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전처입니다.” 대종상이든 청룡상이든 해마다 돌아오는 영화제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만큼 줄곧 시청자의 간담마저 서늘하게 하는 ‘방송사고’가 터져 명절의 유희거리로 장식되곤 한다.
영화제의 방송 사고하면 그 유명한 ‘초록 불고기’를 논하지 않을 수 없지만, 2014 제 51회 대종상 영화제의 사회자 신현준에 얽힌 의도된 방송사고 또한 흥미로웠다. 당시 사회자는 신현준의 절친인 정준호였다.
상을 받고 내려가는 신현준을 다급하게 불러 세운 정준호의 목소리가 이 상황이 연출된 시나리오의 한 페이지가 아님을 짐작케 했다. 그리고 이 방송 사고는 작년과 이어진 시즌2라 유쾌함을 더했는데, 역시나 사회자 역할을 맡은 정준호가 신현준을 두고 당시 한참 인기 있었던 욘사마의 스캔들을 들먹거린 데에서 방송 사고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 다음해 정준호가 하소연하길 농으로 던진 신현준의 스캔들 출연 얘기에 배용준 팬으로부터 갖은 협박을 받은 것은 물론 심지어 신현준의 고모에게까지 전화가 와 고초를 겪었다나. 심히 방송용이 아닌 목소리로 주저리주저리 하는 하소연이 어찌나 웃기던지.
옆자리의 김혜수는 진땀을 뺐고 대다수의 시청자는 영화제의 격을 떨어뜨린다며 호통 쳤지만, 나는 ‘영화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필요 이상으로 딱딱한 시상식에서 위트를 더한 정준호의 돌발 사고가 더할 나위 없이 재밌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연이 한데 뒤섞여 낳은 필연적인 돌발 사고는 네티즌 사이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대한민국 영화제의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톡 까놓고 말해 헐리우드에서나 아니, 그 나라에서 연출되어도 입을 다물지 못할 간담을 서늘케 하는 ‘쿨한’ 장면이었다.
지난 21일 오후 여의도 KBS 홀에서 열린 제 51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스탭진의 노고를 위로하는데 터진 해프닝이었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로 의상상을 수상한 조상경 디자이너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상을 받지 못하자 배우 오만석이 무대 위로 올라 대리 수상의 영예를 얻었던 것이다. “제가. 예, 제 전처입니다.” 관객은 술렁였고 시청자는 경악했다.
그쪽을 흘낏 보고선 “네, 군도는 차암.”하고 입을 여는데 그 점잖던 영화배우들에게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먹지 않을 아이스크림을 손에 든 것처럼 하얀색 꽃다발을 어찌할 바 모르는 손이나 더듬더듬 이어나가는 머쓱한 수상 소감이 어찌나 아슬아슬하던지.
“네, 군도는 참.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다 같이 합심을 해서 열심히 만든 영화였습니다. 사랑해주셔서 감사하구요. 앞으로도 의상을 잘 만들고 열심히 만들어가는 그런 좋은 디자이너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거라고 얘기할 겁니다. 아마.”
‘혹시라도 상을 받게 되면 저보고 나가서 수상소감을 말해달라고 했었는데 오늘 진짜 안 왔네요?’ 그 상황을 설명할 때 혹여 누군가 아내의 겸손을 의심할까 몇 번이나 ‘혹시라도, 혹시라도 상을 받게 되면’을 덧붙이는 오만석이 살가운 배려가 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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