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가 20일부터 21일 양일 동안 미리 예고한 총파업에 돌입한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와 전국여성노조, 전국학비노조 등으로 구성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에 따르면 학비노조의 요구 조건을 일부 수용한 대전, 경남, 광주를 제외한 각 지역 학비노조 2만여명이 총파업에 참여했고 상당수 노동자들이 파업집회에 참석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1만여명이 참석한 상경 총파업대회는 오후 1시부터 서울역광장에서 열렸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이날 발표한 결의문에서 "공공기관에서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화시키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현장에 초단시간 근로 등 쪼개기 계약이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연대회의는 "자신의 공약과는 거꾸로 가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 공약을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며 "오늘과 내일 1차 경고파업을 전개했음에도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시 총파업을 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대회의는 △3만원 호봉제 전면 시행 △방학 중 생계대책 마련 △명절휴가비, 상여금, 급식비 지급 △교육공무직법 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는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훨씬 많다. 학교회계직원과 기간제 교원, 강사들이 포함된 그들의 숫자는 37여만명에 달하며 전체 교직원의 40%에 육박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각 시도교육감이 무상급식과 누리과정을 두고 ‘예산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이들의 목소리는 소외되어 있다. 진보 교육감으로 분류되는 이재정 교육감의 경기도교육청이 무상급식을 위한 예산확보의 명목으로 1400여명의 기간제 교사를 감축한다고 발표했을 정도다.
▲ 20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 투쟁에서 참가자들이 급식비 지급, 방학 중 생계보장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 학교비정규직노조연대의 주장을 들어봐도 한국의 ‘보수’와 ‘진보’의 전선에서 소외된 노동의 목소리가 들린다. 서울시 학비노조는 20일 오전 9시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서울지역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총파업 투쟁대회'를 열어 "서울시 교육청은 조희연 교육감의 공약대로 차별받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2만여명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라"고 촉구했다.
서울일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 여성노조 서울지부, 학교비정규직노조 서울지부 등 4개 단체의 급식실·사무직 등 서울지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1000여명은 서울시 교육청에 △학교비정규직 처우개선 예산계획 즉각 수립 △방학 중 임금 지급 △식비 지급 △현행 10만원 명절상여금 인상 △전일제 근무자 정규직 대비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지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8월14일부터 여덟 차례의 임금교섭과 두 차례의 조정회의가 있었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별 속에 울분을 억누르며 교섭과정을 지켜봤지만 교육청의 답변은 항상 "돈이 없다"였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조희연 교육감은 호봉제 도입, 정규직과의 차별적 수당제도 개선 등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며 "인수위가 진행되는 동안 정식 임금교섭이 진행되며 아무것도 바뀐 게 없고 기대는 분노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조순옥 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장은 "급식실 노동자들은 동료가 펄펄 끓는 물에 산업재해로 죽었을 때도 비정규직은 밥을 해야했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학교 운동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도 있다"면서 "급식실의 노동강도는 조선소의 노동강도보다 더 높다"고 주장했다. 조순옥 지부장은 이어서 급식실 노동자들은 식비가 나오지 않아 스스로 만든 밥을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 20일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의 파업으로 각급 학교의 점심 급식이 중단되면서 울산시 울주군 호연초등학교 급식소가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홍창익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서울지부장은 "학교 측에서 파업을 하면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협박을 받았다"면서, "우리는 노동3권이 보장한 합법파업으로 나왔다. 부당노동행위를 하는 곳은 학교와 교육청이다. 당당하게 파업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자"고 호소했다.
학비노조의 이번 파업 규모는 역대 최고이다. 이는 엄혹한 현실에서도, 아니 엄혹한 현실이기 때문에 학교비정규직의 조직이 차츰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이것이 ‘1차 경고파업’이란 그들의 주장이 ‘엄포’로 들리는 것이 현실이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교육감’과 ‘전교조’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진보교육감은 전교조를 소외시키려는 정부의 집요한 공격에는 맞서서 전교조를 품는 모습을 보였다. 비정규직 문제는 이보다 훨씬 어렵다. 예산이 없다는 말도 거짓이 아니다. 정부와 자본은 그렇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투도록 몰아간다.
하지만 정부와 자본만 탓한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찌됐건 ‘진보’는 비정규직을 대의하지 않는다는 마타도어, 혹은 일말의 진실을 돌파할 방안을 궁구해야 한다. 무상급식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줄이는 모습은 한국 사회의 시민들에게 너무 전형적인 ‘진보 기득권의 자기 모순’으로 보일 뿐이다. 바깥에서 함부로 대안을 말하긴 어려우나, 학비노조가 드러낸 ‘전선’을 지각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진보’는 외연을 확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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