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가 4회 만에 두 자릿수 시청률을 달성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지만 미스터 백은 여전히 주춤하는 형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왕의 얼굴은 나쁘지 않은 출발을 보였으나 곧바로 기세가 꺾였다. 일단 피노키오의 순항은 반가운 일이다. 이 같은 피노키오의 순항에선 몇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우려일까 배려일까, 상상이 가져다 준 설렘

인하의 아버지 달평은 오래 전부터 달포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결국, 달포에게 인하는 꿈도 꾸지 말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달포 역시 마음만 품을 뿐 인하에게 그것을 드러낼 의도는 전혀 없다는 자신도 모를 약속을 한다. 그러나 시청자는 안다. 달포와 인하가 연애를 하지 않는 일은 없다는 것을. 그렇게 아무도 믿지 않을 달포의 약속은 흥미롭게도 그 연애를 가장 경계하는 달평의 상상 속에서 설렘으로 파기의 복선을 강하게 드리웠다.

달포와 인하가 동시에 YGN에 합격할 수도 있다는 한 마디에 상상력에 폭주현상을 보인 달평. 급기야 식빵 한 조각을 입에 물고 달포 넥타이를 고쳐주는 인하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달포는 마치 키스를 하듯이 인하가 물고 있던 식빵 다른 끝을 베어 무는데. 차라리 키스가 낫지 이건 키스보다 더한 러브신이다. 게다가 상상이라는 것을 알고 하는 상상이기에 그 설렘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달평이 과연 달포와 인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인지 중매쟁인지 알 수 없는 장면이었다.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YGN의 신입기자

YGN의 파격적인 신입사원 모집은 시청자에게 달포와 인하의 식빵키스만큼이나 큰 설렘을 줬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언론사 블라인드 테스트라니. 학벌차별에 의한 정당한 실력경쟁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현실에 대한 비꼼이 담겨진 박혜련 식의 풍자법이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자인 달포가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허구의 설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없는 허구라는 면이 더욱 아프게 느껴지게 되는 복잡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건강한 드라마라면 적어도 현실을 깨는 상상 혹은 공상이라도 갖게 해야 옳다. 신데렐라의 헛된 욕망을 자극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근사한 허구라고 할 수 있다. 상업드라마라는 것이 기승전연애일 수밖에 없어서 그 구성을 거부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안에서 진실이라든지, 혹은 풍자와 비판을 담는 반란을 시도해야 좋은 작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혜련 작가는 좋은 작가라는 말을 들어도 좋다.

물 오른 이종석의 연기가 주는 실감

드라마가 힘써 허구를 달리더라도 정작 배우들은 그것이 허구라는 인상을 남겨서는 안 된다. 그래서 배우에게는 남다른 외모도 필요하고,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연기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외모야 이미 말할 필요도 없는 이종석이고, 학교 때부터 연기도 문제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번 역할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도전이었다. 개인의 원한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를 진실을 왜곡하는 현실에 대한 공분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작부터 그 감정을 다 보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천천히 그 감정의 크기를 키워가야 한다. 그래서 더 힘들다.

그런데 이종석의 연기가 물이 오르고 있다. 이종석은 빠르게 전개된 4회에서 화내고, 슬퍼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어려운 감정을 빠져들게 연기해내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본인 스스로 그 감정에 빠져있다는 느낌을 충분히 전달해냈다. 시청자로 하여금 화내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화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종석이 인기에 안주하지 않고 연기자로서 진화하고 있다는 반가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피노키오는 허구의 피노키오 증후군이라는 것을 만들어낸 것부터가 비현실의 현실감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그러나 그 허구 속에 기자가 거짓을 전달한다는 설정은 허구가 아닌 것이 이 드라마의 시작점이자 뼈아픈 현실의 자각이다. 그것을 깨고자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헛된 욕망이나 부추기는 여느 드라마와 달리 피노키오에 몰두해도 좋은 이유가 되고 있다. 어쩌면 식빵키스보다 그 진실에 대한 갈망이라는 주제가 더욱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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