레딧 롤에서 재인식하곤 감탄에 마지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꽁꽁 얼린 산을 스케이팅하듯 내려오든 소녀 후지이 이츠키가 얼음 속에 갇힌 잠자리를 한동안 내려다보던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영상미의 극치라 불리는 이와이 슌지의 작품에서 상업적인 냄새가 폴폴 나는 피피엘이 끼어드는 건 다분히 위험한 장치였지만, 감독은 과감하게 피피엘마저 미적 요소이자 작품의 서사를 은유하는 상징성으로 만들어버린다.

박제된 듯 잃어버린 기억, 아버지의 장례에도 장난을 치는 소녀처럼 삶을 상징하는 것은 곧 기억이라는 것. 기억을 상징하는 ‘얼음 속의 잠자리’는 잠자리 심벌로 유명한, 영화 러브레터의 후원사 톰보우의 피피엘이었다. PPL도 이 정도면 가히 예술의 경지다. 국내 드라마 ‘미생’ 또한 그에 비등한 노력을 하는 것 같아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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