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가 20일 오후 2시에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강당에서 주최하려고 했던 <서울시민인권헌장(안)> 공청회가 결국 일부 기독교인들의 반대 시위 및 난입으로 무산됐다.

▲ 공청회 시작 두 시간 전부터 이백여명의 시위대가 몰려와 있었다고 한다. 공청회 시각 직전의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앞 풍경 ⓒ미디어스
서소문별관 앞에선 공청회 시작 시간 전부터 기독교인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퇴하라”, “동성애 옹호 반대한다”, “당신 아들이 며느리를 남자로 데려온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설교 방송을 하며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를 규탄했다. 지나가던 젊은이들이 종종 헛웃음을 터트렸다.
▲ 공청회 시각 직전의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앞 풍경 ⓒ미디어스
▲ 공청회 시각 직전의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앞 풍경 ⓒ미디어스
그러나 건물 바깥의 ‘희극’은 건물 안쪽에서 벌어진 폭력의 ‘비극’ 그 이면이었다. 후생동 4층 강당을 가득 메운 일부 기독교인들은 동성애를 원 없이 증오하는 마음을 담은 피켓을 들고 악을 쓰듯 구호를 외쳤다. 주된 구호는 “사회자 바꿔라”였다. 이날 사회를 맡게 된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밝히는 등 ‘편향적인’ 인물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박래군은 최근에도 이석기 사건과 관련해서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 오후 2시경 서소문별관 강당 앞 복도의 풍경 ⓒ미디어스
▲ "사회자 바꿔라"란 구호가 울려퍼질 때의 강당 안 모습 ⓒ미디어스
일부 기독교인들은 공청회장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공청회 개최를 방해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직접 단상에 난입하여 점거하고 사회자와 패널들을 끌어내려고 했다. 박래군 등 몇 사람이 그 과정에서 구타를 당했고 한 사람은 쓰러져서 의식을 잃는 지경이 되어 나중에는 119 대원이 왔지만 현장은 잘 수습이 되지 않았다.
▲ 단상이 아수라장이 되기 전 공청회 현수막 ⓒ미디어스
현장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공청회와 동성애를 증오하는 시위대, 그들의 행사 진행 방해를 막아서는 사람들, 그리고 이 난데없는 아수라장의 광경을 촬영하는 기자들이 그것이었다. 현장의 분위기는 과연 세 번째 부류로 남아 있는 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행위인지를 양심적으로 성찰하게 할 만큼 험악했다. 공청회 취지에 맞게 찾아온 일부 장애인들의 안전이 우려되기도 했다.
▲ 공청회를 점거한 시위대의 모습 ⓒ미디어스
강당 밖을 나와도 확신에 찬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이대로 넘어가면 6차회의에서 확정되고 이걸 시민 의견 다 들었다고 말할 거야”라며 공청회를 반드시 파행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을 말리는 이들에게 “내가 낸 세금이라고!!!”라고 악을 쓰는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들은 피켓을 들고 소리를 지르고 있으면서, 인권헌장 옹호 피켓을 든 소수 시민에게 당장 치우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누군가 그들 앞에서 그들의 증오에 대항하기 위해 “기독교는 사랑입니다”라고 쓴 피켓을 들었다. 기자가 이 증오의 스펙터클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욕망으로 아수라장이 된 단상 위에서 그들을 모두 한 컷에 담는 사진을 찍으려고 했을 때, 길거리에서 지나쳤다면 평범한 한국의 이십대 여성으로 보였을 한 여성이 자신의 피켓을 높이 쳐들어 카메라를 막아 버렸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농담 같았다.
▲ 상반된 내용의 두 피켓 ⓒ미디어스
서울시는 당초 28일 시민위원회 최종회의에서 헌장을 확정할 계획이었다. 한 시민이 언급한 “6차회의”가 지칭하는 것이 그 최종회의였다.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는 시민위원 150명과 인권전문가 및 단체, 명예부시장, 시의원 등 30명을 합해 18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시민위원은 “시민위원 중에도 시위대 세력이 십여 명 들어와 있다”고 귀띔했다. 시민위원은 서울시의 홍보에 따르면 “만 14세 이상 일반시민 대상으로 참여자 공개 모집 및 무작위 추첨을 통해 시민대표성 확보”하는 방식으로 선정되었다. “연령․성별․지역 대표성을 고려하여 균형있게 선정”했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들의 주장은 서울시민의 1/15을 넘지 못한다. 인권헌장을 방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결합했을 것을 고려한다면 비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 시위대에 맞선 반시위대는 시위대의 거센 항의를 들어야 했다. ⓒ미디어스
박래군이 퇴장하자 어느 순간 구호는 “박원순 아웃”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막아서는 사람들을 끌어냈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호통쳤다. 그들은 누군가의 존재 자체에 수치심을 느낄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 아수라장이 된 단상의 모습 ⓒ미디어스
공청회가 불가능할 것 같아 후생관 건물로 나왔다. 다들 현장에 들어가 있어서인지 확성기를 들고 소리치는 이 주변의 시위 인력은 다소 줄어 있었다. “짐승들도 동성애는 하지 않습니다! 동성애를 허용하면 대한민국이 망합니다! 네 아들이 남자를 데려오고, 네 딸이 여자를 데려오며, 네 손주가 동성애를 합니다. 대한민국이 망합니다!” 아들 딸이 동성애자가 되더라도 손주는 생긴다니 대한민국은 망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건물을 나오자 ‘비극’은 다시 ‘희극’으로 바뀌었다. 멀지 않은 시청 앞 광장에서는 FTA에 반대하기 위해 상경한 농민시위대가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겨울바람이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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